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특유의 쇠 냄새가 집 안에 진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는 꼬리를 흔들며 퇴근한 남편을 반겼지만, 여기저기 시커멓게 토해 놔서 이상하다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 중 누군가 실수로 바닥에 흘린 핫팩을 뜯어먹었더란다. 어린 시절 그래는 호기심이 많고, 뭐든 입으로 가져가서 먹었다. 특히 사료나 간식은 주로 '바스락' 소리를 내는 비닐 포장에서 나온다는 걸 알고 관심이 많았는데, 핫팩 비닐이 먹을 것인 줄 알고 먹었나 보다.
불안한 마음에 24시간 야간 응급진료를 하는 동물병원으로 급히 이동했다. 마침 나도 퇴근 중이라 남편과 합류하여 그래를 안고 함께 병원으로 갔다.
수의사 선생님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더니 핫팩은 맹독성이라 장기에 흡수되면 손상되어 치료해도 살기 힘들다고 했다. '얼마 전에도 몰티즈한 마리가 핫팩 먹고 병원에 왔었는데 치료하다가 죽었다'며 검사비와 치료비가 많이 나오는데 감수하고 치료를 하겠냐고 물어보셨다. 머리에 순간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나는 수의사 선생님께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확실히 살 수 있는 건가요? 병원비는 얼마나 나오나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최소 비용은 50~60만 원 정도 나올 것 같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은 진중하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정말 비싸구나……’ 예방접종을 제외하고는 동물병원에 돈을 지출해본 적이 없었다. 보험도 안되고 사람보다 더한 병원비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비용을 투자해서 산다면 모르겠지만, 살지 못한다면 의미 없는 치료 아닌가요?”
기른 지 몇 개월 안돼서 정도 많이 안 들 때였고, 아들도 물고 하니 밉기도 하고, 이런저런 계산을 하며 머릿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정말 살려야 하나 싶었다. 솔직한 심정이 그러했다.
순간 지인이 했던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집에 14년 된 노견 코카스 페니얼이 있는데 혈관에 문제가 생겨서 매일 같이 약을 먹어야 하는데 하루 약값이 거의 3만 원이라고 했다. 거의 석 달 동안 약을 먹고 병이 겨우 호전되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을 당시에는 개를 키우지 않던 때라 솔직히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노견인데 포기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적은 돈도 아닌데 그렇게 투자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내가 막상 이러한 상황에 놓이고 보니 정말 난감했다.
응급상황이라 잠깐의 고민 끝에 수의사 선생님께 최선을 다해 치료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치료를 받기 전에 잠깐 유리장에 그래를 넣어서 격리를 시켰다. 그래가 뭔가 자기에게 닥친 운명을 아는지 유리장에 들어가서 앉지도 않고 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빛에 홀린 듯 유리에 손을 대고 말했다.
“그래야, 괜찮아! 다 나을 거야!”
신기하게도 내가 유리장 손을 댄 곳에 그래는 머리를 가져다 댔다. 유리문에 마주하고 있는 그래의 모습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말이 안 통하지만 그래와 뭔가 교감이 되는 걸까? 생사의 기로에 있는 그래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린 내가 미안했다.
그래, 건강히 살아나다!
그래는 위장 세척과 관장 등의 응급치료를 받았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일부 장기에 중금속이 침투되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최소 하루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하룻밤을 걱정으로 지새웠다.
다행히 그래는 집중 치료를 받고 살아났다. 수의사 선생님은 그래가 건강한 편이라 견뎌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일부 침투되었을 수 있는 중금속은 나이가 들면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건강하다.
그래를 입양하기 전, 주변에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한 많은 조언을 구했지만, 대부분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면들을 많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키우다 보니 예측하기 힘든 일들이 생각보다 많이 생겼다.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 날 이후, 외출할 때는 바닥을 깨끗이 치우는 것뿐만 아니라, 웬만한 추위에는 핫팩을 안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