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길을 걷다 문득 영감이 떠오를 때와 블로그에 에디터를 띄우고 글을 쓸 때의 마음과 자세가 놀랍도록 다르다.
의도없이 걸을 때는 어떤 편견에서도 자유롭게 세상을 관망하다가도 키보드에 손만 올려놓으면 무언가 보상을 받고 싶은 것처럼 내 입장만 토로하려한다. 그러다 남이 쓴 글을 보고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은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본다. 자신의 세상이 실제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본인 기준의 노력과 본인 기준의 꿈과 본인 기준의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열패감이 많은 사람은 피해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누구에게 상처받아서 원하는 무언가를 얻지 못해 속이 상해서 배알이 뒤틀린 눈으로 세상을 자기 수준과 심정에 맞춰 재단한다.
작가의 눈은 이 두 부류에서 모두 벗어나야 한다. 자기애에 빠진 사람은 작가라는 헛꿈을 꾸는 셀럽지망생일 뿐이고 열패감에 취한 사람은 아무도 보지 않는 넋두리나 쓰는 루저일 뿐이다. 작품이나 상품이 될 수 있는 글은 영영 나오지 않는다.
자존감이 낮은 나는 영락없는 후자 쪽이다. 자신에 취해있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지만 무언가에 속이 상해 늘 제3자가 불편해할만한 글만 대량생산하고 만다.
때문에 아직은 글 쓰는 것에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지만 스스로 회복할 생각이 없는 피해자가 읽고 쓰고 생각하는 내용이란 뻔하다. 좀더 생각을 비우고 좀더 넓게 보자. 과연 피해자인지 다쳤는지 얻은 것은 없는지 아프기만 했는지. 정말 대단한 일이었는지 별일 아니었는지. 꽁한 마음을 벗고 다시 타자기 앞에 서자. 아직은 글에 욕심부릴 때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