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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Mar 25. 2017

[영화리뷰]히든 피겨스

잘만든 실화 영화의 정석

1960년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우주전쟁이 한창인 시절. 먼저 인공위성을 쏳아올린 소련에 미국의 초조감이 극도로 심했던 그 때. 미국은 전후 폭증한 일자리를 감당하기 위해 흑인들의 인력 채용에 나섰지만 차별 역시 그에 비례해서 높아졌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흑인은 제일 잘되어봐야 군인이라 교사가 한계였고 화장실과 식당, 심지어 강의실마저도 'COLORED'라는 표지판이 따로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차별이 횡행했던 그 때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뛰어난 컴퓨터언어사용자이자 전산팀장인 도로시 본, 타고난 수학천재이자 남편없는 세 딸아이를 먹여살리는 가장인 캐서린 고블, 전산팀 루키이자 분위키메이커인 메리 잭슨. 우주 궤도를 계산하여 우주선이 안전히 이륙하고 귀환할 수 있게 일련의 모든 수식은 세우고 분석하는 역할들이 바로 이 세명이 하는 일입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격리된 공간에서 본인의 실적마저 남의 이름으로 올려야하는 답답한 현실에 계속 두각을 보이자 갑갑해서 먼저 폭발한 것은 차별에 침묵했던 주변인들이었죠. 흑인은 명문대를 갈 수 없다는 편견을 깬 것은 그들의 의지에 감복한 백인 판사이고, 사무실에서 40분이나 돌아가야하는 흑인전용화장실을 깬 것도 백인 본부장이고, 슈퍼컴퓨터의 계산을 신뢰할 수 없어 총책임자 자리를 준 것도 백인 책임자입니다. 꽉 차인 그들의 능력과 의지를 보고 제 스스로 차별이라는 허들을 부수는 것을 보는 것. 그 때 이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히든 피겨스>는 올해 아카데미상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4개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라라랜드>와 <문라이트>가 작품상을 놓고 다툰 작품이라면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히든 피겨스>는 대본과 연기상을 놓고 다툰 작품이죠. 그만큼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고 이 영화가 개봉하는 시점 전에 히든 피겨스 멤버들은 백악관에 초청되어 오바마 대통령에게 상까지 받을 정도로 사전에 유명세를 충분히 치룬 작품입니다. 실화를 소재로 만들면서 결코 억지 감동이나 감정이 과잉되지 않도록 절제미를 지키며 차별의 극복이라는 주제를 영화의 엔딩이라는 골인 지점까지 담담히 끌고 갑니다. 너무 담백해서 목이 막히지도 않고 너무 신파라서 느글거리지도 않으면서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만이 줄 수 있는 개성의 향과 식감이 담긴 멋진 음식같은 영화입니다. 개봉 전 이동진 평론가와 윤미래, 장재인이 극찬한 내용을 홍보로 사용한 것은 균형잡인 완성도와 이런 깔끔한 개성 때문일 것입니다. 현 개봉작 중 최고의 작품이니 고민없이 보셔도 좋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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