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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수다인 Sep 20. 2024

니가 먼저 쳤다!

기 쎈 언니는 참지 않긔!!!



5월 아니 4월 말부터 시작된 더위가

8월을 넘어 9월 중순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더위는 7, 8월 하순까지의

6주 정도 길어야 두 달 정도였다.

비록 9월에도 한낮에는 햇빛이 강렬할 뿐

해만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쾌적하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다가 더위가 점점 길어지더니 6월부터

더위가 시작되어 언제부턴가는 6월이 7월보다

더 덥고 6월을 넘어 5월에도 햇볕이 강한

더위가 시작되었다. 점점 뭔가 이상해지더니

이번 2024년도에는 이례적으로

4월 중후반부터 더위가 찾아왔다.

더위가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걸로 모자라

사상 초유로 에어컨을 튼 추석 차례상이라니...

세상의 종말이 오려나?


나는 여름을 싫어한다. 워낙 더위도 심하게

타고 거기다가 땀도 많이 흘려서 더위에

맥을 못 춘다. 누가 한 여름인 음력 6월의

닭띠 생 아니랄까 봐, 더위에 취약한 닭들이

양계장에서 혹서기에 집단폐사하는 것처럼

폐사하기 직전 상태로 여름을 보낸다.

남들은 여름에 살이 빠진다는데 나는 오히려

여름에 더 못 움직여서 이 시기에 살이 더

붙는 편일 정도이다.


여름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못하게 만든다.

나는 이불을 좋아한다. 이불이 내 몸에 찰싹

달라붙고 이불로 몸이 감싸져 있는 그 느낌을,

이와 비슷한 느낌을 즐기기 위해서인지

가볍게 티셔츠 하나만 걸치는 것보다도

여러 옷들을 껴 입는 것들도 좋아한다.

그런데 애초에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없어서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건만

올해 여름은 여름 싫어라는 기존의 감정을

넘어서 혐오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2024년 9월 20일 지금 이

순간도 수증기를 한껏 머금은 날씨로 폐에

물이 차 들어가는 이 기분 나쁜 습한 더위에

불쾌를 넘어 역한 기분까지 느낄 정도니.


장기간 지속된 습기 가득한 불쾌하기 짝이

없는 더위를 그것도 4개월이 넘게 살충제를

아무리 뿌려도 살아남는 독한 대형 바선생처럼

끈질기게 이어지는 올여름 더위로 인하여

가장 싫은 계절이 여름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부쩍 늘었을 것이다.


이렇게 길고 지독한 2024년의 더위는 예사롭지

않다. 뭐랄까? 마치 선빵을 날린 인간에게 지구가

본격적으로 revenge tour를 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Liv Morgan(리브 모건) & Revenge Tour


딱 그런 상황이다. 저 맨 위의 짤처럼,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속 술집 사장

연희(전도연 분)가 가게에서 일하는 호스티스를

찾는 술 취한 취객하고 이야기하다가

남자 손님이 연희의 뺨을 때리자

'연희는 참지 않긔'를 시전 하여

바로 옆에 있던 맥주병을 집어 들어


"니가 먼저 쳤다!"


라고 하면서 맥주병으로 남자의 뚝배기를 가격하는.

그리고 연희는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있다는 듯.

직원인 조폭들한테


"뭐 해? 치워!"


라고 다소 신경질적으로 말하며 지 할 일 하러 가는.


그래, 이 싸움, 그러니까 지구와 인간의 싸움에서

선빵을 날린 건 인간이었다. 경제 성장, 발전,

인간의 무한한 소유 및 소비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점점 더 많은 것들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인간(the man)은 먼저 지구한테

싸대기를 때리며 선빵을 날렸다.

그런데 이 지구라는 여자는

- 프랑스어에서 terre는 땅이라는 뜻과

함께 지구라는 뜻까지 지닌 여성형 명사이다 -

이제 더 이상 참지 않는다는 듯 싸닥션을

치기보다는 맥주병으로 머리를 내려쳐

아예 인간에게 더 큰 데미지를 준 것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게 이런 상황일 것이다.


어쩌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난 지구 환경이 파괴되라고 선빵을

날리는 행동을 한 게 없는데!

내가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는데!!!"


착각하지 말아라. 나도, 당신도, 우리의

가족도, 친구도, 내 이웃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존재할만한 나의 도플갱어도

현대사회를 사는 거의 모두의 인류는 지구한테

선빵을 날리고 있었으니.


매년 9월이 되면 어김없이 출시되는

아이폰의 새 버전으로 기변을 하거나

H&M과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싸고

편안하지만 얼마 입지 못해서 버려지는 옷들을

사 모으는 행동, 일회용 제품의 남발,

무심코 틀어놓은 전기와 수도 등 그 모든 게

우리 개개인이 지구에게 선빵을 날린

행위이다. 싸대기를 때렸을 뿐이지만

그 싸대기로 오히려 맥주병으로 뚝배기가 깨지는

더 큰 결과로 되돌아온 것처럼

이런 역대급 무더위로 되돌아오는 게 아니겠는가?



2024년 여름을 통하여 알게 된 확실한

교훈은 지구는 선빵을 맞았어도 참는

호구 새끼가 아니라 절대 참지 않고

당한 것 이상으로 돌려주는 존나

기 쎈 일찐 언니라는 거다.

일찐 언니가 더 눈 돌아가기 전에

우리가 지구에게 선빵을 날리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나도, 여러분들도

아니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 모두 지구한테

선빵을 날리는 행위를 그만둘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 이 일찐 언니가 더

눈이 돌아가겠지? 앞으로 2024년 같은 날들이

더 자주 아니 이런 게 뉴 노멀(new normal)이

되는 게 아닌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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