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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Nov 10. 2018

소유에 대한 올바른 인식

언제부턴가 주말에 약속을 잡기 싫어진 순간부터 집에서 책과 드라마, 영화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한주간 방영하는 드라마를 보며 옥석을 가리고 정주행하거나 전문가와 대중 사이에서 명작이라 불리는 영화를 찾아 다운받아 묵혀놓으며 나름의 문화생활을 즐기곤 한다. 좋아하는 작가(이석원, 기형도, 밥 딜런 등)와 끌리는 소재(<나는 그냥 버스 기사입니다> 등)의 시와 에세이를 내킬 때마다 틈틈이 읽고 왠지 뭔가 있어보이는 도서(<컴 클로저>, <개인주의자 선언> 등)를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보기도 한다. 요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퀸에 빠져서 외출할 때면 그들의 노래를 무한반복하며 따라부른다. (<Somebody to love>와 <Keep youself alive>는 코인노래방에서 꼭 도전해보고 싶다. 망할 걸 알면서도.)


아무튼 오늘 쓰는 이야기의 요지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것이 아닌 위의 잡다한 과정에서 생긴, 미처 받아놓고 묵혀두고 있는 문화생활들의 재고품이 나의 인식과 삶에 미치는 영향이다. 뭔가 이색적인 것을 보려고 시간을 들여 서칭하고 다운받아 놓지만 하루에 집중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기에 재고는 늘 쌓이게 된다. 이렇게 묵혀둔 재고가 초심과 달리 일종의 의무이자 소유물로 인식되면서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제약하게 된다. 가볍게 보고 지워도 되는 마블 영화 19편을 시리즈라는 이유로 큰 용량에도 불구하고 지우지 못한다던지, 안 본지 1년이 되어가는 밥 딜런 가사집을 차마 중고서점에 팔지 못하고 서재에 고이 모셔놓는다던지 말이다. 지워봤자 나중에 다시 다운받아 볼텐데, 지금 팔면 나중에 보고 싶을 때 못볼텐데 등의 기회비용으로 위장한 속삭임이 텅빈 상태로 회귀하려는 나의 귀소본능을 막아선다. 그러다 갈팡질팡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붕뜬 상태로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많다.


마침 낮잠을 자고 상쾌해진 몸 상태에 게으름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으로 헬스센터에서 가볍게 런닝을 하며 소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무언가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집에 복귀한 후 바로 컴퓨터에 깔려있는 마블과 해리포터 영화를 죄다 지워버렸다. 또, 안보는 책을 중고서점에 팔수 있는 종류와 아닌 종류로 나눠 내일 바로 처리하기로 하였다. 못파는 책은 지하 단지 도서관에 기증해버릴 예정이다.


이런 결론을 낸 이유는 텅빈 상태에서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해낼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 내지 그런 시도를 해볼만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요새들어 자주 들기 때문이다. 엄청나거나 그냥저냥이거나, 하여튼 성공이라 불리는 결과물을 거둔 주변의 사람을 둘러보면 죄인이나 도망자처럼 쫓기는듯한 부지런함이나 자동차 생산라인의 분업자같은 규칙성과는 거리가 먼 백지상태를 기본 베이스 라이프로 깔고 가더라. 그런 백지상태에서야 일종의 사심(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겠다는 생각이나 지금의 어떤 행위의 결과물로 인정이나 보상을 받겠다는 등의)없이 무중력상태마냥 어떠한 저항이나 방해물을 피해 정확히 목표를 맞추는듯한 결과를 이루어내더라. 물론 그것이 일반화하거나 재현하기 어려운 속성의 것임은 알지만 생에 몇번 없는 그런 결과는 대부분 그런 때 나는 것 같다. 프레디 머큐리가 '보헤미안 랩소디'를 작곡할 때나 하상욱이 서울시를 생각해낼 때나 발없는 새와 언더KG가 유튜브 리뷰를 시작했을 때나.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일상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벗어날 때 새로운 무언가가 툭 하고 튀어나온다는 경험. 살면서 남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고듣고 대리경험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임하지 않은 그 느낌. 그게 요새따라 묘하게 강하게 울린다.


노력에 대한 배신을 많이 경험해본 한국의 30대 샐러던트 중 한 사람으로서 그 막연한 믿음에 기분좋게 따라보련다. 마침 세계 전체가 불경기로 빠져들어 어디에 투자하기도 신통찮고 내 능력에 비해 훨씬 좋은 회사에 아직 덜 빡세게 다니고 있으며 외국어, 자격증 등 어떤 스펙을 쌓기도 애매한 이 시점. 소개팅, 모임 등 타인과의 만남에서 어떤 긍정적인 힘도 받지 못하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과 자꾸 이어지지 않는 결과 및 연애권력에 대한 반감과 누군가를 사랑하고싶은 욕구가 뜸해진 지금이 적기인 것 같다. 의무와 재고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싹 치워버리고 빈 공간에서 뭘 시작할지 기대해보자. 계획이나 상상은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떠오를 때 짜던가. 간만에 맘 편한 저녁이다.



P.S : 오늘도 '열심히'를 되새기며 노력(?)하는 A양에게 '아무것도 안할 때 대단한 일을 하게 된다'는 곰돌이 푸의 대사와 '보헤미안 랩소디'를 작곡할 때의 프레디 머큐리의 멍한 눈동자가 떠오르길. 살아있는 사람의 말과 글로는 그녀가 당최 받아들이지 않거든. (고집쟁이 아가씨.;;) 그냥 어느 날 갑자기 탁 하고 떠오르는 은사가 임하길 바란다. 꽉 막힌 당신의 작은 틈새로 38도씨 데킬라 같은 유목민의 방랑과 게으름의 본능이 적셔들어가 '유레카!'를 외치며 생산성없는 Task들을 날려버리길. 내 속이 다 시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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