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내 이름이다. 나는 1983년에 태어났다. 고지식하지만 듬직한 아버지와 항상 내 편이 되어주는 어머니 아래에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내 기억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잘 기억은 안 나지만)은 4살까지의 시간이다.
1988년에 우리 집에 불행이 찾아왔다. 갑작스런 나라의 정책 변경으로 아버지의 사업은 하루아침에 척결 대상이 되었고, 아버지는 수많은 빚을 지고 사회에서 퇴출되었다. 믿었던 모든 지인들도 그를 버렸고, 그는 사채꾼과 조폭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아버지는 집을 버리고 도망쳤고, 나와 어머니는 늘 위험한 사람들에게 감시당하는 신세였다. 어머니가 식당에서 힘겹게 벌어온 돈도, 우리가 입에 풀칠한 몇 푼을 제외하고는 정부와 사채꾼, 조폭들에게 늘 뺐겼다. 나와 어머니는 매일 밤 서로 껴안고 자면서 울고 웃기를 반복했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울고, 의지할 수 있는 서로가 있음에 억지로 웃었다. 그렇게 2년을 같이 보냈다.
내 나이 7살에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아버지가 돌아온 것,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가 나간 것이다. 유치원을 끝나고 돌아오는 길마다 늘 나를 마중나오던 엄마가 어느 날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되어 숨이 턱까지 차도록 달리고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낯선 남자의 신발이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내가 거실에 들어오니 낯선 남자가 누워있었다. 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너무나도 변해 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는 자신의 모든 장점을 잃고, 세상의 모든 때를 다 갖고 돌아왔다. 힘겹게 서로 의지하며 버텨온 우리 모자에게 더 큰 절망과 폭력을 주었다. 3년이라는 시간,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에서 실패한 낙오한 경험으로 모든 것을 포기했다. 자기보다 못하고 약한 사람을 찾다, 우리에게까지 온 것이다. 우리를 비웃고, 채찍질하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기 자신보다 못한 우리를 깔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려고. 그렇게 우리를 밟고 밟았다. 사채꾼이 올때면 귀신같이 도망가면서도, 그들이 없을 때는 소리없이 돌아와 우리를 욕보였다.
나의 7살 겨울,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그 전날, 유치원에서 귀가하던 나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모습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 없다. 너무나도 환하고 평화로워보였던 어머니. 유난히도 빛나던 어머니에게서 나는 왠지 모를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진서야, 엄마가 너무 미안해. 진서야.”
어머니는 이 말만 되뇌이면 내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 그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없었다. 나는 혼자 남겨진 것이다.
폭력과 술주정만 일삼던 아버지를 피해 나는 가출했다. 어머니의 소식을 찾기 위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나는 무작정 걸었다. 걷고 걷고 걸어, 그러다 죽어도 상관없어. 난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가 보고 싶어.
어머니의 소식은 뜻밖의 곳에서 듣게 되었다. 이사간 옛 유치원 친구의 어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거지꼴인 나를 경계해서 가까이 다가오진 않았다.), 어떤 남자와 재혼하여 잘 살고 있다는 말이었다. 필사적인 나의 추궁에 그 아줌마는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나를 안내해주고 떠났다. 자신이 가르쳐줬다는 말은 하지 말라면서.
어머니가 사는 집은 1층 단독 주택이었다. 아주 부유한 곳은 아니었지만, 잔디와 강아지, 화단이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나의 가장 행복한 시절의 마지막, 4살 때의 그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좋은 인상의 아저씨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가 함께 있었다. 유년기에 함께 했던 우리 가정의 추억, 향수, 아름다운 그 무엇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그 아름다운 공간에 모두 있었다. 그들의 보금자리에는 세상의 불행과 질시, 더러움 등이 들어올 수 없는 어떤 벽같은 것이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벽은 나까지 어머니에게서 밀어내고 있었다.
그 때의 내 감정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꼭 그것을 지켜주고 싶었다. 다시 찾아온 행복한 시간을. 비록 그 시간 속에 내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떠났다. 다시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 거기서 가장 먼 곳으로. 정 반대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