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안되는 취미 중 하나가 독서인데 정독보다는 속독과 발췌독을 한다. 편집자 겸 엠디일을 하느라 돈되는 작품을 찾는 직업병이기도 하지만 급한 성격과 취향적인 면이 더 크다. 여가 시간에 나는 맘에 드는 서적을 구입한 후 원하는 내용만 쏙쏙 빼서 읽은 후 중고서점에 파는 경우가 많다.
정독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최근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정보의 소유 및 파악이 아닌 호흡과 리듬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글과 관련된 일이고 글외에도 워낙 할 것들이 많은 세상이 되고보니 작가의 내면 세계에 들어가 그와 그의 말을 이해하는 것보다 작가가 어떻게 독자를 글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그 안에 정착하게 만든ㄴ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요새 한창 핫한 4차 혁명에 관한 글을 읽는다 쳐보자. 시대를 앞서고자하는 욕망, 내 직업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어디가서 무식하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은 보호심리 등으로 4차혁명에 관한 책을 찾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허나 책을 찾아 목차와 앞의 몇문단을 읽은 후 과연 내가 이 책을 왜사려는지 반문하다 책을 덮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인터넷 서칭만 해도 알만한 내용,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정보들, 시대의 변화에 매몰된 나머지 나라는 개인에게 어떤 방향과 귀감도 제시못하는 글은 결국 창고행의 운명일 뿐이다. 이는 실용도서 뿐 아니라 소설, 에세이, 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내가 4차혁명 책을 본다면? 책을 보고 관련 내용을 전부 이해하는 것보다 작가의 관점과 작품 내 키워드, 챕터별 흐름을 통해 얼마나 와닿게 읽히는지 문단과 문단 간 생각의 여지를 남겼는지, 지금 접었다 다시 보게 만드는 느낌을 남기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어설프게나마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타겟팅하는 독자가 누군인지, 그를 정보의 미로에서 방황하지 않게 작가의 세계로 어떻게 끌어들일지, 작가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경험을 어떻게 쌓게 할지, 그리고 마침내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이는 잘 가공된 정보 못지 않게 읽는 이로 하여금 기분좋은 경험을 선사하는 것을 중시하는 가치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루 20개 내외의 원고를 검토하다보니 생긴 버릇이기도 하다. 이런 개인적인 부분 외에도 모바일 시대에 맞게 보다 독자 편의적으로 글도 바뀌어야 한다는 사고 덕도 한몫 한달까. 여러모로 작가는 앞으로 더 고생할 일이 많을 것 같다. 그만큼 변화에 적응하면 기회도 많겠지만.
P.S : 출판을 꿈꾸는 문학도들 작품을 쓰는 것 외에도 이런 상품기획에 대해서도 고민을 충분히 해보았으면 좋겠다. 자신이 보기 좋은 글이라고 독자가 보고 싶은 글은 결코 아니다. 내면의 놀이터에 빠져있기 보다 본인의 글의 주인이 될 독자에 대해 연구해보고 그들에게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는 책을 만드는데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런 부분은 출판사도 서점도 고민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하루에도 수백종의 책을 접수받고 판매하느라 시간이 없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하는 사람은 프로작가를 꿈꾸는 작가 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