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 거추장스러운 것을 다 치우면 남는 것은 아마 허무와 죽음일거다. 관성으로 유지되는 규칙적인 습관을 좀먹는 허무함은 만사 귀찮아하는 형태로 내 몸에 기생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갉아먹히면서 부정적인 사고와 남을 시샘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덤이다. 종종 발생하는 행운과 과분한 처우에도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계속 쌓여만 간다.
이렇게 꾹 쌓인 침전물을 빼는 것은 결국 죽음이다.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닌 끝 그 자체를 의미하는 죽음 말이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침묵하게 된다. 성공이 더 많은 욕심과 다음에도 잘 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을 안겨준다면 죽음은 모든 것을 정지시켜주는 비상벨 같은 역할을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나 자신에 대한 회의도 남에 대한 질시도 친구와의 비교질도 모두 멈추게 된다. 정답을 주진 않지만 나쁜 것을 주지도 않는다.
어려서부터 죽음을 늘 생각했다. (자살이 아니다.) 삶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로서 늘 내 옆에서 같이 동행한다고 여기며 살려고 노력했다. 사회의 성공과 영속적인 안정에 과몰입할 때마다 나를 잡아준 것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었다. 살면서 지켜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타인과 사회 사이에 교묘히 엉켜지며 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지켜가기 점점 힘들어가는 요즘, 오염되지 않고 숭고히 삶의 바로 옆에 머무르는 죽음이라는 존재에 아이러니하게 다행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누군가에 대한 안좋은 감정과 자신의 무력함에 회의가 드는 오늘, 나는 다시 죽음을 의식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