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산 집에 월세를 준지도 벌써 2년이 되어간다.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는데 월세를 20만원 더 올려도 된다고 한다. 20 올리면 한달 월세만 100이 되는데? 불로소득을 100이나 받으라고?
겁이 나서 말문이 막힌 나에게 부동산 업주는 자신이 임차인을 설득할테니 걱정말라고 한다. 거절하면 다른 사람 찾으면 된다는 말을 더하면서. 상승폭만큼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중간자를 자처하며 어려운 역할도 도맡는 것이리라.
나는 얼굴도 본적 없는 임차인에게 미안하여, 좋은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 내 월급의 1/3 가까운 불로소득이 생겨난 것이 겁나서, 그리고 임차인과 집주인, 빚과 은행, 금리, 물가로 이어지는 이 개미지옥같은 시스템에 아찔해서 전화를 끊고 무작정 어디론가 뛰어갔다.
생각없이 뛰다보면 마음도 정리되고 생각도 없어지고 현실도 잊을 것 같아서 숨이 터질만큼 죽어라고 뛰었다. 폐가 터질듯이 뛰다보면 몽롱한 정신 상태에서 조물주가 나타나 '사실 이 모든 건 꿈이야. 내가 설마 그렇게 냉정할리 없잖아.'라고 얘기해줄 것 같아서. 이런저런 희망과 가정을 거듭하다 뇌는 산소가 부족하다는 적신호를 나에게 보내고 나는 이내 뛰는 것을 멈추고 만다.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는 내게 현실은 뛰어봐야 고작 여기까지냐고 비웃음을 날리는듯 하다.
주제를 알고 감사해라. 부모 잘 만나서 운이 좋아서 시스템의 하단에 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알아라.
두번 다시 까불지 마라. 죽어라 일해 얻는 돈보다 한해 열심히 성과내어 얻는 보너스보다 가진 자의 불로소득이 더 큰 현실을 인정하고 알아서 기어라.
소리없는 속삭임은 내 머리와 마음에 쉼없이 울리며 내가 얼마나 작고 무능한 존재인지, 얼마나 운이 좋은지를 끊임없이 재확인해준다.
늘 맘에 품던 이상과 의욕은 오늘 걸려온 전화 한통의 차가운 현실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