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전세난민이 되다
“세상에, 거실까지 들어와 계신 거 있지. 생판 모르는 분들인데.”
지인이 서울 외곽으로 이사를 하면서 겪은 일이다.
한창 이사를 하다 잠깐 한숨 돌리려고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거실 쪽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리더란다.
“뭐지?”
집에 들어가 보니 거실은 어디선가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할머니들 한 무리에 점거당한 상태였다고 했다. 집주인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벽을 이렇게 발라놨네. 곱네. 이건 뭐여. 이 싱크대 좀 보소. 싱크대 이렇게 해놓으니 좋구먼. 역시 젊은 사람이라서 이런 것도 이렇게 바꿔놓았구먼.”
모델하우스 구경이라도 나온 양 이것저것 만져 보고 들여다보는 할머니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멍해 있는 동안, 멀뚱히 서 있던 지인을 발견한 할머니들이 이야기했다.
“색시구먼. 집주인 색시. 집을 참 이쁘게도 해놨네.... 나 여기 옆집 살아. 이 할머니는 윗집 ○○호, 여기는 저쪽 너머 동이고.”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일은 무슨, 그냥 구경 왔어. 젊은 사람이 이사 온다길래. 잘해 놓았구먼.”
난데없는 불청객의 침입에 서울 깍쟁이로 살아온 지인은 그저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불시 방문은 이후에도 ‘이것 좀 먹어 보라고’, ‘기계로 뽑아주는 커피 한잔 마시고 싶어서’, ‘그냥 말동무가 필요해서’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수시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은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지인은 웃으며 말했다.
서울에서 지리산으로 이사 간 선배가 떠오른다. 아이들을 자연과 함께 키우고 싶다며 큰 결심을 한 그녀도 처음 느닷없이 자신의 마당에 들어와 풀을 매고 있는 할머니들 때문에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풀이 이렇게 자랐는데도 함부로 놔뒀다고 툴툴대며 계속 풀을 매시는 거야. 매번 풀이 웃자라면 와서 풀을 매신다. 민망하고 미안하고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두시면 좋은데....”
그랬던 선배가 2년여가 지나고 우리가 지리산 밑 그녀의 집에 놀러 갔을 때는 확 달라져 있었다. 터미널까지 마중 나온 선배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 버스 정류장에서, 동네 어귀에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발견할 때마다 선배는 동네 반장이라도 된 양 어른들을 차에 타라고 하고는 어디 갔다 오시냐, 요즘 농사는 잘되냐고 살갑게 알은체를 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뭐냐고 의아해 하는 우리에게 여기 살다 보면 그렇게 된다고 웃었다.
‘여기 살다 보면 그렇게 된다.’
가끔 그 말을 곱씹는다. 사는 곳, 장소라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장소의 분위기는 사람의 많은 것을 바꾼다. 내가 사는 이곳도 처음에는 지인이 이사 간 그 아파트처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이나 그 안에서 마주치는 어른들은 그냥 눈으로만 상대를 훑는 요즘 사람들과 달리 ‘몇 호 사냐’, ‘직업이 뭐냐’, ‘결혼은 했냐’, ‘애는 있냐’처럼 다소 당황스러운 질문까지 속사포로 퍼부으며 엘리베이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같은 동에 사는 너라는 존재의 정체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겠다는 의지를 보이셨다.
처음엔 낯설었던 그 인사들이 그러려니 익숙해질 무렵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한 분 두 분 아파트를 떠나셨다. 항상 먼저 말을 건네며 가장 큰 관심을 보여주셨던 할머니가 떠나실 때,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께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 이사하세요?”
“응. 이제 돈도 못 벌고 관리비 내기도 힘들어서. 여긴 이제 젊은 사람들이 살아야지. 우린 저쪽 외곽으로 가려고.”
왠지 모를 서운함으로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데 현관에서 손님을 대동한 부동산 업자와 마주쳤다.
“저 할머니네도 돈 벌어서 이사하잖아. 여기 노인들 아파트 1억 5천도 안 될 때 들어와서 큰돈 벌어 나가시는 거야. 이제 옛날 노인들은 다 빠지고 거의 젊은 사람들이야. 다들 돈도 있고 직업 좋은 사람들. 물갈이되는 거지. 앞으로는 더 좋아질 거야. 이 아파트에도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아지는 건가? 눈치 보다 서로 눈인사 한 번 건네지 못하고, 옆집, 아랫집, 윗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냥 지금 내 삶에 충실하자며 ‘남은 남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며 사는 게 좋아지는 건가? 냄새 나는 통 대신 음식물 처리기는 기계식으로 바뀌고 아파트 외관도 새 단장을 하고, 주차장 개폐 시스템도, 현관 보안 시스템도 신식으로 바뀌었다.
나름대로 새 단장을 해가는 아파트를 보며 이게 좋아진다는 건가 생각해보지만, 침묵만 가득한 엘리베이터에서 슬쩍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내 또래의 아기 엄마를 보며 “아기가 몇 살이야? 이쁘기도 하지. 언제 이사 왔어? 남편은 뭐 하고?”라고 했을 예전 그 할머니들을 떠올리는 건 왜일까.
돈 있고 직업 좋은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다들 각자 섬처럼 외따로인 아파트엔 왠지 찬기가 도는 것 같다. 그 찬기를 할머니들의 가끔은 부담스러웠던 그 말들이 따뜻하게 덮고 있었음을 그때 는 왜 몰랐을까? ‘옛날, 옛사람, 오래된’이라는 말이 주는 온기가 새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