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화면 밖에 있는 사람들 (1/2)

디지털 세계의 적자생존, 투명해지는 사람들

by 그래미

적자생존 : 환경에 잘 적응한 종만 살아남는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종은 도태된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


지금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QR코드를 읽을 줄 아는 자가 살아남는다.


#1

카페 한구석, 한 남자가 노트북 화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그 화면에는 일봉 차트가 알록달록, 오르고 내리는 그래프를 그린다.

그의 얼굴은 심각해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뀌고, 다시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돌아간다.

그 몰입이 나까지 불안하게 만들었다.


얼른 노트북을 꺼냈다. 뉴스를 켜고,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본다.

뉴스를 며칠 안 봤을 뿐인데, 세상은 또 몇 발자국 앞서가 있었다.


토큰화된 국채, AI 기반 투자 모델, 디지털 ID, CBDC 발행 예정

모르는 단어가 줄줄이 튀어나온다.


이제는 중앙은행이 현금 발행을 넘어 정부가 직접 디지털 머니를 발행한다.

종이 없는 현금. 투명하고 빠른 송금, 실시간 추적이 가능하도록.

그리고 이제는 정부나 투자회사나 거래하던 채권을, 쪼개서 개인도 채권을 살 수 있도록 한다는데

갑자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조바심이 났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투명성을 강조한다.

‘이건 또 언제 공부하지? 이걸 모르면 뒤처지는 건가? 인플레 세상에서 나만 투자를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세상이 너무 빠르다는 사실이 나를 숨막히게 한다.


그때 카페 안 키오스크 앞에서 어르신 한 분이 소리를 높였다.

“이거 화면이 안 떠! 아까는 이 버튼이었는데 왜 안 돼?”

지나가는 사람들도,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모두 각자의 스마트폰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바쁘게 움직이던 직원이 빠르게 다가와 키오스크를 몇 번 누르고 말했다.

“됐습니다.”

아무 설명없이 그게 전부였다.


어르신은 혼잣말을 했다.

“아…참나..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일인데 뭐가 이렇게 어려워?"


순간, 아빠가 떠올랐다.

며칠 전 아빠가 한 말이 생각났다.

“이메일 왜 로그인이 안되? 그리고

아이패드 소리는 갑자기 왜 안들리지?

휴대폰 화면이 갑자기 바꼈어 이거 어떻게 해?"


나는 무심코 말했다.

“그거 그냥 누르면 되잖아… 그때 말했잖아”

말을 뱉고 나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쓸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내가 또 헷갈렸네…”

내가 외면했던 그 순간이 가슴에 콕 박혔다.


나는 요즘 세상을 따라가기 바빴고, 아빠의 시간은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의 시간이 나의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며칠 전,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초등학교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안녕? 그새 많이 컸네?"


바닥에 늘어놓은 책 사이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 아이 옆으로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

"와 이거 너가 읽는거야? 이건 뭐하는거야?"

코딩 학원가요. 앞으로는 로봇이 병원도 가고, 자동차도 혼자 다닌대요.

코딩으로 하는 게임도 있어요!"


아이는 자랑하듯 말했다.

"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알 줄 알아? 똑똑하네!"


나는 놀라움 반으로 아이의 책과 블록들을 들여다보았다.

다른 사고 방식을 배우며 자란 아이들의 세계에서 나의 존재가 투명해지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이상하게 쓸쓸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과 함께 시작한 미래였고,

우리 부모님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 어딘가,

두려움과 조급함 속에 갇힌 중간자였다.


나는 친구 아이에게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때 친구가 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요즘은 IT를 배워야해 코딩배우는데 내가 봐도 뭔지 모르겠더라 외계어야.

아이들이랑 얘기하려면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야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내 친구가 걱정반 자랑스러운 마음 반 이어서 말했다.

"나도 한번 아이랑 얘기해보려고 코딩이 어떻게 하는건지 보려고 하는데.."

하는 순간 아이는 엄마에게 다가와 스무디를 만들어달라고 한다.


내 친구는 아이의 책을 살펴 볼 틈 없이, 아이의 요청에 대화는 멈추었고,

그녀의 생각도 배움도 멈췄다.

그렇게 스무디를 만들고 설겆이를 하고 빨래를 걷느라 바빴다.


나도 친구도, 언젠가는 아빠처럼, 키오스크 앞에서 멈출 날이 오지 않을까.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나는 이제야 아빠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투명해짐과 동시에, 느린 속도의 사람들 역시 투명해지고 있는 사회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 역시 투명성의 대열에 나도 모르게 줄을 서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