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이 친구처럼 지내던 시절, 신은 한 소녀를 사랑했습니다. 남몰래 사랑하던 소녀에게 신은 자신과 함께 살자 고백하였지만 소녀는 신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였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신은 상처입은 마음 때문에 속이 아팠습니다. 허나 신 체면에 대놓고 화를 낼 순 없어서 인간들에게 이제 자신은 세상일에 개입하지 않을테니 서로 잘 지내라고 얘기하고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아쉬워하였지만 이내 신을 잊고 자기들끼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은 인간세상에 개입하고 싶어 답답했지만 본인의 말을 번복할 수 없어 속만 썩이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못참겠다고 생각한 신은 인간세상에 개입하고 싶은 자신의 충동을 몸에서 분리해내기로 했습니다. 총 7개의 충동이 있었고 신은 그것을 하나씩 배출했습니다. 첫째가 야망, 둘째가 정죄, 셋째가 애욕, 넷째가 정욕, 다섯째가 파괴욕, 여섯째가 자위였습니다.
일곱번째 충동을 뱉어내려다 신은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충동까지 뱉어내었다간 자기마저 감당할수 없을 정도로 혼탁해질까 염려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신은 이 여섯개의 충동을 인간으로 변화시켜 인간세계에 보내었고 한참이 지난 후에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야망이 세상을 훑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자기 옆에 있는 친구보다 월등하다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이를 표면화하기 위해 신분제도, 시험, 돈 등을 만들었고 그렇게 세계 각지에는 전쟁과 분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의 위에 서기 위해, 그것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전쟁과 음모는 끝을 모를 정도로 이어졌습니다.
정죄가 세상을 훑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세상 속 잘못과 부조리를 누군가에게 떠넘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법과 벌을 만들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가혹하게 처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죄의 그물은 구현화되어 이제 그것이 하나의 직업이 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애욕이 세상을 훑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갈망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선정적이고 관능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고 사치와 과소비가 세상에 만연해졌습니다. 애욕은 이제 세상에 만연하여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었습니다.
정욕이 세상을 훑기 시작하자 남자와 여자는 성욕에 함몰되어 본능을 채우기 위한 행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성을 함락하기 위해 강간, 성추행, 성폭행, 납치 등이 만연해졌고 그렇게 욕구를 채운 후 자신의 행적을 지우기 위해 살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정욕은 사람들 마음 속 깊이 잠복하여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화약고가 되었습니다.
파괴욕이 세상을 훑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폭력과 살인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분노와 흥분은 온 세상을 깊이 달구었고 강한 자는 약자를 괴롭히고 힘자랑하는데에만 자신의 힘을 쏟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말에 복종하길 바라는 그런 세상으로 만들어갔습니다.
자위가 세상을 훑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스스로 성인이요, 착한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본능이 훑고간 후 남은 약간의 재물과 용역을 세상에 기부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으로 앞의 다섯개의 욕구로 인해 파괴된 세상에 눈꼽만큼의 자비를 베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럼으로 자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정당화하고 다시 본능에 충실한 삶을 반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워짐에도 신은 떠날 때 결심한 것처럼 세상에 일체 개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자신에게 남은 한 가지 욕망과 함께 세상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욕망은 꿈, 즉 희망입니다. 6개의 욕구가 세상에 여러가지 모습으로 구현되어 있는 것에 비해 희망이 구현되지 않은 것은 신이 세상에 보내지 않고 자기 안에 품고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들이 다시 선해질 것을, 또 자신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자신이 사랑했던 소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을 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사람이 누군가를 억지로 사랑해야할 의무가 없다고 한다면, 누군가도 그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아파해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랑은 용기있는 사람의 것이라 얘기하지만 용기를 낸 후 거절받은 상처, 용기내기까지의 고민과 위험부담은 모두 고백한 사람의 몫입니다. 그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슬퍼할 때, 어느 누구도 그에게 침착함과 의연함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은 분노의 포효를 낼 자격이 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성을 받아들였던 신은 인간에게 실망하여 인간성을 뱉어낼 명분이 있습니다. 신의 사랑을 거절한 소녀가 무죄이듯 상처를 뱉어낸 신 역시 무죄입니다. 호의로 얻은 행운은 호의가 없어짐과 함께 사라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