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의 악마적 재능에 감탄과 탄식이 나왔다.

불륜으로 논란이 된 홍상수과 김민희의 화제작이자 둘 사이의 자전적 이야기로 보이는 영화. 김민희에게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 유부남 감독과 불륜에 빠진 여배우가 외국과 강릉을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 사랑이 뭔지,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토로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배우 영희(김민희)는 유부남 감독과 사랑에 빠지지만 자신의 사랑에 못미치는 남자의 관심에 지쳐 외국으로 떠나버립니다. 외국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해변을 거닐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와 자신의 현 상태에 대해 묻는 영희. 자신에게 진심으로 대해주지만 결코 어느 선 이상 가까이 다가오려하지 않는 언니를 알지만 그래도 영희는 묻습니다.
"그 사람도 내가 그를 생각하는만큼 나를 생각할까?"

장소는 바뀌어 한국의 강릉. 옛 생각에 찾아온 극장에서 지인들(정재영, 권해효, 송선미 등)을 만나며 불편한 심정과 불편한 대화를 나눕니다. 그동안 뭐했는지, 앞으로 뭐할건지, 그 사람이랑 어떻게 됐는지 등등의 이야기들. 해변을 건너 잠에 빠진 영희를 깨우는 누군가. 그리고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랑했던 사람. 관찰자들이 보는 앞에서 당사자간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못본 사이 많이 늙었네요."
"너는 똑같네. 예나 지금이나 넌 참 아까워."

홍상수의 영화답게 1막, 2막으로 나뉘는 구성. 바탕체 폰트로 도배되는 크레딧은 여전합니다. 배우 두명이서 걷거나 앉아서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 핵심을 건드리는 패턴. 그리고 대화 말미에 다양한 해석을 낳는 여운. 여운이 남는 대화의 재생산, 이 과정을 덤덤히 관조하듯 비춰보이는 원시적 앵글. 홍상수의 전매특허 패턴은 이제 19번의 영화를 찍으면서 본인의 내공도 정점에 올랐고, 관객도 무수한 학습효과로 자연스럽게 따라가줍니다. 이런 학습효과 덕에 홍상수 본인이 표현하고 싶어하는 내용의 핵심을 늘 제대로 표현하는데요. 이 영화의 결말부에 나오는 감독과 영희의 대사를 보면 홍상수가 보는 김민희와 김민희가 보는 홍상수를 예상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제 단견이라 뭐라하기 그렇지만 김민희가 완성된 예술가로서의 배우를 추구한다면 홍상수는 자기 세계의 완성을 추구하는 나르시스트같은 느낌이 드네요. (불륜이라도 이왕 진지하게 만나게 된 거 좋은 끝이 있길 바랍니다만, 그러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은 저만의 느낌은 아닌듯 합니다. 특히 이 영화를 보면 그 느낌이 배가됩니다.)

역대 홍상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고 감독 자신의 메세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작품입니다. 홍상수와 김민희의 불륜과 상관없이(물론 이입해서 본다면 몰입이 더 되겠지만) 관람 가치는 충분한 작품이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보시길 바랍니다.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