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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Aug 06. 2017

천제연폭포 선임교에서

제주도 서귀포의 천제연폭포를 다녀왔다. 선임교라는 경사가 매우 높은 다리를 건널 때였다. 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를 쳐다보니 광활한 숲과 나무, 강과 폭포가 눈에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극도의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자이로드롭을 탈 때도 행글라이더를 탈 때도 느낀 적이 없던 두려움은 내 두 손과 두 다리를 마비시키고 그 자리에 주저않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고개마저 들지 못하고 땅만 보고 다리를 건너는 것 외엔 어떤 이성적 판단도 할 수 없게 하였다. 

나는 무엇에 공포를 느낀 것일까. 숲을 보다 나무가 보이고 나무를 보다 작은 풀이 보이는 그 광경. 큰 단위에서 작은 단위로 시선이 옮기다 나 자신마저 그 안에 빨려들어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와 함께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뛰어들 것 같은 충동,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이 튕겨나가 그것을 잡으려 뛰어오르다 저 아래로 떨어질 것 예감이 오감을 넘어 육감으로 전해졌다. 마치 과거 어느 순간 내가 겁없이 자연에 힘껏 몸을 부딪혔다 호되게 다친듯한 경험이 있는지, 아니면 신이 나의 오만함을 다스리기 위해 내 몸에 자연의 공포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세뇌라고 시킨 것인지 전신으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혼마저 빨려들어갈 것 같은 다리 밑 숲속. 대자연은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자기 위에 있는 나를 가소롭게 비웃고 있었다. 너따윈 언제든 삼켜버릴 수 있다고. 더 무서운 것은 그 모습에 나는 어느덧 중독되어 나도 모르는 새 앞으로 걸어가 대자연의 품에 뛰어들 것 같은 충동. 불을 보고 달려드는 나방처럼 내 속의 파괴 메카니즘은 나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간신히 붙잡은 이성의 끈. 삶에 대한 나의 집착이 이토록 기특하게 느껴진 적이 있던가. 죽음을 정면에 마주한 상태에서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은 알량한 특별함이 아닌 원초적인 생존본능이었다. 눈앞에 찾아온 죽음의 공포는 살고 싶다는 본능을 다시 일으키고 스스로 내려놓을 수 없던 잡다한 생각들을 모조리 잊게 해주었다. 다시금 삶에 번민하는 날이 온다면 제주도 천제연폭포의 선임교를 떠올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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