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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firewood Jun 29. 2021

우리는 왜 사랑해서 유죄일까

분명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했는데


퇴근길에 하늘이 참 예뻤다. 요즘은 날씨가 꼭 동남아 날씨 같다. 스콜처럼 갑자기 비가 오거나 천둥 번개가 치는가 하면 깨끗하게 개이고 햇볕이 내리쬐어 방금 전 날씨를 알려준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곤한다. 또 구름은 동남아 하늘의 구름처럼 낮게 내려와 있고 조각조각 찢어져 있다. 퇴근시간쯤 주황빛 노을까지 비춰주면 정말 하늘에 인색한 사람도 하늘을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


이렇게 예쁜 하늘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어디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세상을 두 개의 눈으로 보게 된다고. 나의 눈으로 한 번,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또 한 번 보게 된다는 말인데 정말 공감되고 예쁜 말이라 생각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분명 누군가를 애틋하게 사랑하고 있으리라.


나 또한 퇴근길 예쁜 하늘을 보며 "와 하늘 정말 예쁘다. 이 하늘 나 혼자만 보기엔 정말 아깝다."라고 나의 눈으로 한 번, "이 하늘 꼭 태국 날씨 같아!"라며 태국에 대한 애정을 보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또 한 번 봤다. 


생각나는 김에 전화나 할까, 빨갛고 예쁜 하트가 애칭 앞뒤로 붙은 이름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지금 급하게 회의 들어가는 중이라 이따가 전화할게."라는 답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방금 전 설렘과 기분 좋음은 사라지고 아쉬움이 스르르 밀려왔다. 

하지만 금세 '퇴근 시간에 회의라니 너무하네 정말, 밥은 먹고 하는 건가 몰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렘>아쉬움>걱정, 안쓰러움. 

감정이 꼭 요즘 비 왔다가 싹 개인 날씨같이 순식간에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이 하늘을 보고 그냥 기분 좋게 사진 몇 장 찍고 집에 갔겠지.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보지 못해 혹은 이 하늘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거나, 야근하는 사람을 걱정할 일도 없겠지. 사실 예쁜 하늘을 못 보는 것도, 야근을 하는 것도 내가 아닌데. 다 그 사람이 겪는 일인데 내가 이렇게나 신경 쓰이고 기분이 바뀌다니.


아마 그만큼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서겠지. 이미 나의 기분이나 생각, 마음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고 이 사람은 의도치 않게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예전에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람이 누구한테 제일 상처받는 줄 알아? 사랑하는 사람한테 제일 상처 받아.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뭐라고 하는거? 하나도 신경 안 쓰여. 내가 사랑한, 마음을 쏟은 사람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지."


출처는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했다. 하지만 앞선 나의 경험과 엄마의 말을 생각해 보면 어째선가 우리는 꼭 사랑해서 유죄인 것 같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오롯이 나의 문제로만 힘들고 상처받을 일도 확실히 줄 것 같은데. 


가끔 전화해 남자친구의 하소연을 늘어놓는 H도, 매일 헤어지고 싶다 말하면서 행복한 모습을 종종 올리는 K도, 모두 사랑하지 않으면 될 일을 끌어안고 괴로워하고 있지 않은가?


징-

진동이 울리고 핸드폰 화면은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꼭 끌어안고 있는 내 모습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하트가 앞뒤로 달린 이름이 뜬다. 


"집에 잘 가고 있어?" 반가운 목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얼굴엔 미소가, 목소리는 하이톤으로, 마음은 '행복하다-'라는 얄팍한 태세 전환을 한다.


사랑을 하다 보면 사랑해서 유죄인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엔 사랑이고 뭐고 못 해먹겠다 싶다. 

그런데 분명, 못 견디게 행복한 날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는 얼굴에도 뽀뽀를 마구 퍼부어 주고 싶은 날이 있다. 어쩌면 우린 사랑하지 않으면 겪지 않아도 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상처를 사서 받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평생 이런 행복과 기쁨 또한 겪지 못할 거다.


우리는 왜 사랑해서 유죄일까. 란 질문의 답은 

사랑은 우리가 사서 하는 고생이라는 거다. 여기서 포인트는 '우리가 사서 한다'는 것.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꺼이, 기꺼이 하고 싶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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