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사다

by 병아리 팀장

지난 달 2012년에 분양받은 집이 다음 달이면 완공이 된다는 연락이 왔다. 2012년 하반기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2016년 6월에 완공이 되는 것이니 대략 4년이 걸린 셈이다. 보통의 경우는 내가 산 집이 다 지어지면 기쁜 마음을 느껴야 하지만 나는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사정이 있다. 사실 이 집은 마냥 나 자신만을 위해 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택 청약을 신청할 당시 나는 회사를 옮긴지 얼마 안되는 시점이었고 연봉 등의 조건도 이전 회사보다 상당히 낮은 상태로 옮겼기에 도저히 집을 살 여건이 아니었다. 헌데 집을 산 이유는 딱 하나. 당시 내가 진지하게 만나던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동창 소개로 그 친구가 다니던 교회의 동갑내기 여성분과 소개팅을 하였는데 첫 만남의 느낌이 좋아 교제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무려 3개월의 밀당을 반복한 끝에 결국 그 친구와 정식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연애 경험이 부족한 나는 중요한 것들을 성급히 추진하곤 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집이다.

좋은 사람을 만났기에 갑자기 자신감이 생겨난 탓일까. 나는 그 동안 모은 돈과 청약통장을 이용하여 당시 분양이 시작되던 일산의 신축단지에 분양신청을 넣었다. 25평의 고층아파트였고 주변 여건과 교통이 좋기에 손해볼 일이 없다는 생각에 다소 무리를 해서 추진하였다. 운이 좋은 것인지 안좋은 것인지 1순위 청약으로 당첨이 되었고 나는 계약금으로 그동안 모은 돈 6천만원을 지급하였다. 그에 더해 부족한 금액은 신용대출을 하여 분할상환하기로 계약을 완료하였다.

분양 계약이 완료된 기쁨을 누리기 위해 만나던 그 친구와 모델하우스를 다니며 앞 날에 대한 기대를 나누었다. 아니, 사실 집에 대한 환상이 없는 나로서는 집을 구매한 것은 단지 내가 믿을만한 사람이다, 의지할만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그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큰 문제는 없이 좋은 인연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계약이 완료된 지 2개월 후 그 사람과의 인연은 끊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부지런히 집값을 갚고 있었다. 돈만 갚고 집은 잊고 있던 시간이 몇년이 지나서, 이제야 집이 곧 완공된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집과 더불어 그 친구 생각도 같이 났다.

잊혀진 집, 잊혀진 인연.
그러나 같이 살길 바랬던 사람은 떠났고 집만 남았다.
완공된 집을 돌아보고 오는 길이 몹시 쓸쓸했다.
당분간 그 집에 살 일이 없고, 세금문제 때문에 팔 수도 없어 앞으로 최소 2년은 더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부지런히 빚을 갚으면서)

선택은 한 순간이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책임을 꽤 오랫동안 져야 한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P.S : 지난 주 부동산에서 세를 놓으려면 에어콘을 달아야 된다고 해서 350만원을 입금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앙상히 남은 통장 잔고에서 또 목돈이 나가게 생겼구나. 사람과의 인연은 끝났는데 이 놈의 집은 계속 돈을 먹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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