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비참함과 미래의 막막함
아버지는 거울이 깨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내가 책상 위에 거울을 위태롭게 놓아두면 화를 내면서 거
울이 깨지면 불길하다고 똑바로 놓으라고 했다. 흔히 거울이 깨지면 예사롭지 않은 일이 생길 전조일까 봐 불안해한다. 거울처럼 어떤 상을 비추는 물건은 비치는 대상의 영혼을 담는다고 여긴다. 그래서 거울이 부서지는 것은 곧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내게도 어느 날 거울이 깨지는 것처럼 인생과 내 몸의 감각에 온통 균열이 가고 부서지는 일이 생겼다. 예고도 없이, 몸이 하룻밤 사이에 달라져 있었다. 거짓말 같았다.
지병을 가지고 산다는 건, 불편하지만 아픈 몸을 끌어안고 지내면서 그 상태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몸 상태는 매일매일 달랐다. 조금씩 더 심해졌다가 어느 날은 살짝 나아지는 것 같다가 도로 더 나빠지는 진행은 병의 순리대로 가는 길 같았다. 서글펐지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이게 바닥인가 싶은 지점에서 더 깊은 바닥을 찍는 순간을 마주하고야 만다.
어린 시절 몸이 불편해 찾아간 병원에서 선천성 고관절 이형성증 진단을 받았다. 관절염으로 부대꼈지만 그럭저럭 통증을 다스리며 살다가 20대의 끝자락에 결혼했다. 문제는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부터였다. 임신하고 체중이 늘면서 관절에 하중이 가해지고 통증의 빈도와 강도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를 낳고 체중 조절을 하면 출산 전 내 몸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아이를 안고 업을 때마다 나를 짓누르는 무게에 고통받으며 하루하루를 겨우 견뎌야 했다.
아이가 100일쯤 되었을 무렵, 자다가 일어났는데 손이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몇 분간 지속되었다. 너무나 생경한 감각에 당황스러웠다. 이후로 몸이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셔츠의 단추를 채울 수 없고, 젓가락질이 힘들었다. 당연했던 활동들이 한순간에 어려워진 것이다. 갑자기 일상은 도전하고 정복해야 할 과제들로 꽉 차버렸다.
이전까지는 관절에 통증이 있다는 것 외에는 남들과 무엇이 다른지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지냈다. 그런데 그 기묘한 통증 이후로 불연속적인 시공간을 도약해서 넘어간 것처럼 훅 하고 내 몸이 다른 몸과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과 다리에 기운이 빠지면서 연체동물처럼 흐물거리는 것 같았고, 또 가끔씩 밤이면 다리가 불 위에 올려놓은 오징어처럼 말려들어 가는 듯한 이상감각에 시달려서 잘 수가 없었다. 고관절의 통증이 극심해서 결국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내가 겪었던 증상을 말하자 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 간단한 테스트를 하시더니 신경과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타과 검사 의뢰를 하셨다. 그렇게 진료를 받게 된 신경과에서 처음으로 샤르코-마리-투스(이하 CMT)라는 병명을 들었다.
관절염은 누구나 아는 병이었다. 내가 고관절에 이상이 있다고 하면 노년기에 많이들 겪는 증상이니까 ‘삭신이 쑤신다’는 흔한 표현 하나로 내 상태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아주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대충 어떤 증상을 겪을지 짐작했다. 잘알려진 병이기에 말하기 어렵지 않았고, 주변에서 충분히 이해했으며,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겪게 되었다고 동정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흔한 병을 앓으면 그런 자연스러운 공감대 속으로 녹아들 수 있다.
그런데 CMT라니, 샤르코-마리-투스병이라니!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의사 선생님에게 병명을 적어달라고 해야 했다. 짧은 진료시간 동안 들었던 설명으로는 부족해서 집에 돌아온 후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환자들의 팔다리 사진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상에는 검색할 만한 자료가 별로 없었다. 전문의를 찾아가고 환우회에 참석하고서야 조금씩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가지 이상한 징후가 있었는데, 그걸 예민하게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버렸다. 고등학생 때 교복에 단화를 신으면서부터 작은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다. 학생화로 유명했던 브랜드로 발등을 충분히 감싸는 평범한 디자인의 구두를 신었는데, 걷다 보면 신발이 발에 붙어 있지 못하고 그냥 벗겨지곤 했다.
버스 계단을 오르려고 발을 들었는데 구두가 훅 벗겨지면서 저 멀리 날아가 떨어지기도 했다. 좌석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신이 저절로 벗겨져서 운전석이 있는 버스 앞머리까지 또르르 굴러가서 민망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나는 그게 내 발의 문제가 아니라 구두를 험하게 신어서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발의 미세한 근육이 신발을 붙들고 있어서 신을 신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의 경우에는 발바닥 근육이 소실되어서 구두가 쉽게 벗겨졌던 것이었다.
관절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전반적인 운동능력마저 떨어지진 않을 텐데, 그땐 왜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까? 뒤늦게 스스로의 무심함과 무지를 탓했다.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불편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저 내 운동신경이 둔한 거라고 치부했다. 흔하고 만연한 증상 뒤에 가려진 미묘한 증상을 따로 분리해서 문제시하기는 어려웠다. 몸에 대한 인식은 절대적이라서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은 잘 모른다. 또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니 태어나면서부터 쭉 익숙해진 나의 몸이 남들과 다른 점이 있어도, 통증이 아주 심하거나 큰 불편을 느끼지 않으면 그 상태 그대로 끌어안고 지내게 된다. 내가 그랬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신경과 의사였던 색스가 진찰했던 한 파킨슨 환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몸의 중심이 왼쪽으로 20도 정도 기울어진 채로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진료를 받으러 오면서도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사람들이 자기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말한다며 의아해한다. 이에 색스는 환자의 걷는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서 보여주었다. 그제야 환자는 자신의 기울어진 모습에 충격을 받고 치료를 시작한다.
책 속 일화처럼 나 역시 주변 사람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실제 내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 나처럼 몸이 불편한 아이가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굼뜨고 어색하게 움직이던 그 아이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지만, 나는 저 정도는 아닐거라고 애써 부정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관절염이라는 고통이 심한 흔한 병과 CMT라는 통증은 강하지 않은 희귀병 중 무엇이 더 견디기 쉬울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 적이 있다. 쉽게 고를 수 없는 난제였다. 둘 다 각각의 어려움이 있다. 관절염은 흔한 질병이니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보통은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완치가 아니더라
도) 있으나 지속적인 통증이 삶을 갉아먹는다. CMT는 증상은 약하지만 분명 삶의 질이 떨어진다. (초기에는) 겉으로는 멀쩡해서 다른 이들의 오해를 사기 쉽고 끊임없이 자기 증명을 해야 할 압박감에 시달린다. 치료제가 없어서 그저 더 나빠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무력함을 애써 억누르며 지내야 한다.
현재의 비참함과 미래의 막막함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난 그 두 개를 한꺼번에 짊어지면서 억울하고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