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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Jun 29. 2017

[영화리뷰]박열

고증과 드라마의 고민 속에서 감독은 고증을 택했다

6월 마지막 주의 한국영화 3인방인 박열, 옥자, 리얼. 이 중에서 상영관 찾기 쉽고 가장 덜 욕먹는 작품인 박열을 보았습니다.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운동을 하던 인물이라 그동안 국내에서는 조명된 적이 없는 인물인데요. 2015년 영화 '암살'을 시작으로 '밀정', '동주'등 일제시대 독립활동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박열까지 다루게 된 듯 합니다. (정말 영화화하기 좋은 독립운동가 김원봉과 김상옥은 언제쯤 영화가 제작될지 기대되네요. 한 명은 빈 라덴 이전 최고액의 현상금 수배자, 다른 한 명은 일본순경을 학살한 조선 최고의 총잡이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시점입니다. 무정부주의 단체 '불령사'(불령사는 불량조선인의 약자로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나쁘게 부를 때 쓰던 말입니다.)의 수장인 22살 청년 박열은 낮에는 인력거와 잡지발행을 하며 생계를 모으지만 밤에는 몰래 일본정부에 대한 테러를 준비하는 독립운동가입니다. 

그가 재일동포들과 가네코 후미코 등의 일본제국에 대한 불만이 있는 일본인과 생활을 같이 하던 중, 관동에서 규모 7이 넘는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일본 내각은 수십만명이 죽은 이 참사로 치안이 불안정해지고 민중들의 불만이 커지자 조선인들이 지진을 틈타 우물에 독을 타고 일본인들을 학살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려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이에 조선인에 대한 분노가 커진 일본 사무라이들은 자경단을 만들어 조선인을 색출하여 학살하였고 이렇게 죽은 사람이 사흘동안 6천명이었습니다. 외신의 의심을 우려한 일본 내각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일본 테러를 기획한 조선 독립운동가 색출작전에 들어가고 이에 박열은 스스로 일제에 잡혀 심판을 받으려 하는데...

실존했던 독립운동가(라기보다는 무정부주의자에 가깝지만)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가 메인으로 이 둘이 영화 전체 비중의 90%를 차지합니다. 영화상 박열의 나이는 22살, 가네코 후미코는 20살인데 이 둘이 서로에게 호감을 품고 맺어지는 과정과 대역죄로 일본 대법원에서 재판받고 심문받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왜 이 재판을 자청해서 받는지를 그려냅니다.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은 역사왜곡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100%에 가까울 정도로 고증(실제로 출연한 배우들의 역할 전부가 실존인물입니다.)한 나머지 이야기를 채워줄 드라마 부분이 너무 빈약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말마따나 이 작품은 항일이라는 주제 이상으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로맨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야하는데 그 분량과 개연성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식민지인 조선의 무일푼 청년과 일본의 친부모에게서 버려져 보통교육조차 받지 못한 여자. 그들의 과거를 보면 동변상련할 요소가 충분히 있고 무정부주의를 지향했던 둘의 가치관까지 생각해보면 일생을 같이 갈 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부분을 영화상에서는 별도의 이야기로 그려내지 않습니다. 한, 일 아웃사이더간에 어떻게 교감하고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그려냈다면 대역죄 재판과 함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는데 역사왜곡과 허구적 드라마의 개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영화속에 스토리텔링을 일체 넣지 못했고 그 결과 역사 속 재판기록에 나와있는 박열과 가냐코 후미코와 대법관간의 법정다툼과 대화만이 딱딱하게 오갈 뿐입니다.

저는 영화 '박열'이 이준익 감독의 전작인 '사도'와 '동주'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소재 선택의 실수나 감독의 역량 부족이나 슬럼프 때문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서 관통하는 주제가 앞서 두 작품과 달리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왕과 부자라는 역할에 대한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 '동주'에서는 국민으로서 시대적 역할과 개인으로서 꿈 사이의 갈등을 다루었는데 '박열'에서는 식민지 백성의 설움이라는 한축만 존재할 뿐, 다른 한 축을 맡아야할 한, 일 아웃사이더간의 이어짐에 관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추가되었다면  전작에 버금가는 명작이 되었을텐데 아쉽습니다.

영화 '박열'의 촬영기간은 39일, 제작비는 26억이라고 하는데 손익분기점을 예상하면 약 80억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 정도는 백만명 정도의 관람객만 모아도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수준이니 흥행에 대한 부담은 적을 듯 합니다. 당장 어제 하루 관람한 관객만 26만명이라고 하네요. 6월 마지막주 개봉작의 승자는 상대적으로 박열이 쉽게 이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허나 바로 다음주에 개봉하는 스파이더맨 때문에 이 영화는 100만에서 200만 사이로 상영관에서 내려올 듯 하네요. 나쁘지 않은 작품이지만 추천하지도 않습니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으니 이준익 감독의 팬이나 일제시대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아니면 한번 더 생각해보고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P.S :  이준익 감독은 벌써 차기작이 정해졌다고 하네요. 이번에는 사도, 동주, 박열 같은 실화 소재의 사극이 아닌 전라도 변산을 배경으로 한 '변산'이라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배우 박정민, 김고은이 주연으로 나온다고 하네요. 올해 하반기에 촬영을 시작한다고 하니 아마 내년 쯤 개봉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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