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아름다운 사람

엄마에게

우리 엄마의 이미지를 기억할 때면 모공이 없는 매끈한 피부결과 각이진 매력적인 얼굴형, 그 위에 오뚝한 코와 짙은 쌍꺼풀이 있는 커다란 눈을 그리게 된다. 짧아 귀엽다 느껴지는 목 아래로 적당히 벌어진 어깨와 풍만한 가슴이 상체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했던 것과 넓은 골반의 존재감이 두툼한 살집을 가진 허리의 단점을 상쇄시켰다는 것 또한 생생하다.


10대의 내가 기억한 엄마의 40대 몸이다. 과거 흐린 날 연속으로 기억되는 인생 속 밝고, 긍정적이며 순한 성정의 소유자 엄마를 기억할 때면 희뿌연 대중목욕탕 안에서도 유난히 돋보였던 그 몸이 지금도 내 앞에 서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그렇게 세월이 7년이 지나고 있음에도 병실 문을 나설 때 엄마의 40대 모습이 오버랩되는 날이면 나의 마음은 어김없이 무너져 내린다.


20년이 훌쩍 지난 오래된 과거의 순간이 현재 60대의 아픈 엄마를 마주할 때마다 기억되는 것은 엄마가 더 이상 아름답지 못해서 일까,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은 운명이기에 느끼는 무력감 때문일까. 혹 그 순간에 멈추어선 나는 미처 자라지 못했던 것일까......


열다섯에 엄마를 떠나 광활한 땅 중국에서 새롭게 삶을 시작했을 때는 앞으로의 오랜 세월이 그토록 짧게 지나가 버릴 줄 몰랐다. 그저 성공만 하면 아버지의 못남으로 거듭되는 엄마의 고생을 충분히 보상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공부하고, 그 사회의 일원이 되고, 기회를 찾고 잡기 위한 노력을 반복하며 십수 년이 쏜살같이 흘려 떠내려가 버렸다. 그 세월, 한국을 오가며 엄마를 마주한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늘 바빠서 동동 거렸던 기억뿐 우리가 언제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왜 더 이상 목욕탕에 같이 가지 않았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만약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볼 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 있었다면 더 빨리 엄마의 아름다움이 말라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마치 사계절이 딱 한번 지나간듯한 시간을 거쳐 나는 결국 뜻을 이루어 냈다지만 엄마의 발병 소식에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실패자가 되었다며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서른 나는 다시 엄마의 곁으로 돌아왔다.


젊음과 건강은 누구도 고이 간직하며 세월의 스크레치를 막아낼 수 없음은 잘 알고 있다. 누구나 늙고, 언젠가 병들 수 있는 것이 인생인데 그것을 망각하고 사는 무지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인생의 가장 좋은 때를 엄마에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나는 목욕 바구니 안을 함께 채웠던 순간, 사우나실과 냉탕을 오가며 시원하다고 해맑게 웃었던 순간이 사실 우리의 가장 빛났던 때였음을 모르고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7년 전, 엄마 곁으로 돌아와 함께 보냈던 시간 동안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엄마는 폐에서 유방으로 조용히 퍼지고 있는 암이 별거냐며 지금이 인생의 가장 좋은 때라고 따뜻한 사위, 내 딸이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닌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손녀가 있어 행복하다는 자랑을 매일 새로운 버전으로 쏟아내신다. 나는 여전히 오래전 건강하고 빛이 났던 엄마를 잊지 못하는 아픔을 견뎌내고 있지만 지금 내 앞에 꺼질 듯 말듯한 엄마의 몸이 나의 마음을 붙들어 현실에 단단히 발을 내딛고 서있게 해 준다. 과거에 눌러앉지 않고, 오늘을 엄마와 살아가는 방법을 이제라도 배워나가고 있음이 스스로에게 가장 큰 위안이자 행복이다.


요즘은 언제고 ‘안녕 엄마. 잘 가’라고 얘기해야 할 때 엄마의 마지막 얼굴이, 목이, 어깨가, 가슴이, 허리가 골반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불행을 경험하지 않도록 매일 지금 엄마의 모습을 내 안에 그려본다. 과거에도 우리 엄마는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고, 오늘도, 또 언젠가도 변함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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