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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Nov 06. 2018

감성글보다 인생글이 좋다

어느 날부터 감성글이 싫어졌다. 진심을 전하고 공감해줬으면 한다는 저자의 말이 왠지 가식적으로 느껴져서다. 자신이 누구인지 가리고 자신의 삶이 어떤지 얘기도 안하면서 자기 맘만 늘여놓고 알아주길 바라는게 뻔뻔해보이기도 한다.

세상엔 신경쓸게 너무 많다. 오늘 오픈마켓에 어떤 상품이 특가로 떴는지, 내가 주문한 물품이 짝퉁이 아닌지, 배송에 얼마나 걸리는지, 도착 시 집에 아무도 없으면 어떨지 등 관심을 안두면 손해볼 것들 투성이다. 이런 복잡한 세상에 자기 자신을 꽁꽁 감춰두고 지 속내만 풀어둔 글에서 독자가 무슨 해갈을 얻을 수 있을까. 바로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는게 당연하지.

누구보다 넋두리같은 쓰레기글을 많이 써온 사람으로서 감성으로 포장된 감정쓰레기는 결코 작품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블로그질을 한지 3년이 넘어서야 수긍하게 된 것이 늦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더 늦지 않아 다행이다. 누군가 읽어주길 원한다면 아파서 징징대는 감정의 응얼임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겪은 어려움, 가정환경, 생활 등 정보를 노출하는 것이 훨씬 낫다. 본인이 식별될 수 있는 개인정보 말고 말이다. 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야 그래도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나 보지 않겠냐고.

어떤 사람이 기울어져가는 가정 환경에도 부모를 부양하며 꿋꿋이 직장생활을 하고 퇴근 후 글을 쓰며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는 이야기보다 분당에서 파주로 시간맞춰 외근가려고 카카오택시를 켰는데 재수없게 20분 넘는 거리의 기사가 콜을 눌러 길바닥에서 30분을 기다리다 약속장소에 1시간 늦고 파투났다는 얘기가 훨씬 와닿는다.

퇴근 후 틈새시간을 이용해 글쓰기 스터디와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며 창작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보다 3년만에 연락온 대학 후배로부터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권태기가 와서 큰 일이라고, 그래서 혹시 자신들의 갈급한 욕망의 파트너로 함께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롯데리아 아제버거를 먹으면서 들었다고 썰을 푸는게 훨씬 솔깃하다. 왜냐면 당신과 아무 관계없는 제 3자인 나는 당신이 누군지 어떤 마음인지보다 잠깐이나마 내 머리를 짓누르는 뇌압의 틈새로 해갈하게끔 해주는 미친 이벤트가 더 땡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성글을 꾸준히 보는 사람이 있긴 있다. 재미없는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고 동어반복에 가까운 늘어진 감성에 좋아요와 댓글을 눌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글보다 그 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글쓴이도 알았으면 좋겠다. 자기애에 똘똘 뭉쳐 블루라이트 차단막처럼 세상을 보고 싶은 것만 필터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 쓰레기는 이제 먼 곳에 치워버려줬으면 좋겠다. 감성은 당신만 있는게 아니라고. 되려 매일 똑같은 단어 반복하며 끄적인 당신보다 그런 당신의 쓰레기같은 글을 꿋꿋이 참고 보며 경청의 자세를 닦아온 독자가 더 감수성이 풍부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고 말이다. 본인의 글이 긁지않은 복권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 당신 곁에 계속 있어주는 누군가에게 늦게나마 관심을 갖길 바란다. 싸이 간지글만 못한 당신의 글을 꾸준히 읽어준 그 사람이 진짜 긁지 않은 복권이고 세상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당신의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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