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와의 인터뷰 (4)

2. 게일(1)

by 병아리 팀장

그는 하와이 빅 아일랜드 해변의 카페에서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다행히 그새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구나.’ 안심하는 한편 ‘고작 여기서 그 희대의 수상작이 나왔단 말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 정도로 그가 있는 곳은 작고 소박한 공간이었다. 언뜻 보아서는 도서관이 아닌 야외가 개방된 넓은 카페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적막하고 전원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사진과 얼굴을 대조해보고 난 후 그에게 다가갔다.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가 되자 일단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볍게 인사를 했다.

“에드워드 게일 선생님 맞으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인사를 하고 그 앞에 한참 서있어도 그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나오는 무례한 기인을 내가 직접 만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그 고생을 했는데 아무런 수확 없이 돌아가게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감정도 불현듯 찾아왔다. 내가 이도 저도 못하고 한참을 서있는 동안 그는 충실히 자신의 할 일에만 매진하였다. 게일 씨는 두 시간이 지나서야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조용히 눈을 치켜들며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 기자인가?”

“네. 에드워드 게일 선생님 맞으시죠? 아이세 저널의 기자 존 멀독이라고 합니다.”

“처음 듣는 신문인데?”

“네. 잘 모르실 겁니다. 아이세 저널은 일반 신문과 달리 미국 내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 온 외국학생 및 교포들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신문이지요. 저는 주로 지역 내 소식이나 유명인사와의 인터뷰를 취재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삼류 신문사 기자가 나를 인터뷰하러 왔구먼. 기자로서 한 몫 잡고 싶어 온 건가?”

“솔직히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기자로서도, 인생 후배로서도 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죠.”

“그렇다면 긴 시간 끌 것 없이 결론만 말하겠네. 인터뷰는 사절일세. 자네에게, 그리고 자네의 신문을 보는 구독자 전부에게 나는 아무 할 말이 없어. 그만 돌아가 줬으면 하네.”

“어째서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단번에 거절하시는 겁니까?”

“자네나 그밖에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나 자신을 오락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네. 작가는 작품 외에 세상에 다른 무언가를 말해야할 의무가 없어. 내 글에 관해 쓰고 싶다면 직접 보고 자네 의견을 기사로 올리든가 이름 높은 비평가 분들 의견을 등재하면 될 것 아닌가? 참, 자네는 내 껍데기에 흥미가 있어 찾아온 사람이니 용건은 내 글이 아닌 나인가?”

“둘 다지요. 이렇게 완강히 거부하실 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습니다만.”

“그렇다면 어서 돌아가 주게. 쓸데없는 시간낭비하지 말고.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네.”

나는 살짝 도발해보기로 했다. 이런 고집 있는 사람을 상대하려면 약간의 자극이 필요하다. 아니, 상당히 강한 자극이 불가피하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설득하기 보다는 이쪽에 유리하도록 상황을 이끌어가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니까.

“그런가요? 애초부터 할 말 같은 건 없었던 게 아니고요? 선생님 자신에 관한 것 뿐 만 아니라 선생님의 작품에 관해서도 말입니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기다리던 질문이 나온 터라, 나는 생각했던 답변을 늘어놓았다.

“본인이 그토록 정성들여 일구어낸 작품에 대해 일언반구 설명 없이 인터뷰를 기피한다는 것은 선생님 스스로가 본인의 책에 대해서 떳떳하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제가 보기엔 선생님은 아직 글을 완성하지 못한 것 같아요. 세계적인 상을 수상하실 정도로 훌륭한 글을 쓰신 분이라면 아무리 겸손하다 하더라도 제 작품에 대한 애착정도는 있기 마련이죠. 그 어떤 거장도 예외는 없습니다. 헌데 선생님은 저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모든 타인과의 접촉을 회피하셨어요. 그건 선생님이 본인 작품에 자신이 없을 정도의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이를테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몰래 받았던가 말이지요. 그래서 인터뷰를 회피하고 질문도 사절하시는 것 아닙니까? 도도한 척, 있는 척하시며 그렇게 말하면 더 매달릴 거라 생각하시나 본데 그만 솔직해지시는 게 어떻습니까?”

대개 이 정도의 말을 하고나면 주먹 한방이나 음료수가 날아오기 마련이건만 이 양반은 처음 봤을 때 그 표정, 그 자세에서 전혀 변화가 없었다. 게일 씨는 나와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로 내 무례한 질문에 가벼운 미소와 함께 대답해주었다.

“인터뷰했다고 치고 자네가 멋대로 써 갈기면 되겠구먼.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걸 보니 잘 할 것 같은데. 뭐라 쓰든 소송 걸 일은 없을 테니 잘해보게.”

이제 와서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어떻게든 선생님과 인터뷰하고 싶어서 제가 경솔하게 행동하였습니다.’ 라고 하더라도 아무 것도 달라질 것은 없겠지. 나만 우스운 꼴을 당할 뿐이다. 그렇게 될 바엔 이왕 이렇게 된 거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한 번 더 그를 몰아붙여보기로 했다.

“선생님이 쓴 글을 보니 웬만한 학생 일기장보다 못한 것 같더군요. 필자인 본인 스스로가 갈팡질팡 하는데 무슨 영감이 있다고 그런 작품에 상을 주어 기자들을 이리도 피곤하게 하는지.”

거짓말의 연속이다. 사실 삼류 기자나부랭이인 내가 봐도 그의 글은 걸작, 그 자체다. 이성과 감성, 동기와 본능 사이에서의 판단과 선택에 대한 자기고백과 서사과정, 또 그것을 구술하는 문체는 작가 내면에서 한번 번역된 문자라는 한계를 넘어 읽는 이의 닫힌 영혼에까지 닿아 그 문을 열리게끔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와의 인터뷰는 따내야 하는 내 인생의 마지막 티켓이라 일부러 이렇게까지 무리하면서 강하게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양반은 그 정도로는 넘어가지 않았다. 유유히 식당 뒤편 주차장으로 걸어간 후 자기 차를 타고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렇게 도서관에 홀로 남겨졌다. 그를 찾아낸 하와이 빅 아일랜드의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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