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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Mar 08. 2018

시를 잘 쓰던 친구

과거 기분이 안좋을 때 줄곧 시를 써주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는 모든 마음의 처방전을 가진 의사처럼 가슴을 환하게 밝혀주는 글을 즉각즉각 꺼내주곤 하였습니다.
친구는 누구에게나 친절하였지만 특별히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어항 속 물고기처럼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넘을 수 없는 벽을 보고 뒤돌아가듯 그는 사람과 관계를 갖길 주저하곤 했습니다.
숫기가 많고 말하기 두려워하던 그 친구를 두고 우리는 그가 평생 혼자 살거라며 놀리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놀림을 비웃듯 친구는 20대가 가기전에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결혼식 날 밝게 웃던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한달 전 친구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수색 근처 경찰병원 장례식에서 간단히 상을 치렀습니다.
붉게 부은 제수씨의 눈과 바닥에 누워자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에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습니다.
영정 속 친구는 학창시절 예의 그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 미소를 보고 우리 중 아무도 그의 사망 원인을 묻지 못하였습니다.
궁금하지 않기보다는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그에게 걸맞는 죽음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속 깊이 살던 문학청년, 영혼의 치료사인 그 친구.
그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램이었나 봅니다.

오늘 그 친구가 썼던 시를 찾아봅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종이에 연필로 쓴 시구 하나하나가 눈에 밟힙니다.
항상 우리 맘이 아플 때 그가 써준 처방전이 정작 그의 죽음을 그리워할 때는 듣질 않는군요.
글재주가 없는 나는 그를 추억하기 위해 오늘 이렇게 어설픈 송덕문을 끄적입니다.
글 너머 웃고있던 친구의 그 미소가 다시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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