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nnie Volter Aug 09. 2017

비양도 꽃게 투척 사건

제주도 여행 2일차에 풍경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제주부속 도서인 우도의 비양도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숙소인 제주시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놓고 출발할 때만 해도 날씨가 맑았는데 우도 인근에 다가가니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쨍쨍한 날씨 때문에 혹시나 싶어 우산 하나만 챙겨왔던 나로서는 난감할 수 밖에 없었는데 긴 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름 머리쓴다고 햇볕이 강한 제주도에 대비하고자 했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나는 머리만 무사한채로 온몸이 빗물에 젖은 채 우도행 여객선을 탈 수 있었다.

우도에 도착하자 물주를 알아보는 상인들이 떼거리로 덤벼들었다. 호두 아이스크림이니 소라 짜장면이니 단어 하나가 첨가된 상품에 가격은 서울의 2배를 달라고 얘기하는데 손해보길 싫어하는 나로서는 우도에서 생수 한병 사먹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5천원짜리 관광버스를 타고 바람불고 비오는 날에 보기 좋다는 비양도에 가보았다. 오전 8시에 집을 나서 비양도에 도착할 때쯤 시간이 11시가 되니 배고픔은 둘째치고 목이 몹시 말랐는데 근처에 파는 것은 250ml짜리 생수와 땅콩아이스크림 뿐이었다. 분명히 서울에서는 500원 해야할 생수에 2천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은 것을 보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나중에 알고보니 비양도에는 강이나 지하수가 없어서 식수는 모두 빗물로 해결한다고 한다. 그래서 비쌌는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그 가격으로는 물을 마실 수 없어 땅콩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는데 소프트콘만한 크기에 가격이 4천원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생수를 구입하는 것을 거절하고 아이스크림마저 사지 않고 돌아서기에는 나를 쳐다보는 상인의 눈과 내 뒤에 줄서있는 관광객들의 눈치가 무서워 결국 4천원을 지불하고 아이스크림을 사고야 말았다.

내키지 않는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비양도 해변의 밀물과 썰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발 아래 인기척을 느꼈는데 그것은 개였다. 내가 서 있는 곳 옆의 펜션에서 키우는 동물인가 싶었는데 믹스견으로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서 몹시 귀여웠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모터가 돌아가듯 꼬리를 열심히 흔드는데 가만보니 내 아이스크림을 원하는 눈치였다. 

4천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이제 한입 먹었는데 똥개한테 뺏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급한대로 줄만한 것이 있는지 뒤져보았다. 주머니에는 그 흔한 목캔디 하나 없었고 나를 쳐다보는 개의 눈은 그렁그렁하여 그대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래도 뭔가를 줘야했기에 나는 땅바닥을 둘러보았는데 뭔가 꿈틀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게였다.

그야말로 손톱만한 게가 마치 개미처럼 부지런히 왔다갔다 하였는데 너무 작으니 손으로 잡아도 집게에 물릴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급한대로 게를 집어서 내 앞의 똥개에게 가져다주었다. 강아지는 게가 너무 작아 안보이는지 내 손가락을 핥다 내 아이스크림을 쳐다보았는데 나 역시 맘이 급해져서 결국 개 코위에 게를 올려놓았다. 강아지는 자기 코위에 뭐가 있는지 지긋이 보았고 낮은 포복자세로 방어하고 있던 게는 잠시 숨을 고른 후 필사적으로 개의 콧등에서 내려와 탈출을 시작했다.

"깨갱"

생전 처음보는 작은 생명체가 자신의 주둥이 위를 가로질러 도망가는 것을 보고 강아지는 몹시 놀란듯 펜션으로 도망가버렸다. 어찌나 놀랐던지 차도를 가로질러 단숨에 팬션안으로 들어가서 한동안 나오지 않다가 주인이 안고 달래어 간신히 개집에 묶어놓는 것을 보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개집에 들어간 후에도 한동안 그 안에서 나오지 않는 걸 보니 개와 게의 궁합은 그다지 맞지 않았나보다. 그렇게 비양도에서의 일정은 마무리되고 나는 우도의 남은 코스를 향해 떠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제연폭포 선임교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