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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firewood Jun 29. 2021

하정우가 '걷는 사람'이라면 전 '타는 사람'입니다.

퇴근 후 따릉이 페달을 밟는 도시인 이야기


배우 하정우가 '걷는 사람'이라면 저는 '타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자전거를요.

제가 자전거 타기에 푹 빠진 건 서울시에서 '따릉이'를 운영하면서부터였습니다. 아마 서울시민의 건강과 자전거 타는 인구수의 변화, 매연의 감소량 등은 따릉이의 존재 전후로 나뉠 거라 확신합니다. 참고로 따릉이를 이용하는 저 포함 모든 지인들은 따릉이를 탈 때마다 '따릉이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 만들었다.'라고 꼭 한 번은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따릉인들을 대표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당시 조금 과장을 더해 서울역 5분 거리에 살던 저는 따릉이를 타기에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었습니다. 따릉이 정류장이 비교적 주변에 많이 있었고 자전거를 타고 금방 한강공원에 가기에도 참 좋았습니다. 따릉이와의 첫 만남도 퇴근길 숨 막히는 버스와 지하철을 피해 자전거 퇴근길을 선택하면서였습니다. 서울에 따릉이는 앞서 말한 대로 가히 '역작'이라 할 정도로 정말 좋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에서 자전거 타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면 이미 그 자리에 택시들이 달리고 있거나 빈 자전거 도로에 갑자기 차가 끼어들어 여기가 자전거 도로인지, 택시 도로인지 모르겠다 싶은 적도 많았고, 자전거가 자전거 도로에서 달리는데 민폐 취급을 하며 빵빵 경적을 울리는 차에 괜히 주눅이 든 적도 많았습니다.


인도로 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인도에 있는 자전거 도로 표시를 못 보고 뒤에 자전거가 오는데도 자전거 도로로 걷는 사람, 뒤에서 벨을 울려도 비켜주지 않는 사람. 가끔은 사랑이 너무 많아 연인과의 손을 놓지 못해 결국 자전거를 길 끝으로 모는 사람 등등... 인도로 가도, 차도로 가도 자전거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서울에서 자전거 타기란 즐거운 만큼 꽤 험난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타는 사람'이 된 이유는 자전거 타기가 도시인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부담 없는 취미이자,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습관이었기 때문입니다. 


도시인으로 살다 보면 sns에 올라오는 다른 도시인들의 다양한 취미를 보게 됩니다. 퇴근 후 자기계발을 위해 업무 관련 기술을 배우는 사람,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 PT를 받는 사람 등등... 출퇴근만으로 번아웃되고 마는 저를 sns 게시물만으로 채찍질 시켜주는 사람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저도 그들처럼 해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외국어도 공부해 보고 관련 기술 인강도 들어보고 PT도 등록해봤지만 저의 약하디 약한 의지 때문인지 결국 꾸준히 이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앞서 말한 도시인들의 sns 자극으로 시작한 취미다 보니 이어가기가 더 어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이 아니었으니까요. 그중 따릉이 타기, 자전거 타기는 제가 했던 습관 중 가장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취미였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 느끼는 그날에만 느낄 수 있는 날씨와 분위기, 서울이 복잡하다고만 느꼈던 생각을 깨주는 평화롭고 느린 퇴근시간의 풍경, 다리를 분주히 움직여 원하는 곳에 도달할 때 느끼는 성취감과 성실함의 감각. 나와 같이 퇴근 후 따릉이를 타며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동질감과 위안. 


이 모든 게 좋아 시작한 자전거 타기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멋져 보여서 시작한 취미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비싼 장비나 대단한 마음의 준비 없이 할 수 있는 자전거 타기는 가장 솔직하고 나다운 취미였습니다.


어제 오후, 자전거를 타다가 우연히 '브런치에 자전거에 대한 얘기를 꼭 써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쓴 글인데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모두들 자신만의 가장 솔직하고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단순하고 행복한 취미를 가지길 바라겠습니다. 도시는 화려해도 도시인들은 어딘가 모르게 따뜻하고 소박하니까요. 도시인들에게 맞는 취미는 어쩌면 정말 별거 없는, 그냥 열심히 페달을 굴리는 단순한 걸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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