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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경 Nov 12. 2019

스위스의 언어 교육

나의 언어 변천사.



어릴 땐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방목형이었던 나의 부모님은 한 번도 공부를 해라 말한 적이 없으며 본인들 또한 공부와는 멀었던 터라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함께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쳤고 나조차도 신경 쓰지 않는 나의 성적 탓에 나는 상업 고등학교로 진학하였고 몇 년 뒤 어른이 되었지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내가 조금만 똑똑하고 주위 환경을 돌아봤었더라면 지금의 나의 삶은 달라져있을까?


20살,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공장에서 일하던 나와 32살 스위스에서 살고 있는 나는 변해있었을까?

그렇다고 지금 나의 삶을 후회하거나 딱히 다른 결과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처해 온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니



영어는 항상 관심이 있던 분야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깽깽이 시절에도 영어 선생님이 마냥 멋있어 보였다. 티브이에서 보는 외국에 대한 환상도 한몫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에 꿈이 영어 선생님이었지만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는 내가 영어 선생님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어디에서 주워들은 워킹홀리데이라는 단어에 설레어 나도 어른이 되면 꼭 해외로 나가 영어공부를 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누군가의 말처럼 계속 말하고 다니면 실현된다고, 외국인 친구들과 놀며 배운 영어로 나는 26살에 아일랜드로 떠났다.

영어공부는 구몬이 전부였고, 술 마시며 배운 영어로 회화는 어느 정도 됐지만 그 정도로 시험을 칠 수는 없었다.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해외 생활 3년이 다돼가든 쯤 이 해외생활의 결과물을 얻고 싶었고 이래저래 들어본  tesol이 나의 목표였다. 테솔을 들으려면 영어점수가 꼭 필요했는데 아이엘츠 7.5 캠프리지 최소 advanced 정도는 되어야 했다.



아이엘츠 시험을 치며 몇 번의 좌절감을 맛보았지만

그 영어 덕에 한국에서 일도 구할 수 있었고, 지금의 신랑을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reading과 writing 보다는 speaking에 강한 편이지만 내가 배운 영어는 이제 일상생활의 대화 정도나 영화를 보는 데 사용하는 정도라 더 이상 공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 가지로 꾸준히 가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쩌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독일어 공부를 지금 공부하고 있을까?


당연한 수순이었다.

5년간의 연애기간이 있었고 신랑에 비해 나의 나이는 무럭무럭 자라나 30이 훌쩍이나 넘어버린 32살.

오랜 장거리 연애 후 우리가 선택한 결혼.


한국에서 살 꺼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국보다는 스위스가 훨씬 더 살기 좋을 거 같다는 막연한 동경과 나의 직업에 비해 신랑의 직업이 훨씬 더 좋았기 때문에 당연히 스위스에서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독일어쯤이야, 영어도 했는데 독일어도 금방 늘겠지.라고 생각했고,,

스위스에서 독일어를 공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8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몸소 깨우치고 있다.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려면 그 나라에 가서 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해서 지금 스위스에서 살고 있는 중인데 왜 나의 독일어는 늘지 않는 것인가?

그 명쾌한 해답은 별거 없다. 스위스 사람들이 영어를 너무 잘한다...


스위스의 언어가 무려 4가지이다 보니 지역마다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이렇게 4가지가 되고

처음으로 배우는 언어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 두 번째는 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는 언어, 그리고 영어까지.

많은 언어가 공존하는 탓에 언어 부분이 많이 발달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영어 잘한다.


또한, 우리 집만 해도 신랑은 모국어인 스위스 독일어를 하고 , 학교에서 배우는 정통 독일어, 폴리쉬 엄마로부터 배운 폴란드어, 학교에서 배운 제2 외국어 프랑스어, 거기다 영어까지. 5개 국어를 사용할 줄 알고 한국어도 나를 통해 조금씩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다국적 커플의 미국에서 사는 자녀들은 주로 한 가지 언어로 통일하여 한국어에 약한 반면 스위스나 유럽에서 자라는 다국적 부모를 둔 자녀는 자연스럽게 두 언어를 습득한다.

그래서 외갓집에 가서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촌들과 조부모님과 소통하는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다.


참 좋으면서도 지금 독일어를 배워야 하는 나에게는 그리 좋지 못한 상황이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아시아인에게 독일어보다 영어를 사용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으니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겠지 하고 느긋한 마음을 가지다가도 몇 년이 지나도 말 한마디 때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그런 마음 때문에

가끔씩 혼란스럽긴 하지만 지금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수밖에 없는 거 같다.


기승 전공 부랄까?


나의 아이가 자라 자연스럽게 언어를 깨우칠 때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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