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이미지는 기분처럼 주관적인 개념이다
서양과 달리 국내에는 아직 신체 이미지 관련 학술서적, 교양서, 논문 자료가 많지 않다. 외모 자존감에 관한 오해가 생기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하는 오해로 다음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예쁘거나 잘생기면 외모 자존감이 높다, 혹은 못생긴 사람은 외모 자존감이 낮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외모 자존감이 높을까? 얼핏 생각하기에 그럴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객관적 외모와 외모 자존감이 어느 정도 비례 관계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빼어난 외모를 지닌 사람들은 후광 효과로 대변되는 외모 프리미엄을 누린다. 확률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 피드백을 받는 사람은 외모 자존감이 높을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객관적으로는 분명 외모가 준수한데 외모 자존감이 낮을 수도 있다. 외모에 결함이 없거나 미미한데도 강박적으로 집착하여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신체이형장애 body dysmorphic disorder 가 대표적인 예다.
반대로 외부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지 않아도 외모에 자긍심이 높은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비결은 외모가 아니라 내면에 있다. 견고한 자존감은 비록 외모가 다른 사람보다 열등하더라도 마치 방패처럼 스스로를 보호해준다. 객관적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도 외모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와 존중감이 높아 이들에게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외모 심리학적으로 외모 자존감은 다음의 네 가지 요인으로 만들어진다. 사회문화적 요인(미디어, 문화 등), 대인관계 경험(가족, 친구, 기타 외모에 대해 들었던 얘기들), 외모, 심리적 특성(성향, 자존감 등)이 조합하여 형성된다.
이론적으로 외모 자존감은 객관적인 외모가 개선되면 나아질 수 있다. 외모에 대한 만족감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외모에서 자신의 외모에 내리는 평가의 차이값으로 측정할 수 있다. 실제로 성형수술을 통해 콤플렉스가 해소되면 외모에 대한 불만족감이 줄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외모가 개선되어도 외모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외모 자존감은 외모와 자존감 모두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들은 외면이 아닌 다른 곳에 문제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반대로 ‘외모가 그대로인데 외모 자존감이 향상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다시 말해 ‘외모의 객관적 변화없이 신체 이미지가 개선될 수 있는가’인데, 정답은 ‘가능하다’이다. 외모 자존감은 외모 외의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모의 변화 없이 신체 이미지와 만족감이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해답은 신체 이미지가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데 있다. 겉모습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변하면 그 사람의 외모 자존감은 유의미하게 달라진다. 외모 자존감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 I feel pretty>의 주인공 르네는 통통한 몸매가 불만인 젊은 여성이다. 외모 자존감이 낮은 르네는 어느 날 운동을 하다가 머리를 다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예쁘고 날씬하다는 망상에 가까운 신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여전히 통통한 체구의 르네지만 그녀는 더 이상 이전의 르네가 아니다. 자신이 예쁘다는 믿음은 자신감을 솟구치게 만드는데, 이는 확연하게 밝아진 표정과 패기 넘치는 행동으로 표출된다. 객관적 외모에는 변화가 없지만 오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급상승한 외모 자존감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외모의 변화가 유의미한 차이를 일으킨 것이다.
신체 이미지는 기분처럼 주관적인 개념이다. 정의상 외모 자존감은 당사자의 인식과 느낌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내부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외면의 변화를 수반한다. 가령 머리를 다친 이후 르네의 모습은 이전과 현저하게 달라지는데, 만약 외모 자존감의 변화를 측정했다면 틀림없이 극적인 차이를 보였을 것이다.
외모 자존감을 측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설문지를 통한 점검이다. 우울증 평가를 위한 자기보고식 설문지처럼 신체 이미지 검사지를 통해 측정할 수 있다. 정확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즉석에서도 가능한데 자화상을 그려보면 된다. 자신의 모습을 그린 후 주변의 피드백과 비교하면 외모 자존감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사람들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자신의 모습이 실제 모습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화상은 객관적인 모습과 제법 차이가 있다.
이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미용 브랜드 도브에서 2013년에 진행한 ‘리얼 뷰티 스케치 real beauty sketch’라는 캠페인이다. 이 실험의 요체는 한 명의 화가가 동일한 사람에 대해 두 장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한 장은 실험 참여자가 자신을 묘사한 말을 듣고 그린 그림이고, 다른 한 장은 제삼자의 말을 듣고 그린 그림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대부분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타인이 바라본 그 사람의 외모가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주관적인 외모보다 객관적인 외모가 더 뛰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간극에는 외모 자존감의 영향이 상당 부분 작용한다. 외모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가령 거식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실제보다 뚱뚱하게 느끼고, 신체이형장애를 겪는 사람은 피부의 미미한 흠을 확대 지각한다.
설령 객관적인 외모가 준수해도 이들은 몸에 수치심을 느끼기 쉽다. 외모 자존감은 객관적인 외모보다 주관적인 외모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면, 외모가 아닌 외모 자존감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낮은 외모 자존감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도브의 실험에서 보듯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불필요하게 외모 자존감이 저하되어 있다. 틀림없이 외모에 대해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 관련이 깊다. <아이 필 프리티>의 르네처럼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되겠지만 어느 정도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