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人力)의 한계를 느끼며
인력(人力)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생기는 충동이 있다.
'절대자가 있다면 모든 것을 조율해줬으면 좋겠다.'
한계의 벽에 계속 부딪혀 좌절하게 되면 그 생각은 더 애타게 들끓는다.
'절대자가 있다면 새로 다시 시작해줬으면 좋겠다.'
계속된 요청에도 응답이 없으면 이제 그 생각은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아무라도 좋다. 다 뒤집고 새로 시작하자.'
생각과 현실의 괴리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그 간극만큼 이성과 논리, 대화와 소통은 멀어진다. 점점 소통과 교감의 의미는 퇴색되고 사람은 말을 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게 되고 잊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인간성을 잃어간다. 그러다 점점 사람이 아니게 된다.
겉잡을 수 없이 커진 간극.
소통과 화합, 공감이 옅어져가는 불통의 시대.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내가 사는 사회.
양쪽 모두 다른 한 쪽을 힘으로 찍어 누르려고 하고 있다.
이 바람에 휩쓸리면 내가 누군지, 내가 어디 있는지를 잊게 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지금은 나 자신을 조율하는 이 시간이 중요하다.
모호해도 좋다.
현실성 없다고 해도 좋다.
구체적인게 뭐냐고 물어도 좋다.
피아노 선이 조율이 완료되기 이전까지의 모든 시도는 무의미하고 불규칙적이고 남들의 기준에서는 소음일 뿐이니까. 허나 조율이 완료되고 난 후에 비로소 음악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은 조율의 시간이다.
무대에 서서 첫 건반을 누르기 전, 하기 싫지만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조율하자. 나 자신을. 내 주변을. 그리고 그 너머를 준비하자.
그 때까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