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레깅스

주식, 그거 무서운 거야

by 그래도봄




새벽 5시부터 30분 간격으로 휴대전화 진동 알람을 드르륵드르륵 울리게 하는 윗집 사람들이 있었다. (오래된 아파트의 층간소음이란 정말 상상을 초월해 별소리가 다 들린다.) 왜 이렇게 일어나지를 못하는 건지. 잠이 많은 것인지. 간밤에 새벽까지 일이라도 한것인지. 불타는 밤을 보내며 논 건지. 나는 당신네가 울려 놓은 첫 알람부터 일어나 앉아서 이렇게 천장을 노려보고 있는데 대체 당신들은 왜 일어나지를 못하느냐고 한껏 고함쳐 깨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떻게 생긴 사람들인데 이렇게 일어나지도 못할 알람을 매일 매일 울려대는 건지 궁금했다. (어떻게 생긴 사람들인지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데 꼭 그 생김이 궁금하니 참 희한한 일이다.) 그렇다고 직접 위층을 방문, 기웃거림의 정수를 선보이며 그 정체를 확실히 파악할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그저 지나는 사람들이 누르는 엘리베이터 층수를 유심히 보았을 뿐. 그러다 유력해 보이는 인물들을 포착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엘리베이터에서였다. 한번 용의선상에 올리고 나니 수시로 눈에 띄었다. 위층 부부가 거의 확실해 보였다. 그들은 옷차림에서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남편과 아내 모두 스판덱스 사랑이 남달랐다. 나도 운동할 때 간혹 레깅스 쫄바지를 입긴 하나 이 부부는 볼 때마다 레깅스 차림이었다. 색색의 레깅스를 꽤 많이도 가진 것 같았다.


아내보다 남편의 레깅스 포함 스판덱스 사랑이 더 대단한 것 같았다. 상의는 쫙 달라붙는 스판덱스 쫄티, 하의는 달라붙는 스판덱스 레깅스. 운동하러 나가는 것도 아닌데 종일 저렇게 달라붙는 옷들을 입고 다니면 안 불편한가 싶었다. 그리고 저렇게 붙는 옷만 입어서 혈액 순환이 잘 안 돼 아침에 그렇게 못 일어나는가. 혼자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스판덱스 사랑이 지극한 부부를 눈여겨본 이후, 한강변에 산책하러 나갈 때면 운동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그리고 의외로 남자들도 스판덱스 레깅스에 쫄티를 많이 입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는 남자 후배에게 물었다.


“남자들도 레깅스 많이 입는 거 같더라.”

“부위별로 압박도 해주고 근육도 잡아주고 가격도 괜찮고 편해요.”

“아하. 유행인가 보네.”

“그런 셈이죠.”


그런데 이 일은 이렇게 ‘아하’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투자자라면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당장에 관련 기업은 어디이며 주가는 어느 정도인지를 살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결과로, 아직도 개미 티를 한참 벗어나지 못한 나는 날이면 날마다 천장을 뚫고 상승하는 스판덱스 업체들의 주가 고공 상승을 손 놓고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늦게 투자를 시작했음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성과를 내는 후배가 한 명 있다. 처음에는 하늘이 돕나? 초심자의 행운일 거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두고 보면 볼수록 기이하게도 그녀가 선택한 종목들의 승률은 입을 쩍 벌릴 정도로 놀라웠다. 그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방송을 나처럼 열심히 듣지도 않고, 주식 책이라곤 도통 보지 않는 그녀는 왜 이렇게 종목 선정을 잘하고 잘 사고팔며 수익까지 잘 내는가. 찬찬히 살펴보면 그녀의 남다른 담대함을 읽을 수 있다. 우선 그녀는 웬만한 일에는 좌지우지되지 않는 강철 멘탈을 가졌다. 정말 큰 재능이다. 시퍼런 장세에 내가 어쩌냐고 발을 동동 구를 때도 그녀는 별 동요 없이 말한다.


“다 같이 내리는 거니까 괜찮아요. 그냥 놔둘래요.”

“이 종목 뭐야, 왜 이렇게 빠져?”

“올라갈 거예요. 뉴스 보니까 별문제 없어요. 그냥 기다릴래요.”


그러다가 훅 그 종목이 빠지면 카톡이 온다.


“전 더 샀어요. 훅 빠지길래.”

“아. 넌 참, 야수의 심장을 가졌구나. 체구는 안 큰데 담은 커. 부럽다.”


그리고 그녀의 또 다른 큰 장점은 내가 생활 속에서 포착하지 못하는 돈 벌어다주는 트렌드를 아주 잘 읽는다는 점이다. 한번은 그녀가 화장품 회사 주식을 계좌에 담아둔 걸 보았다.


“왜 샀어?”

“○○ 브랜드 나왔는데, 써보니까 좋아서요. 좀 뒤져보니까 다들 좋다고 하고 주변에서도 그걸로 바꿨다는 애들도 있고 그래서 그냥 샀어요.”


어떤 날은 콘텐츠 주식을 샀다고 했다.


“왜 샀어?”

“○○ 드라마 보니까 재밌어서요. 이후 라인업 보니까 재밌는 거 많던데요, 그래서 샀어요.”


의료기 업체 주식을 사고 나서는 말했다.


“부모님 당뇨 있으시잖아요. 병원 갔는데 ○○ 많이 쓰는 거 같아서 그래서 샀어요.”


그녀가 다시 말했다.


“만약에 제가 어느 화장품이 좋아서 사요. 고정적으로 계속 사, 그럼 그 회사에 계속 돈을 주고 있는 거잖아요. 그럼 저는 일단 검색을 해봐요.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다 좋다고 이야기하면 그 사람들도 그 회사에 계속 돈을 대주는 거잖아요. 그럼 회사 수입은 늘어나겠죠? 그리고 매번 내 돈을 그 회사에 주는데, 나는 얻는 게 하나도 없으면 억울하지 않나요? 전 그래서 제가 돈 많이 쓰는 회사는 일단 좀 알아봐요. 내 돈 끌어모으는 회사인데 내 친구 일가친척 외국 사람 돈까지 끌어모은다면 좋은 회사 아니겠어요?”


그녀의 말만 대충 듣자면 주식 투자는 세상 쉬워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막 해서 돈을 벌다니. 타고난 건가? 신이 도와주나? 하는 질투와 의구심이 동시에 생긴다. 하지만 그녀를 더 잘 들여다보면, 세상 일에 대한 관심이 유난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는 말하자면 일종의 ‘프로 민원러’다. 하루는 그녀가 동네 따릉이 대여소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대체 왜 아무도 관심이 없는 장소에,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 구석에 따릉이 대여소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최적의 장소는 따로 있는데 말이다. 나는 그녀의 그런 불평을 대충 장단 맞추며 한 귀로 듣다 한 귀로 흘렸다.

그런데 하루는 그녀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언니 제가 말한 그 이상한 따릉이 대여소 있잖아요, 대여소 위치 바뀌었어요. 내가 민원 넣어서 그런가?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무튼 제가 최적의 장소라 했던 그 장소 근처로 바뀌었더라니까요.”

‘불평불만은 할지언정 민원을 넣는다’라는 말만 하고 행동으로는 단 한 번도 잇지 않던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민원을 넣었어?”

“네. 대체 왜 그곳에 대여소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니까요. 바뀌면 좋잖아요.”


그렇다. 그녀는 실행력을 겸비한 프로 민원러였던 거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오지라퍼이기도 하다. 누군가 주문용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서 속으로 안타까워하는 나와 달리 그녀는 꼭 곁에 가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는데’라고 흘리는 말이라도 뱉고 나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세상에 대한 유난한 관심,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참여와 실행. 신이 주신 그녀의 투자 능력의 기저에는 이런 본능적인 기질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잘 아는 종목 중에서 골라라, 오래 갖고 있어라, 작은 풍파에 흔들리지 마라, 욕심내지 마라’와 같은 세계적인 투자 귀재들의 명언 같은 건 관심도 없는 그녀는 한강변의 수많은 레깅스들을 놀랍게 바라보면서도 ‘놀랍군’ 하며 그저 흘려보냈던 나와는 달리, 세상의 변화를 포착하고 그 변화에 동참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그 물결에 몸을 싣는다. 그것이 후배와 나의 투자 잔고 차이를 만드는 게 아닌가 반성해본다.


그리고 다음 변화는 나도 포착하고 행동함으로써 그 흐름에 올라타 보리라 다짐을 한다. 사람들의 행동에 돈 벌 기회도 있다! 포착하고 행동하자!



이러다 벼락부자가 될지도 몰라 _ 지해랑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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