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sfirewood Jul 02. 2021

반려견이 우리 곁을 떠나 주길 바랬다.

그런데 정말 우리 곁을 떠났다. 모두가 잠든 사이 조용하게.

까미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쯤 우리 집에 왔다. 까미를 처음 만난 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세 친구'라는 시트콤을 보고 있었고 아빠가 평소와 다르게 낮시간에 집에 오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아빠의 손엔 뒷목이 잡힌 새끼 미니핀 한 마리가 있었다.


아빠는 워낙 시골 사람이었고 강아지를 예쁘게 안는 법 따위는 몰랐기 때문에 새끼 강아지의 목 뒤 주름을 잡고 데려왔었다. 어린 나는 그런 아빠를 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얼른 강아지를 받아 안았다. 그렇게 까미는 처음 내 품에 안겼다. 


까미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오빠와 나는 어렸기 때문에 강아지를 어떻게 사랑해줘야 하는지 몰랐다. 우리가 사랑해 주는 방법이라곤 하루 종일 안아주고 만져주는 것뿐이었다. 그게 최고의 애정표현이었다. 그때 엄마가 우려 반, 농담 반으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러다가 강아지 손타면 안 된다."


당시 강아지에 푹 빠져있던 우리에게 그런 엄마의 경고가 들릴 리 없었고 까미는 결국 지독하게 손 탄 강아지로 크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집에선 하루 종일 까미를 안고 있게 됐다. 


시간이 지나 오빠와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집에 있을 일이 많이 없어졌다. 집에서 까미와 보낼 시간이 줄어들었고, 안아줄 시간도, 여유도 줄어갔다. 


그때부터 까미의 욕구불만이 시작됐다. 우리가 안아주지 않자 스트레스가 쌓였고 예민하고 성격이 급한 강아지가 됐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난 불의의 사고다.




까미는 사나운 본래의 성격 + 스트레스 쌓임으로 집 앞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맹렬히 짖었다. 그날은 윗집이 이사하는 날이었고 북적북적하는 소리에 까미는 그날도 목이 쉬도록 짖었다. 까미의 짖는 소리가 소음이 될 정도로 심해지자 오빠가 까미를 안고 달랬는데 그러던 중, 까미가 격렬히 몸부림치면서 오빠 어깨에서 떨어졌다. 


미니핀이 유독 뼈가 얇고 약하다 보니 까미의 양 앞다리는 모두 부러지게 됐다. 바로 수술을 했지만 양쪽 다리에 약간의 장애를 갖게 됐다. 쓰면서 마음이 울컥울컥 미안함과 괴로움이 올라온다. 모두 우리의 잘못이었다.


그 후로 까미의 사나움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실수로 다리를 건들거나 까미의 심기를 건들면 가족, 외부인 할 것 없이 모두 물렸다. 오빠는 까미에게 물려 눈 위에 흉터를 갖게 됐고 엄마는 귀가 후 매일 같이 달려드는 까미를 피하느라 문 앞에서 늘 긴장을 해야 했다. 집에 외부인을 들이는 건 꿈도 꿀 수 없었고 10년 가까이 우리 집엔 외부인이 다녀간 적이 없다. 


오빠와 결혼할 여자 친구가 집에 인사도 오지 못했고, 고3 때 나의 과외선생님은 늘 10분 거리 할머니 댁에서 만났어야 했다. 까미로 인해 일상생활은 물론, 안전까지 보장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자, 우리는 까미를 다른 집에 보낼 생각까지도 하게 됐다. 


하지만 까미가 사납고 나이가 많고, 장애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 보내면 나쁜 일을 겪을 까 결국 보내지 못했다. 그렇게 까미는 우리 집에서 점점 애물단지가 됐다. 까미는 더 이상 사랑스러운 반려견이 아니었다. 


'까미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우리가 있는 동안 잘 보살펴 주고 잘 키우자.'라고 생각하다가도 까미에게 심하게 물리거나 까미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울 때면 까미가 우리를 빨리 떠나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 까미에게도 전해졌으리라 생각한다. 반려견은 반려인의 마음을 그대로 느낀다고 하니까. 그래서 늘 까미를 생각할 때마다 미안하고 죄스럽다.



그런데 까미가 올해 초에 우리 곁을 떠났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우리가 잠든 사이에.


먹는 거라면 자다가도 달려오던 까미가 음식을 거부하더니 그날 밤 사이에 우리를 떠났다. 


엄마는 "까미가 사는 동안 우리를 힘들게 하더니 우리가 자기 마지막 보면 힘들 거 알고 잠든 사이에 갔나 보다." 그 말에 오빠는 엉엉 울었고 나는 멍했다. 믿기지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힘들어도 10년 넘게 함께 산 나의 반려견이었다. 초중고대 취업까지 모두 함께했고 집에 까미가 없길 바랬지만 없는 건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까미가 떠난 지 5개월이 다 돼가는 지금도 실감이 안 난다. 


실감이 나는 순간은 길에서 강아지를 마주쳤을 때, 마음속 깊이 무겁고 슬픈 감정이 올라와 예전같이 웃을 수 없었다.


집에 있을 때, 느릿느릿 집을 돌아다니는 까미가 없다. 오랜 시간 까미가 있던 자리는 텅 비어있다. 


까미의 사진을 볼 때, 까미의 사진을 보면 '이 세상에 까미가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 우리 곁에 없다는 게 실감 났다. 


오빠는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까미에게 주지 못한 사랑을 다른 강아지에게 주고 싶지 않다고. 까미보다 다른 강아지에게 혹여 더 잘해줄까 미안하다고. 나는 오빠만큼 까미를 사랑하지 않았는데도 그 말에 절실히 공감했다. 나도 앞으로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못할 거다.

작가의 이전글 하정우가 '걷는 사람'이라면 전 '타는 사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