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를 빠뜨렸다. 내가 요새 볼만한 책이 없다는 얘기다. 하는 일이 실용도서 엠디이다보니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 재테크는 업무상 실컷 봐서 여가시간까지 보고 싶진 않다. (솔직히 요새 같은 세상에서는 책보다는 신속한 뉴스, 음성적으로 얻는 정보가 훨씬 더 효용성이 크기도 하고)
내가 책으로 구매하고 보는 도서는 시나 에세이인데 작품보다는 작가를 보고 사는 경향이 많다. 시는 박준의 글을 좋아하고 에세이는 이석원의 글을 좋아한다. 이유는 나에게 좋게 읽히는 감성과 인생의 황금비율이 딱 그들의 문체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글배우, 흔글, 백영옥의 에세이는 (내 기준에서) 감성이 과다하여 몇 쪽보다 튕겨져 나간다. 밥 딜런, 프로스트, 스펜터 존슨의 글은 뭔가 훌륭해보이지만 문화차이를 이겨내기에는 (내가) 역부족이다. 김소영, 유병재, 박정민 등 셀럽들의 글은 궁금한 그들의 일상이 많아 호기심에 한번 쭉 읽게되지만 다시 볼 가치는 솔직히 없다.(내 기준에))
이석원, 박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내가 보기에) 나랑 비슷한 종류의 실패와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고 (박준은 직업, 이석원은 관계라는 부분에서. 그리고 그 실패와 아픔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까지) 각도를 다를지언정 상처를 직시하며 포장하지 않은 글을 쓰기 때문이다. 일상을 통해 허구를 통해 강약을 조절하며 쓰지만 결코 현실에 눈감거나 도외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보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자신이라는 캐릭터를 잊거나 변질시키지도 않는다. 보이는대로 느끼는대로 쓰고 사심을 들이지 않는다. 그게 좋다.
일과 사랑에서 열패감을 삼십년 넘게 느껴온 나에게는 매우 나쁜 버릇이 있는데 노력이라는 행위를 할 때 1. 액면 그대로의 나 자신이 아닌 미화된 타인인 나를 상상하며 환상에 취하는 것과 2. 성공과 보상이라는 사심이 강하게 베인다는 점이다. 이런 나의 본성을 버리고 잠시나마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와 어떤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이 독서이고(그리고 기도) 그런 독서가 가능한 책이 바로 박준이나 이석원 작가의 글이다. 그래서 이번에 이석원 작가의 신작이 나온 것에 크게 기뻤고 주저없이 구매했다. (막상 주문온 책을 보니 내 기대가 좀 과했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확실히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취향이 명확하다는 것은 인생의 큰 축복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 중간중간 기대라는 것을 할 수 있으니. 내 인생과 내가 만들어내는 부산물은 좀처럼 나를 가슴뛰게 하거나 설레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가. 그래도 인간이고 그렇게 무능한 인간은 아닌지라 막연한 레벨의 희망은 갖게 해주는 무언가(재테크와 업무)는 갖고, 또 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많이 부족해서 이런 아이템(?)들은 늘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류의 책이나 음악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가 아직 못찾은 것일지도 모르니 나도 부담되지 않게 종종 찾아보겠지만.
P.S : 영화 <보헤미란 랩소디>를 보고서야 퀸의 음악에 관심이 생겼다. 그동안은 문화적 장벽인지 왠지 모를 진입의 어려움을 느껴 도외시했다. 분명 찾아보면, 그리고 살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꽤 많이 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