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설명할 언어가 생긴다는 것

병명은 내가 가진 고통에 의미를 부여한다

by 그래도봄




진단명은 ‘낙인’을 찍는 것이기도 하지만 세상과 나의 연결고리이기도 했다. 고관절 이형성증이라는 진단명은 학교생활의 단짝 친구이자 고마운 프리패스였다. 진단서 덕분에 나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활동에서 빠질 수 있었다. 더 이상 이러이러한 증상이 있어 몸이 불편하다고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힘들다는 나의 호소들은 의료계의 권위로 지정되고 인정받은 뒤에야 ‘엄살’이나 ‘핑계’로 치부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의되지 않고 밝혀지지 않은 질병이 얼마나 많을까. 혹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진단명으로도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경우는 어떨까. 내가 받은 또 다른 진단명 CMT처럼.


CMT는 신경병 중에서 말초신경계 질병에 속하며,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의 손상에 의한 증상이 나타난다. 팔과 다리의 근육 힘이 약해지고 근육 위축 현상이 발생하며, 감각 소실과 이상감각이 발생한다. 이 병은 희귀질환 중에서는 높은 발병 빈도를 보이며 일반적으로 인구 2,500명 중 1명에서 발생한다고 보고된다.

임상 증상이 매우 다양해서, 증상이 경미하여 일상생활에서는 장애가 거의 없는 경우부터 휠체어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경우, 혹은 태생기에 발병하고 사망에 이르는 경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유전병인데 나는 가계에서는 유전되지 않은 돌연변이 환자였다.


병원에서 CMT라는 진단을 받고서야 고관절 통증 때문에 가려져 있었던 증상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때 유난히 운동을 못했던 것도, 터벅터벅 걸어서 이상했던 보행 습관도, 발등이 높아서 신발에 자주 쓸리고 아팠던 것도 이 병 때문이었다. 젓가락질을 잘 못하고 많은 양의 필기가 힘들었던 것도 설명이 되었다. 이외에도 많은 증상이 있는데, 미묘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아 보여서, 혹은 일상 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CMT 환자 중에서 비교적 증상이 경미한 편이지만, 급작스럽게 발병한 이후로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예를 들면 잘 걷다가도 길의 좌우가 약간만 기울어도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긴장을 하며 걸어서 누군가 살짝 건들기만 해도 흔들리기 일쑤였다. 그러면 다시 균형을 잡아야 하고 온 신경을 기울여 보행에만 집중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몸을 의식하고 걷지 않기 때문에 그 피곤함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다가 전화벨이라도 울리면 둔한 감각과 무딘 손으로 가방에서 휴대폰을 미끄러지지 않게 꺼내 작동하기까지 진땀을 뺀다. 횡단보도나 정류장에서는 기댈 곳 없이 몇 분을 서 있기가 힘들고, 갑자기 난간이 없는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상황에 닥치면 눈앞이 아찔해진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동제어가 될 일을 하나하나 의식하며 행동해야 해서 일상생활에 에너지가 많이 들고 피로감을 쉽게 느낀다.


그러나 이 모든 증상은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의 이해나 배려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질병의 낙인도 힘들지만 완벽한 몰이해는 더 비참하고 외로웠다. 사람들은 내가 신체뿐 아니라 성격적, 정신적으로도 어딘가 미숙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게을러서, 아니면 무책임해서 다른 사람에게 힘든 일을 미룬다고 여길까 봐 전전긍긍했다. 내게 무리가 되는 일을 피하지 못하고 자처해서 하기도 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었다. 내게는 집에서 나와 학교에 가고 교정을 가로질러 교실에 도착하는 여정 자체가 큰 임무와도 같았다. 학교에 도착한 순간, 이미 지쳐서 모든 일이 다 끝난 것 같은 상태로 숨 고르기를 하며 수업을 듣기 위해 힘을 쥐어짜야 했다. 수업 시간마다 프로젝터가 필요해서 조교실에 있는 프로젝터를 교실까지 옮겨놓아야 했는데,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담당했다. 어느 날 피하고 싶었던 그 차례가 돌아왔다. 프로젝터는 혼자 들기에는 꽤 무거워서 두 명이 짝을 지어서 옮겼는데, 공교롭게도 내 짝은 무릎관절이 좋지 않은 아이였다. 나만 엄살을 부릴 수 없었다. 순서대로 이 일을 할 다른 친구들을 볼 면목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런 상황에 처할 때마다 나를 설명할 말이 없어서 참으로 구차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병명을 알게 된 순간 마음을 짓누르던 많은 짐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책망하던 패턴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노력이 부족해서 운동을 못한 것이 아니었고, 인내심이 부족해서 짜증이 많이 났던 것이 아니었고, 부주의해서 자주 넘어지고 다친 게 아니라고. 더 이상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고 용서하게 되었다. 내가 속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건강한 친구, 동료들과 지나치게 동일시하고,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활동 수준을 무리하게 따라가려는 노력도 조금씩 줄였다.


병명을 알게 되자, 막연히 불안했던 증상들을 통합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치료법이 없고, 점진적으로 악화되기만 하는 병을 이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면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정의할 언어가 필요하다. 나 자신조차도 의심했던 몸의 증상과 통증을 타인도 인정한 언어로 확인받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이 정도의 ‘사소한’ 고통과 불편을 말해도 될까? 수없이 망설였지만,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 그로 인한 고통을 나누는 사람들, 이 병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대화를 나눌 장을 찾은 것이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이상한 행동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어렵고 꺼려진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대방의 정보를 갑작스럽게 접할 때의 당혹스러움이 있지 않은가. 묻지도 않았고,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나를 배려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때문에 가능한 한 나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저는 샤르코-마리-투스병을 앓고 있어요. 그건 말이죠...” 하고 알린다 해도 대부분의 경우 민망한 독백에 그칠 것이다. 그럼에도 더 이상 증상의 원인을 궁금해할 필요가 없고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후련했다.


병명은 내가 가진 고통에 의미를 부여한다. 밖으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숨은 증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은 분명 실체는 있으나 환자의 언어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사회에서 인정한 권위를 가진 전문가가 정의를 내릴 때에 그 실존을 인정받는다. 고통 그 자체도 괴롭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증상을 설명하는 일 역시 가혹한 시련이다. 누군가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절대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병명은 개인의 증상이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되는 첫걸음이다.



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_오희승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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