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을 살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nnie Volter Aug 11. 2018

누가 개를 죽였을까

2004년 8월. 100일간의 훈련소 교육을 마친 후 나는 예비군 훈련을 주관하는 부대로 배치되었다. 현역 입장에서는 땡보로 불리고 공익 입장에서는 빡세다 불리는 곳이었다. 그런 노른자 부대라 그런지 부대에 허용된 티오는 적었고 나는 세 번째 병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들어간 곳에는 상병 두 명이 선임으로 있었다. 한 명은 딱 봐도 왕고의 느낌이 나는 인물로 바닥에서 구른 경험이 많아보이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두살 정도 많아 보였나. 다른 하나는 자신감 없고 무언가 억울하고 불안해보였지만 눈에는 어딘가 분노와 외부와의 소통이 차단된 어떤 벽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앞선 왕고가 나의 사수, 뒤의 상병이 내 바로 위인 선임이었다.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여름에 만나 가을이 지나고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올 때쯤 왕고는 어느덧 말년이 되어 있었다. 머리가 좋지 못한 나는 성질 더러운 그에게 갈굼을 당하며 9개월을 보냈고 나의 선임은 그런 나를 챙기며 내가 사고친 부분을 늘 수습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이병에서 일병으로 올라갔고 우리의 봄은 더 깊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고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부대 옆 오일장에서 개를 사왔다. 말없고 우울해보이는 내 선임이 개를 좋아한다는 것을 왕고가 듣고 무슨 이유에선지 개를 사온 것이었다. 

9개월을 지내는동안 내가 알게된 바로는 왕고는 일병 시절 내 선임이 갓들어왔을 때 고참들과 편을 먹고 그를 많이 괴롭혔던 것 같았다. 고참들이 하나 둘 전역할 때까지 내 선임은 그들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하였고 결국에는 왕고와 그가 둘만이 남을 때까지 새로운 후임은 들어오지 않았다. 둘만 있을 때 그 어색한 분위기는 그 때부터였었다고 생각하다. 그러다 선입의 입대 후 만 1년이 지나서야 내가 들어왔고 왕고는 내 선임과 잘 지내고 싶었던지 나를 갈구며 이런 저런 놀이에 그를 끼우려했지만 지난 일에 대한 감정을 잊지 않아선지 원래 남과 어울리지 못했는지 선임은 늘 벽 하나를 치고 그와 거리를 두었다. 이제 말년에 좋은 이별을 하기 위해선지 왕고는 늘 어딘가 미안한 맘을 가졌던 선임을 위해 개를 사왔고 그렇게 무언의 화해의 손길을 그에게 건내었다.


개를 좋아한다는 선임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는 매일 부대 사무실 안으로 개를 데려왔고 일주일에 한번씩 손수 개를 씻기었다. 점심을 남보다 일찍 먹고난 후 선임은 연병장에서 개와 산책을 하며 그를 훈련시켰고 손수 남은 잔반과 영양식을 개에게 챙겨주며 시간을 보내었다. 개는 선임을 잘 따랐고 종종 그가 자리를 비우게 될 때는 내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지났고 어느덧 왕고의 전역이 다가왔다.


왕고의 전역 1주전 선임이 아끼던 개의 집에 사료를 확인하러 갔던 나는 개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개는 엷게 눈이 뜬 채로 죽어있었다. 눈에 보이는 외상은 없었고 무언가 잘못 먹었을 때 생기는 구토의 흔적도 없었다. 열악한 군대의 환경에서 개의 죽음에 대한 추적을 할 길은 없었고 우리는 개를 땅에 잘 묻어주기로 했다. 왕고는 말이 없었고 선임은 표정이 없었다. 결국 내가 직접 부대 앞 정원에 개를 묻었다.


개가 죽고 1주일 후 왕고는 전역하였다. 선임은 무표정하게 그를 떠나보냈고 그렇게 우리는 둘만 남았다. 왕고가 전역한지 한 달 후 선임은 오일장에서 다른 개를 사왔지만 사흘만에 죽었다. 오일장에서 데려올 때는 건강했는데 부대에만 들어오면 어찌된 연유인지 시름시름 앓더니 죽는 것이었다. 두달 후 선임은 다시 오일장에서 개를 사왔지만 그 개 역시 부대 내 공사현장의 시멘트를 먹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그 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선임은 전역하였고 우리 부대 내 개가 들어오는 일은 다시 없었다.


그가 전역한 후. 개들이 묻힌 정원을 걷다 나는 문뜩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부대에 생수를 공급해주는 아저씨가 있는데 주말마다 이 근처를 꽤 오랜 기간 산책했다고 한다. 주말이 되면 우리들은 자주 외출을 나가곤 했는데 그가 산책을 돌 때 내 선임이 개와 있는 것을 자주 봤다는 것이다. 가까이서 보지 못했지만 선임은 개와 단둘이 있을 때 개에게 이어폰을 끼워 음악을 듣게 하고 개에게 말을 거는 등 희안한 행동을 하였지만 그는 그게 개를 사랑해서 그런 것인 줄 알고 넘어갔다고 한다. 헌데 몇 가지 전해들은 내용에서 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그가 개를 데리고 부대 밖을 자주 산책했다는 것과 개를 박스에 넣고 어딘가로 데려갔다는 것이다.


외출할 때 개를 데리고 어디를 가고 싶었던 것일까. 부대에 개만 남으면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되었던 것일까. 애지중지하던 개와 한시도 떨어지기 싫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선임의 어두운 부분이 개를 학대하는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지. 아니면 개에 편집증적인 애착을 보이던 선임의 모습을 우연히 본 왕고가 자신에게 계속 벽을 치고 있는 선임에게 억하심정에 전역을 앞두고 개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은 아닐까.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답은 없고 증거도 없다. 허나 내 심증으로는 개의 죽음은 분명한 타살이었고 용의자는 세 명이다. 나, 선임, 그리고 왕고. 누구에게도 죽이고자 하면 죽이고 싶은 동기가 있고 무고하다면 무고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무의식은 자꾸 선임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의 어두운 첫 인상, 왕고와 개를 볼 때의 눈빛과 불길한 분위기가 아직도 아른거린다. 개의 죽음을 보았을 때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바로 그의 얼굴이었다. 누구에게도 맘을 안주던 그가 유일하게 맘을 열었던 동물, 허나 자신이 베푼 호의만큼 그를 특별히 여기지 않았던 어린 개가 나와 왕고에게 꼬리를 살랑거리는 것을 보고 질투 비슷한 무언가를 느낀 것은 아닐지. 확실한 것은 그가 개에게 베푼 호의는 특별했고 그에 대한 개의 반응은 평범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선임을 개의 범인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이제 개가 죽은지 15년이 지났다. 왕고도 선임도 사고가 없다면 버젓이 살아서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사회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지난 과거의 모습 그대로 어딘가 조직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잊고 싶은 과거를 멀리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까. 어떤 모습으로 살던 그들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 한 생명의 죽음이 있었고 그들 중 누군가는 범인이라는 것이다. 생명을 죽이고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그들 중 한명에게 신은 어떤 벌을 내리고 있을까. 악마는 무엇을 부추기고 있을까.


차가운 밤바람이 부는 오늘 15년 전에 죽은 개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를 죽인 범인으로 생각되는 선임을 떠올린다. 그는 어디서 엇나간 것일까. 그는 하나 이상의 생명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까. 마음 한 곳이 서늘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과 악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