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와의 인터뷰(5)

2. 게일(2)

by 병아리 팀장

에드워드 게일이라는 남자는 여간내기가 아니다. 그의 문학적 소양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은 늘 느끼는 것이지만 마땅한 미끼와 구실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게일이라는 남자가 다른 작가들과 확연히 갖는 차이점은 그에게서는 무언가 인간의 이성과 자아를 통제할 수 있는 주문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 스스로가 그것으로 자신을 통제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인터뷰의 목적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게일, 그는 어떻게 지금의 성공을 일구어냈는가. 그는 어떻게 자신을 통제해왔는가. 게일, 그는 어떻게 자신의 적성과 도달할 목표를 찾아 그에 적합한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을 선택했는가. 그것을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알아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인간 게일과 그의 문학 이야기는 그 다음이다.

다음날도 그는 같은 장소,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제와는 달리 나를 보더니 빙긋이 웃었다. 꼭 머리 굵은 꼬맹이가 재밌는 장난이 생각났을 때 웃는 그런 미소였다.

“자네 말고도 날 찾아온 사람은 많아. 근데 왜 다들 빈손으로 돌아간 줄 아나?”

“소모적인 실랑이에서 벗어나고 싶어서겠죠.”

“그럴 거면 애당초 오지도 않았겠지. 다들 자네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기자란 존재는 웬만한 고생과 무시에는 눈도 껌뻑 안하는 사람들이야. 사명감을 가진 이들은 뿌리친다고 뿌리칠 수 없는 무리들이지.”

“그러면 어떻게 벗어나신 거죠? 그 사명감 높은 분들에게서?”

“내가 뭘 한 게 아냐. 그들 스스로가 깨닫고 떠난 거뿐이지.”

“무슨 뜻입니까?”

“나는 내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 조건을 달았어. 내가 한 얘기는 반드시 하나의 작품으로 가져가야 된다고. 완결된 글, 완성된 하나의 생명이 아닌 이상 가져가지 말라고 말이야.”

“?”

“난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충분히 했어. 내가 얘기한 영역 외의 질문은 받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주었지.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어. 아무것도.”

“기자의 자유로운 질문은 받지 않고 선생님 본인 하고픈 말만 하신 거군요. 거기에 완결된, 생명이 닮긴 글을 작성해가라. 그렇지 않으면 가져가지 못한다?”

“그렇지. 한데 가져가지 말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어. 어차피 기자라는 입장에서 취하려는 내용엔 한계가 있고 거기에 내 이야기를 재단해서는 도저히 기사라는 형태로 담아낼 수 없을 테니. 자네들은 나의 본질이 아닌 껍데기에만 관심 있을 테니까.”

“그래서 어제 저한테 ‘얻어갈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하신 거군요?”

“알아들었으면 얼른 가보게. 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 싫어한다네.”

“선생님한테는 기자들은 다 똑같은 자들로 보이겠지만, 저한테는 인터뷰이 하나하나가 개성을 가진 인격체입니다. 같은 말, 같은 사람이라도 듣는 사람이 다르다면 다 의미가 다른 거지요. 말은 어느 한쪽만을 위한 것이 아니니까요. 하다못해 매일 반복하는 기도문도 들어주시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이 그랬으니 자네도 가보라는 말을 듣고 간다면 빈손으로 돌아가신 사명감 높은 그 분들보다 정말 못한 거겠지요.”

“그래서, 자네도 해볼 생각인가?”

“살인자나 강간범, 정신병자 증언도 수차례 듣는데요. 뭘”

“내가 같은 조건을 제시해도 할 건가?”

“하다못해 누구도 부정 못할 완벽한 헛고생이었다는 기행르포라도 가져갈 생각입니다.”

“그러면 하는 걸로 하지. 하지만 자네가 중도에 포기할 경우 뭔가 대가를 받아야 되겠어. 다음에 찾아올지 모르는 기자 친구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뭔가가 필요하거든. 그래야 다시는 이런 소모적인 노동을 안 할 수 있을 테니.”

“뭘 하면 되는 건가요?”

“거짓말”

“?”

“간단한 거야. 거짓말. 허위기사를 쓰라는 거지. 단, 대상과 주제는 내가 정하여 줄 거야. 특정인에게 피해가는 내용은 아니니 걱정 말게. 어차피 자네 업계사람들이 자주 하는 짓이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게야. 단, 인터뷰이가 시켜 거짓 글을 쓰는 인터뷰어는 확실히 역사에 남을 일이겠지.”

“제정신입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타인에게 피해갈 내용은 아니니 걱정 말게. 단, 자네에게 양심이나 소명이라는 게 있다면 조금 가슴 아플지도 모르겠구먼. 자네 뜻대로 일이 안 풀려서 허위기사를 쓰게 된다면 말이지. 난 다시금 나를 찾아오는 기자 친구들에게 자네와 자네의 역사에 길이 남을 기사를 소개하는데 내 이야기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약속하지. 그렇게 되면 아마 그 친구들은 내가 아닌 자네를 찾아갈 듯싶지만.”

스스로 예의 있고 도덕적인 사람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나이 지긋이 많은 연장자의 턱을 한 대 올려 치고 싶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경우 없고 안하무인인 사람을 상대할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폐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내 호흡이 가빠지는 걸 눈치 채지 못해야 하니까. 상대방 생각대로 되고 있다 느끼는 것만큼 굴욕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기자를 떠나 인간으로서.

“좋습니다.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제가 쓴 글이 꼭 기사로 등재될 거라곤 약속을 못 드리겠군요. 짐작하시다시피 그렇게 영향력 있는 위치는 아니라 서요.”

“그건 걱정 말게. 자네 직장이 아닌 내가 마련해 둔 루트를 통해 할 터이니. 역사에 길이 남을 기사를 조그만 일개 삼류 신문사에서 내게 할 순 없지.”

더 이상 얘기해봐야 좋을 건 없으니 바로 시작하자고 얘기하려던 찰나, 그가 내 말을 끊고 먼저 말했다.

“오늘은 이만 하기로 하지. 서로 여러 가지 제안과 약속이 오고 갔으니 하루 쉬면서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게야. 남은 시간 하와이의 경치나 좀 즐기며 보내라고. 나는 내일도 여기 있을 테니 걱정 말고 찾아오게나.”

코나에서 게일 씨를 만난 이튿날은 그렇게 끝났다. 그 동안 게일 씨를 찾아 헤매었던 그 어떤 날들보다 긴 하루였다. 나는 묵고 있는 모텔로 돌아와서 카운터에 들렀다. 직원에게 3일 거주 예약에서 장기 거주 예약으로 변경을 요청하였다. 오랜만에 장기투숙자를 맞게 된 직원은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처리해주었다. 보통이면 나 역시 기분 좋게 마주보고 인사하겠지만 오늘의 내 정신 상태로는 도저히 무리다. 나는 내가 묵는 방으로 서둘러 향하였다.

방에 들어와 침대에 쓰러지듯이 몸을 던지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여간 내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 정도의 괴짜일 줄이야. 당장 내일 내가 무슨 일을 겪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였다. 고생 끝에 낙이 아닌 더 큰 고생이 찾아온 오늘을 일단 여기서 마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일은?’ 더 이상 나쁜 생각이 내 머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서둘러 소등을 하고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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