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죽도록 미운 사람인 적이 있었나

진짜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매일 다짐해

by 그래도봄


진짜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매일 다짐해. 정말 저런 선배가 되지는 않을 거야. 나는 죽어도 저런 상사가 되지는 말아야겠어.


남들보단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해 회사를 다닐 때 나는 저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게 없어 자신감이 많지 않아 그랬었는지 모르겠지만 선배는, 상사는 다만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러웠을 뿐, 심지어 또래의 동료에게도 흠잡거나 흉볼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남이 어떠한가, 살펴볼 여력이 없기도 했다. 내 일, 내 생각만으로도 벅찼다.


차츰차츰 나보다 어린 후배들이 들어와서 어영부영 나도 선배가 되고 상사가 되었다. 새로 들어온 젊은 친구들이 종종 나를 앞에 두고 다른 선배나 상사의 언행에 불만을 표하거나 언어폭력, 외모 차별, 종종 표리부동한 행동거지를 짚어 말할 때가 있었다.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때의 나는 관계 감수성이 부족해서 그들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겼다. 문제로 삼을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니 그냥 넘기라고 조언이랍시고 던졌다.


몇 년 동안 인체로 치자면 허리 부분, 구성원 중 나이로도, 직급으로도 중간에 자리 잡고 앉아서 스스로는 선배와도 잘 통하고 후배들도 마음 터놓는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회사생활을 해나갔다. (터무니없는 도저한 나르시시즘에 빠진 편견과 오만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살았던 뻔뻔한 시절은 다시 오지 않기를)

요샛말로 ‘금사빠’인 내가 누군가 사람을 확 좋아할 때는 그와 말이 통한다고 느낄 때다. 소통이나 교류 같은 진정한 그런 것 말고 진짜 말, 대화하는 순간이 재미있는 사람에게 순식간에 매혹된다는 말이다. 얼굴을 마주 보고 말로, 단어로, 문장으로 서로 주고받을 때, 그게 아주 착착 달라붙고 떼어질 때도 산뜻할 때, 뒤로 넘어가 혼절할 정도로 좋아했다.


호기심 천국에 감격시대라는 별명으로 불려온 사람답게 진지함이나 신중함 말고 그저 순간의 재미있는 말의 주고받음, 말의 재미 그 자체를 가장 즐거워했다. 말을 재밌게 하는 사람만을 특별히 편애했다.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몇 시간이라도 같이 마주 보고 싶어했고, 여전히 요즘도 그렇다. 티키타카가 통통 잘 맞는 사람, 짧고 빠른 말의 패스, 착착 맞는 운율, 두운, 각운, 라임이 맞으면 더 좋고, 웃음이 터지는 지점, 눈물을 글썽이는 찰나까지 맞아떨어지면 금상첨화였다. 그때는 내가 뭐라도 되는 양 누군가와의 케미를 평가할 때, 어떤 사람이 좋으냐고 물어올 때는 촌철살인의 말재주, 허허실실 대화의 합이 맞는 사람을 각별히 좋아한다고 대답하곤 했다. 말 재미가 없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고 암암리에 꺼렸고 약간은 무시했다.


“말이 너무 세. 너무 직설적이야. 과할 정도로 솔직해.”


내 말버릇을 두고 여러 사람이 말했다. 맞는 말이라 인정했다.


“오, 나는 ‘뒷담화’를 까지는 않아. 직설적으로 정확하게 말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


그렇게만 생각했다. 얼굴을 뒤에 두지 않고 마주 보고 서로 주고받는 합이 잘 맞는 궁합을 좋아하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주리를 틀었다.


“보링해. 너무 보링해. 너는 보링한 사람이야. 이 이야기는 너무 보링해. 못 견딜 지경이야.”


이런 말을 면전에서 내뱉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상처가 되는지 기분이 나쁜지, 얼마나 무안할지 헤아리지 못했다. 얼마나 많이 입버릇처럼 ‘보링하다’와, ‘클리셰하다’를 내뱉었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나쁜 말이었는지, 상처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괴로워하고 나를 미워했었는지를 알아챈 것은, 그 시절로부터 몇 년이 흐른 후였다. 오 마이 굿니스.


“엄마도 그런 적 있어? 후배 직원들한테 아무렇게나 막 험한 말 하고 취향 존중 안하고 그랬어?”


회사를 다니면서부터 종종 상처받은 얼굴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불면의 밤에 악몽을 꾸면서, 가슴을 움켜잡고 괴로워하면서 딸들이 물었다. 사연을 들어보면 ‘이 험한 세상에 뭐 그 정도의 말로 저다지도 괴로울 일인가’ 싶을 때도 물론 있었다. ‘표정이 안 좋아 보인다거나, 일을 왜 그렇게 멋대로 처리했나’ 라든가 ‘일 좀 똑바로 하라’는 상사의 말 정도는 회사생활하면서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도 생각했다. 짚어보는 고통의 온도가 서로 달랐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거나, ‘평생 볼 사람도 아니잖아, 에너지 너무 뺏기지 마’ 같은 소리를 위로의 말로 던졌다. 아이의 고통 증세가 조금 더 깊어지고서야 말하지 않는 어떤 더 큰 언어폭력이나 괴롭힘이 있으려나, 생각했다. 사람이 아무리 다 터놓고 이야기한다 해도 가장 깊은 곳에 감추고 싶은 게 있는 법. 자존심을 다친 큰 괴로움을 속속들이 말함으로써 겨우 남겨놓은 최후의 자존심마저 덧날 수 있기 때문일 테고 차마 입에도 올리기 싫을 만큼 옹이가 된 상처가 있을 수 있는 법이니.


엄마도 그랬어?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왜 엄마의 과거사를 물어보나? 회사 사람과 엄마를 동일선상에 놓을 필요는 없을 텐데)


“내가 왜? 나는 그렇게 막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야. 후배들도 얼마나 나를 좋아하며 따랐는데….”


딸이 받은 상처랄까 고통이랄까, 덧난 마음을 다독이다가, 함께 분노하다가, 결국 만난 것이 예전의 내 모습이었다.

‘응, 나도 그랬다’라는 대답은 부끄러운 진실이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너의 회사 사람들보다 더 나쁜 사람이었는지도 몰라’라는 아픈 반성이었다.


“있잖아. 나는 나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는 사람이 두 명이나 되는 사람이었어. 그리고 나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 사람이 둘이나 있었어.”


딸에게 고해성사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년 후였다. 직장 동료들과는 이미 헤어지고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던 때였다. 그 시절 같이 일했던 동료와 만나서 각자의 당면관심사를 나누다가 같이 알던 후배와 선배들 근황을 나누던 때였다. 다들 무얼 하고 사는 걸까, 두어 명 후배 이야기가 나왔다. 인턴이었던 한 후배가 현명하게 제 길을 걸어가 훌륭하게 잘살고 있다고 했다. 동료에게 처음 소식을 전해 들은 나로선 그 후배의 행보가 놀랍고도 대견했다. 역시! 그리도 의욕이 많고 열심히 일하더니 끝끝내 제 길을 찾았구나 싶을 만큼 당당하게 성공한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다르게 후배들 근황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동료가 신기했다.


“나와는 소식이 완벽하게 끊겼는데 어떻게 이 친구와 연락이 돼? 어떻게 근황을 그렇게 잘 알아? 그 앤 나에겐 단 한 번도 연락이 없었는데. 사실 완전히 내 직속 후배였는데 왜지? 나 그 애한테 꽤 잘해줬는데?”


완벽한 착각이었다. 동료의 대답은 뒤통수가 얼얼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잡아 성공하기까지 몇 년 동안 공부하고 애쓰던 후배는 종종 동료를 찾아왔었다고 했다. 나와는 회사를 나간 후 바로 소식이 끊겼다. 후배는 회사를 다니던 시절 가장 큰 고통을 준 존재로 내 이름을 꼽았다고 했다. ‘죽도록 미운 당신’이라는 주제로 명상할 때 나를, 그 대상으로 올려놓았었다고 말이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다고? 나를? 왜? 충격을 받은 한편 억울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일 가르치다가, 일 함께하다가 일의 선후나 절차를 말해줄 수 있는 거잖아. 혼낼 때도 있는 거잖아. 그걸 갖고 죽이고 싶을 정도라면 이 세상에 살려놓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어쩌면 내게 고마워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의 내심이 산산이 깨졌다. 그렇게까지 잘못했을까. 오래도록 껄끄럽고 민망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내 딸들의 뜨거운 눈물을 닦아주기 전까지는. 도대체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되는 말들에 베이는 어린 신입 사원의 입장에 내 딸이 서게 되기 전까지는. ‘정확하게, 나쁘지 않는 말로 천천히, 소리 지르지 않고, 편견으로 가득 차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일을 가르쳐줄 수 있잖아. 고집불통 뻣뻣하지 않아도 되잖아. 질투하지 않고 선배답게 처신할 수도 있잖아’ 일면식도 없는 딸들 회사의 상사를 향해 맘속으로 비명처럼 부탁의 말을 해보기 전까지는.


“정말로 저 사람처럼 살지 않을 거야. 내가 선배가 되면, 내가 상사가 되면 후배들한테 정말 잘 대해줄 거야. 진짜 좋은 선배가 될 거야. 이상한 회로를 돌리는 사람 만날 때마다 억울할 때마다 매일 다짐하고 매일 각오를 다지고 있어.”


딸들이 말할 때마다 ‘아, 저래서 그 시절 후배들이 날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미워했구나’ 싶은 깨달음이 왔다. 저다지도 큰 상처를 받는구나. 칼을 던지는 것처럼 말을 던졌구나.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졌지만 짐짓 딸들에게 일종의 사회생활 지침을 일러주듯 말했다.


“누구도 그따위 선배가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을걸. 나도 반성하고 있어. 나쁜 선배였고 나쁜 상사였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 이제 보니 그때 예쁘고 똑똑한 젊은 후배들을 옹졸하게 질투하기도 했나 봐. 기회가 닿는다면 한 번 보고 사과를 하고 싶은데 너라면 어떨 것 같니?”


딸들은 손사래를 쳤다. 괜히 만나 상처 들쑤시지 말고 그냥 혼자 반성하는 게 낫다고 했다. 그렇게 영혼이 바스러질 정도로 나를 싫어했다면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없을 거라고 했다. 인성 좋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은 접어야 했다. 어쩔 수 없다. 지난날 저지른 일을 돌이킬 수 없다. 후배들은 나를 지우고 더 괜찮았던 사람들과 교유하며 잘 지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신입 사원 시기를, 회사의 막내, 서열 가장 낮은 후배 직원의 길을 살고 있는 내 딸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꼰대 소리를 들을지라도 딸의 입장에서 짐짓 금과옥조 비스무리한 말을 던져줄 수밖에 없다. 모두 어딘가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지만.


“단호하게 말해라, 예의는 차리되 굽신대지 마라.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날 어떤 사람이라고 판단하는지 휘둘리지 말 것. 내 발걸음의 속도로 내가 정한 방향으로 가면 된다. 세상 사람의 모든 질문마다 대답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너의 삶에 관심이 없다. 진짜로 너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명심해라. 인정 욕구를 줄여라.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엄마라서 무슨 말을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릴 테지만, 인정 욕구에 시달리면 답이 없다. 훌륭한 선배, 훌륭한 상사가 되리라는 꿈을 차라리 버려라. 선배나 상사는 그냥 먼저 태어난, 그냥 먼저 들어온, 그냥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일 뿐이다. 사람이 아주 훌륭해지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제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에너지를 빨아먹히지 마라. 입을 열어 의견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자신의 발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 독한 것 같다, 차가운 것 같다, 냉정한 것 같다, 멋대로 산다는 소리를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보링의 복수가 시작되었나. 말하면서도, 쓰면서도 지루해진다. 여전히 통통 튀는 티키타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제 그만 편지로나 써야겠다.



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 _ 권혁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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