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단편소설
“용아, 너라도 조국 승리의 깃발을 봐야 한다. 이게 내래 죽어서도 소원인 거 너도 잘 알지? 자력갱생으로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니 이제 허튼짓 그만하고 자랑스러운 인민 체육인으로 돌아 오라우!”
부쩍 기침도 잦아지고 끓는 가래에 숨조차 쉬기 어려워하시는 어머니의 질책이 오늘만큼은 허공을 맴돈다. 떠나기로 한 날이 다가올수록 구름판 앞에 꼿꼿하게 서서 두팔 벌려 나를 막아섰던 어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르라고 격려하는 삼촌의 환한 미소가 체육관 안을 가득 메운다. 어머니는 더는 찢길 것 없는 삶 한가운데에서도 조선에 태어나 사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분이셨다.
“어머니 배 밖으로 태어나 조선에서 사는 거 영광으로 알아야지.”
늘 힘주어서 하시는 말속에 내가 있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외면하고 싶었다. 내일 아침에는 중화가 돌아와 있을 것 같다며 12년째 외삼촌 군복을 다리는 어머니의 갈라진 손등을 보면 어김없이 나의 날개는 부러지고 철책에 걸려 총받이를 하는 피 가득 한 눈만 선명해진다.
“더는 이렇게 못 살겠습니다. 저도 삼촌 따라서 남조선에 가야겠습니다. 죽어도 가서 죽겠습니다.”
잠든 어머니의 작고 야윈 어깨에 손을 얹고 습관처럼 다섯을 세어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
매 맞고 짓밟혀도 날아오르는 순간만큼은 행복했기에 도마 (跳馬)를 떠나지 못했다. 다섯 살에 삼촌 손을 잡고 처음 들어섰던 체육관, 그곳을 떠나 살 이유도 방법도 몰랐던 지나온 삶이 눈 앞에 펼쳐진다. 더는 뛸 수 없다는 손아귀에 꼭 들어차는 무릎을 부여잡고 보니 다섯을 세고 나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내가 있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인이 되었다지만 그 위로를 쉽게 내버리지 못한 비루한 시간이 나의 발목을 움켜쥔다. 땅을 내디딜 때 느끼는 순간의 고통이 온몸을 비틀어 대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뛰어보자고 다짐해 본다.
“ 용이 니 운은 타고 난 아이라. 중화가 그렇게 가버리고 당에서 니를 얼마나 볶아댔는지 기억나지? 중화가 뭔 죄를 그리 크게 지었는지 내는 잘 모르지만, 니가 착실히 운동만 하고 실력도 좋으니 그게 충성스럽게 보였는지라. 그래서 탈 없이 여기까지 온 거다. 애들 가르치는 선생 자리 준다 할 때 받고, 아프신 어머니 생각해서 색시도 들이고 그저 평탄하게 살아라. 남조선이 천당이라고 누가 그러든, 고저 브로커들이 주머니 챙기려고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조선이 일시 난관이 있다 해도 떠나 살면 안 된다. 용아, 용아, 니 내 말 듣고 있지?”
체육관 단장님의 간곡한 만류에도 삼촌이 떠나기 마지막 날 밤 내 손을 꼭 붙잡고 한 말이 12년간 끈질기게 나를 쫓고 내몰아 더는 피할 수 없었다.
“용이 니 내 말 잘 들어라. 니 아버지 ‘장군님을 위해 일한다’며 열의가 대단한 분이셨다. 인민군대 부총참모장 안피득이가 숙청당할 때 집에서 돈이 나왔는데 그 돈을 니 아버지가 줬다 했잖니. 하늘에 날던 사람이 죽을 날짜 받아놓고 보니 억울한 거지, 물귀신마냥 니 아버지를 잡아 끌어내린 거다. 그 길로 형님은 평양 보위 사령부 지하 감방에 갇혀 예심 받다 개죽음 당한 거라. 내 똑똑히 봤다. 형님 덕 봤던 사람들 다 등 돌리고, 이 나라를 위해 한 게 얼만데 당증이며 훈장이며 다 몰수해가 무자비하게 죽이려고 들었던 것 내 다 기억한다 말이다. 누이가 핏덩이 너랑 어린 내 데리고 함북에서 여까지 내려온 길 생각만 하면…… 여기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삼촌 절대 안 죽고 보란 듯이 남조선 땅 밟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니도 온나. 누이 모셔 올 방도도 내 찾아볼 테니 걱정 말고.”
눈물만 줄줄 흘리며 이러다 할 대답도 하지 못한 심약한 소년이 저만치 보인다. 내가 태어난 곳은 함경북도 청진시이고, 아버지는 외화벌이로 사업을 크게 하시며 당에 충성하셨던 분이었다는 것 외에 어머니는 항상 말을 아끼셨던 터라 이 진실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울며 삼촌에게 매달렸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삼촌, 나는 삼촌이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다. 내랑 어머니 두고 가지 마라.”
“용아, 두고 가는 게 아니다. 먼저 가 있을 테니 니도 늦지 않게 남조선으로 와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내가 어째 남조선을 갈 수 있다고……”
"사내가 이래 마음이 약해서 쓰겠냐. 남조선에 가면 우리 세 식구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니도 군에 징집되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알았지?"
삼촌은 거듭 자신을 뒤따라올 것을 당부했지만, 열일곱의 나는 선뜻 그 뜻을 따르지 못했다. 몇 년을 삼촌이 나와 어머니를 남겨두고 떠났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휩싸여 삼촌이 복무했던 15사단 보위 사령부 사람들의 거친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쉽게 눈물을 흘렸다. 심약한 나와는 다르게 어머니는 시종일관 삼촌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오히려 그들을 호되게 나무랐다.
“보위 사령부 보위 군관이 걸어서 남조선으로 도강해 조국을 배신한 일이 세월에 묻혔다고 생각하나? 리중화가 남조선 가서 조선에 있는 인민들이 다 인간 생지옥에 살고 있다고 떠들고 다닌다더라. 지 살라고 남조선 쥐새끼처럼 눈치 보면서 구멍만 찾아다니며 사는 게 자랑스러운 조선 인민군 출신이 할 짓이냐 말이다!”
5년 전 삼촌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을 마지막으로 더는 불려 다니지 않게 되면서 삼촌의 안위가 걱정되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삼촌의 바람대로 군에 징집되기 전 떠날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짙은 그리움이 두려움에 묻혀 떠날 엄두도 못 냈던 세월이 7년, 삼촌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답답한 5년이 너무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쇠약해져만 가는 어머니를 더는 두고만 볼 수 없어 삼촌을 찾아가야만 했다. 중국을 상대로 하는 외화벌이 무역소에서 일하는 죽마고우 영철의 도움으로 두만강을 건너 중국을 통해 남조선에 갈 계획을 세워 보기도 했다. 우연히 중국에서는 쉽게 남조선 소식을 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삼촌의 소식을 영철에게 캐물으니 삼촌 소식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함경북도에서 전하기가 어려웠다고 둘러댄다.
“내도 지어낸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1사단 GP로 걸어 나갔다고 하더라. 삼촌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겁도 없이 말이다. 함북에서 두만강 건너다니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곧이 남조선 땅을 밟겠다고 나간 게 그게 사람 정신이가…… 그나저나 니 왜 자꾸 묻는데? 니 마음 단디 붙들라, 삼촌은 거기서 복무를 오래 했고, 운도 따랐던 거다. 그리 가면 총 맞아 죽던 지뢰 밟아 죽던 죽으러 가는 것과 한가지다. 내말 듣고 두만강 건너라, 내 연락은 다 해두었으니 남조선 가는 것 아주 고되지 않을 거다."
어머니 병환이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고, 의사도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데 중국을 거쳐 남조선까지 가는 그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어머니가 견뎌내 주실지 자신이 없었다. 조급함에 삼촌처럼 휴전선을 넘어갈 뜻을 내비치자 영철은 짙은 담배 연기 속에서 긴 한숨만 연거푸 내쉰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다음 달 12월 20일 무릎 수술 날짜가 잡혀 있으니 일주일 휴식기 때 출발하기로 한 결정을 전하며 남겨진 어머니를 부탁했다.
"염치없지만, 어머니 잘 부탁한다. 내 부탁할 사람이 니 밖에 없는 거 잘 알지? 못난 정 생각해서 고향 올 때마다 집에 들러 어머니 잘 계신지 봐주고……”
말도 끝맺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줄줄 흐르는 눈물과 매캐한 담배 연기가 뒤섞여 남편도 남동생도 끝내 자식마저도 떠나버린 자리를 쓸쓸히 지키는 어머니의 모습을 가려버린다.
곧 다가올 새해를 알리는 방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영철이 전해준 소식대로 밤 11시가 넘어가자 인민군 순찰 움직임도 다소 느려졌다. 기회는 단 한 번뿐, 6시간째 그려보고 있지만, 실제 철책을 마주하고 보니 두려움이 앞선다. 세찬 겨울바람 소리가 "용아, 니 어디 있니?" 흡사 어머니의 쉰 소리와 닮았다. "용아, 얼른 온나" 바람을 타고 삼촌의 굵고 단호한 목소리도 들린다. 철책과의 거리를 가늠해 본다. 저만치 보이는 돌부리를 구름판 삼아 내디뎌 날아오를 상상을 해본다. 매서운 바람이 잦아들 무렵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어느새 철책 위에 앉아 뒤를 돌아본다. 경보음이 울렸지만, 예상대로 누구도 달려 나와 보지 않는다. 이대로 앞으로 나가면 남조선이다. "남조선은 '우리나라'라고 하더라. 니도 우리고 내도 우리고, 우리는 한민족이라 카니 가면 딴생각 말고 삼촌이랑 어머니 모실 방법부터 모색해라."
영철이 힘주어 말한 '우리'라는 단어가 나를 잡아끈다.
"거 누구?"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자리를 떠났다. 순간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는데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겨울바람의 인도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내달려 두번째 철책을 기어 올라갔다.
“ 남조선에서는 거기가 별들의 무덤이라 카더라. 뭐가 그리 허술한지 자주 뚫려서 남조선군 책임자들이 옷을 많이 벗었다 해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미제 기계들로 감시망이 삼엄하다 하는데 신정부 들어서고 분위기가 좋아 남조선 군인들 보초 서는 것도 살벌하지 않다고 한다. 그쪽으로 삼촌도 넘어가고, 그간 넘어간 동지들이 꽤 있는 것 같은데…… 내도 중국 갔다 남조선 방송에서 본 거니 운만 따라 주면 니도 성공하지 않겠나……”
달리고 넘어지고 구르고 기다 잠시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이대로 매서운 겨울바람과 흙먼지에 뒤엉켜 사라져버렸으면 싶어 납작 엎드려 보지만 죽어도 남조선 땅을 밟겠다고 어머니에게 전한 말이 내 귓전에 울린다.
“죽어도, 남조선 땅을 밟아야지, 죽어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다시 동이 트고 짙은 안개에 휩싸여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놀라 수풀 속에 숨어있기를 반복하기를 수차례, 일단 사람이 보이는 곳까지 내달려 보기로 했지만, 여기가 남조선 땅인지 아직 벗어나지 못했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이쯤에 초소가 보여야 하는데 경보음만 요란할 뿐이다. 고압전기 철조망에 걸려 죽을 수도, 지뢰를 밟아 불구가 될 위험에 마음을 졸였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담담해진 찰라 짙은 안개가 걷히고 철책을 사이에 두고 남조선 군인과 마주했다.
“김용 씨, 1992년 10월 12일생이시고,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시 라고 적어주셨고…… 황해북도 사리원에 거주, 가족 사항은 어머니 한 분 계시네요. 황해북도 체육단 소속이라고 적어주셨는데 어떤 종목 운동을 하신 거죠?”
“도마……”
“네? 김용 씨 죄송한데 크게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이게 마스크 때문에 잘 안 들리기도 하고요. 행정적인 Q&A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
“그게 그러니까 간단한 확인 절차를 밟는 거니까 너무 긴장 안 하셔도 된다고요. 적어주신 내용으로……”
“도마(跳馬) 운동했습니다. 황북 대표 선수단 소속이었습니다.”
“지역 대표 운동선수로 활동하신 분이 어떻게 22사단을 통해 한국으로 넘어 올 생각을 하셨는지……아, 질문은 아닙니다.”
남조선에서 삶은 질문의 연속이었다. 대부분 중국과 제3국을 거쳐 오기 마련인데 휴전선을 넘어왔던 것이 동정과 의심, 미움의 표적이 되어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도 있었지만 왜 왔냐는 날카로운 질문의 창으로 이곳저곳 인정사정없이 후벼파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조사 기간 내내 괜찮다는 말도 아주 천천히 전해주던 담당관이 뛰어오르는 흉내를 내며 내가 점프해서 귀순한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며 함박웃음을 보여주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와 삼촌이 같은 땅에 서서 별을 찾기 힘든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하룻밤처럼 지나가 버렸다.
나의 대답이 궁색해질 무렵 하나원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숫자의 탈북민들 사이에서 잠시 잠깐 고향에 돌아온 기분에 취하기도 했지만, 어찌 남조선 땅을 밟게 되었는지 이야기가 시작될 무렵이면 철책을 넘어 갈피를 못 잡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외로운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대부분 수차례 두만강을 건넜고, 북송의 아픔을 견뎌냈던 공통점으로 하나가 되어 가족처럼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었다. 그들 틈에서 나는 배 한번 곯지 않고 산 귀한 몸으로 탈북의 동기가 무척이나 의심스러운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던 것 같다. 또 다른 고립감에 숨이 막혔지만, 곧 홀로서기를 도모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크게 다가와 넓고 눈이 부신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삼촌을 찾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던 어른들에 비해 어린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 등에 어깨에 매달리며 살갑게 대해주었다. 남쪽 하늘은 늘 어두웠지만, 심하게 반짝이는 땅의 눈부심에 아이들은 마냥 설레이는 듯 보였고 목숨을 담보로 넘어온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용이 삼촌,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삼촌 머리는 아주 빨갛다고 하는데 어디가 빨개요?”
6살 옥이의 순진한 물음에 11살 남철이는 동생 머리를 호되게 쥐어박는다.
"아, 아프다! 왜 때려?"
“그게 빨간 게 아니다. 니가 사상을 아나? 이 머리통이 아닌 거라구……”
옥이를 나무라던 남철이는 이내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목소리가 작아진다. 쭈뼛거리며 내 눈치만 살피는 남철이와 영문도 모르고 내 등에 올라타는 옥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려왔다.
“남철아, 옥아. 삼촌은 머리 안 빨갛다. 이래 까만데”
꿇어앉아 아이들에게 정수리를 들이대며 웃어 보이자 아이들은 더 큰 웃음으로 화답해 준다. 앞으로의 삶도 이렇게 웃으며 지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지만 두 달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자 하나원 퇴소 후 어디서 어떻게 내 삶을 일구어 나가야 할지 고민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다. 삼촌을 찾는 일도 어머니를 하루빨리 모실 일도 아득하기만 했다. 다들 동물원 원숭이마냥 갇혀있는 것이 싫다고 푸념하는 것이 일상 대화의 주제였지만, 운동만 하던 내가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 땅을 밟을 때의 용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6년 전 중국 땅에 가서 느꼈던 것이 남조선 사람은 ‘사장님’, 우리 북조선 사람은 거지 취급받았더랬어. 우리는 같은 민족인데 남과 북을 지들이 갈라 다른 나라 사람 취급을 하더라니까. 일은 고되고 돈은 박하지 또 이 미친놈이 봉급날만 되면 공안에 꼬장한다고 협박을 해대지, 그래서 열 받아서 또 한 번 국경을 넘었다는 거 아냐. 그렇게 거친 나라가 가만있자……”
나이만큼이나 거쳐온 나라도, 경험도 많은 김 씨 아저씨는 같은 고향 출신이라고 많이 품어주시고 가르쳐 주셨다.
“여기가 이제부터 우리나라고,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라. 자본주의가 좋은게 뭔데, 열심히 한 만큼 돈 벌 수 있고 쥐죽은 듯이 안 살아도 되고 강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뭐야 자유…… 그 뭐라……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자랑스러운 시민이 되는 거 아니겠나. 니는 젊고, 똑똑하니 다 죽어가는 사람 마냥 그래 축 쳐져만 있지 말고 뭐 가르쳐 준다 할 때 부지런히 배워라. 나가서 다 써먹을 데가 있지 않겠나.”
옥이와 남철이 남매, 그리고 새로 입소하는 아이들하고만 어울리고 줄곧 방안 생활을 더 편하게 여겼던 나에게 따끔한 충고를 해주시는 아저씨에게 고마움을 느꼈지만,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하여 시원하게 알겠다고 대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삼촌도 이곳 하나원을 거쳐 김 씨 아저씨가 말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자랑스런 시민으로 잘 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내심 기쁘기도 했다. 모르는 게 없는 김 씨 아저씨께 삼촌의 이야기를 꺼내 볼까도 했지만 나와 어울리는 아저씨께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의 노골적인 마음에 부대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나원에서의 시간은 종점을 향해 가속이 붙어 내달리는데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김용 씨, 하나원에서의 생활 어떠셨나요? 아이들이 김용 씨 간다고 울고불고 난리던데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
“저는 앞으로 한국에서의 일상생활 전반에 필요한 사항들을 김용 씨에게 가르쳐드릴 담당 경찰관 최신호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어렵게 탈북하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 일만 지금 10년째인데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지금까지 어렵지 않게 북한을 떠나오신 분들은 없었는데 따로 연락을 받은 적은 처음이라…… 제가 좀 말이 많죠? 워낙 말씀이 없으신 분들만 뵙다 보니 점점 혼잣말도 대화처럼 해서 오해를 많이 받습니다. 제 전화번호는 저장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1번을 꾹 누르시면 바로 연결이 되니 어려워 마시고 자주 연락주세요."
“......”
“아! 이불하고 간단한 생활용품은 관리사무소에서 지급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같이 가보실래요?"
"......"
아니 여기서 잠깐 기다리세요. 갖다 드릴게요.”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경찰관 최신호 씨는 키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사람이었다. 따뜻한 손만큼이나 마음도 그러하리라 생각되었지만 고맙다는 말이 딱 턱 밑까지만 차올랐다. 고개만 주억거리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쏟아내지 않고 이것저것 챙겨주며 한참 집 구석구석을 살펴주는 그를 어미 쫓는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다니기만 했다. 그의 휴대폰의 울림이 잦아들 무렵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임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그에게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인제 그만 일 보십시요.”
가까스로 입을 뗀 첫마디가 내 귀에 들리지 않아 움찔거리며 다시금 얘기하려고 고개를 들기 무섭게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대답해 주었다.
“김용 씨, 우리 자주 만나요.”
그와 함께 있을 때 따뜻한 햇빛이 내리비치는 아담한 집안이 무척이나 정감있게 느껴졌는데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따뜻함도 그를 따라 나간듯싶다. 온몸을 휘감는 냉기에 외투를 목 끝까지 올리고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집안 이곳저곳을 조심스레 살펴본다. 시선이 부엌에 다다르자 고향을 떠나온 지 이제 넉 달, 마음속으로 내내 물리쳤던 생각이 가슴을 치자 어머니의 야위고 주름진 손이 가만히 나의 등을 쓸어내리는 것 같았다. 이제야 그토록 바랐던 남조선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생각되어 눈물이 났던 것일까. 아니면 어머니가 그립고 걱정이 되어 서럽게 울었던 것일까. 목놓아 어머니를 불러보았지만, 사실 그 어떤 그리움보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무력감을 떨쳐내고자 몸부림을 쳤던 것은 아닐까.
"용이, 신수가 훤하네. 여가 제일 인기가 많은 지역인데 어떻나, 살기 좋지? 내 지하철 타고 왔는데 여 아파트 이름 대니까 단번에 알더라."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몰라보게 수척해지신 김 씨 아저씨를 다시 만난 것은 한 달이 지난 따뜻한 봄날이었다.
"씨발놈이 뭘 물어봐도 깜깜무소식이고, 두 번 이상 전화 치면 성을 어찌나 내는지……"
최신호 씨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에게 내어주고 있다는 것을 김 씨 아저씨 담당 경찰관의 매정한 태도를 듣고 알게 되었다. 경찰관 한 명이 담당하는 탈북자 수가 서른대여섯 명이라는 것을 전해 듣고 최신호 씨의 휴대폰은 왜 쉬지 않는지 이해가 되었다.
"용이야, 내 긴히 부탁 좀 하려고 왔다. 니하고 비슷한 나이 딸 있다는 것 기억하나? 우리 딸이 북송되었다가 다시 나왔는데 중국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아서 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빨리 한국에 데려오고 싶은데……"
브로커에게 급히 보낼 돈이 모자라 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얘기를 꺼내시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원금이 나오는 대로 갚겠다는 아저씨의 간곡한 부탁에 지금까지 받은 지원금은 육백만 원이고, 이달 말쯤 더 받게 되면 보내주기로 고민 없이 약속했다.
"여 내 계좌번호다. 니 계좌이체 하는 것 배웠지? 여기로 보내주면 된다. 모르면 은행 직원한테 물어보면 잘 알려줄 거다. 내 조만간 취직하고 봉급 받으면 차곡차곡 갚을 테니 걱정 말고. 너도 부지런히 일자리 찾고 잘 살아라."
건네드린 돈 봉투를 넣은 안주머니가 떨어질세라 한 손으로 꾹 감싼 모습이 쓸쓸해 보여 아파트 입구에 오래도록 서서 김 씨 아저씨의 뒷모습을 지켰다. 아저씨는 두어 번 뒤돌아서서 팔을 휘젓다 이내 쫓기듯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버리셨다. 다음에 만나면 삼촌 찾는 데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꽉 채운 천만 원이 아저씨에게 전달되고 난 뒤 어찌 된 일인지 더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얘 누가 소개시켜 들어온 거야?"
"소장님, 죄송합니다. 또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씨발 말귀를 알아들어야지, 한국말 몰라? 쪼그만해서 잽 싼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굼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김용 씨, 거 서서 뭐해? 이리 와!"
박 반장은 거칠게 내 팔을 잡아끌었다. 끌려가다시피 앞으로 발을 내딛다 무릎 통증으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잠바가 반쯤 벗겨지고,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어앉아 일어서지 못했다.
"봐봐, 얘 어디 하자 있는애 아냐? 바빠 죽겠는데. 됐고, 박 반장이 알아서 처리해!"
박 반장은 소장의 뒤를 따라 나가 그를 달래는 듯 보였으나 큰소리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았다. 소장이 자리를 떠나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박 반장은 심하게 붉어진 얼굴로 나와 만 원짜리 몇 장을 내던지며 고함을 쳤다.
"야, 내일부터 나오지 마! 어려서 좀 나은가 했더니 누가 탈북자 새끼 아니랄까 병신같은 것은 똑같네! 똑같아. 뭘 봐? 왜? 열 받아? 열 받으면 니네 나라로 가시던가. 내가 너 때문에 욕을 얼마나 먹은 줄 알기나 해? 빨리 꺼져라."
전단지를 붙이는 일도, 공장 일도 녹록지 않았다. 잦은 실수로 쫓겨나다시피 일터를 나오며 나의 무능함이 한결같이 북한 사람이기 때문이라 말하는데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이 위축될수록 좀처럼 들리지 않는 말들을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들이 화를 낼 때 비로소 내 가슴팍에 깊이 새겨졌다.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비슷한 사정이었지만, 아픈 무릎까지 가진 것은 나뿐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그들은 나를 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우리에서 탈출한 동물 취급을 하며 빨리 되돌아가라 겁박하는 듯 보였다. 그들을 붙잡고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묻고 싶은 날이 눈덩이처럼 쌓여만 가고 있었다.
"이 친구 말수가 좀 적어서 그렇지 허튼짓 안 하고 시키는 일 곧잘 해요."
"탈북자?"
"하하, 사장님도 듣는 사람 민망하게…… 요즘은 그렇게 안 불러요. 그 뭐라 했더라…… 북한이탈주민이라 하더라구요."
"그게 그거지. 내가 탈북자 애들 여럿 써 봤는데 끈기가 없어 끈기가. 목숨 걸고 온 애들 태도가 영 아니란 얘기지. 얻어먹고 자라서 그런가? 자본주의를 이해를 못 해. 열심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없다고 해야 하나?"
"사장님도 참…… 이 친구는 달라요. 신문에도 나왔던 친구인데 강원도 최전방으로 넘어온 보통내기가 아닌 친구예요."
쳐다도 보지 않고 귀찮다는 듯 커피만 홀짝거리던 사장은 그제야 내 쪽을 쳐다본다.
"와…… 미친놈이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발끝에 닿을 때마다 필사적으로 피해 봤지만 막다른 골목에서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을즈음 두눈을 꼭 감고 뜨면 외줄 위에서 조금씩 발을 내딛고 있었다. 발아래 깊은 어둠 속에서는 누군가의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힘든 외줄 타기는 그만하고 내려오라는 부름 같기도 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주저하고 있을 즈음 줄이 심하게 흔들리며 깔깔대는 사람들의 얼굴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한다. 꿈인 줄 알았지만, 웃음소리는 귓가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유는 분명 내 손아귀에 들어왔지만, 이 땅에서 국민이 된 것은 내가 아닌 조그마한 주민등록증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탈북자의 신분으로 매일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대로 자리 잡고 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늘 지치고 짜증 가득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내 처지도 잊고 남조선 사람들은 마음이 극한 빈곤함에 허덕인다 생각되어 동정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왜 왔냐는 비아냥과 철저한 무시 속에서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거듭 확인할수록 나는 절대 '우리'가 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한 번도 저한테 먼저 전화 주신 적 없었잖아요. 오늘 소주 한잔하려고 이렇게 많이 사 왔습니다."
양손 가득 먹을 것을 챙겨와 어린아이처럼 웃는 최신호 씨의 얼굴을 마주하니 그동안의 서러움에 목이 멨지만, 고마움도 제때 전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다시 한번 꾹꾹 눌러 담았다.
"김용 씨, 저는 북한에 가족을 두지는 않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과연 누구의 소원인지 계속 질문해 왔습니다. 누구는 이대로가 좋다고 하고, 누구는 꼭 통일이 되어야만 한다고 하는데 말이죠. 저는……"
줄곧 최신호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다가 끊어진 그의 말에 빈 소주잔을 응시했다. 그는 무슨 말을하고 싶은 걸까?
"전 이대로 김용 씨와 같은 분들이 많이 한국으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살아나가면서 공통점을 찾고 맞춰나가면서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함께라면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내 비워진 잔을 채우며 나의 동의를 구하고 싶은 것인지 모를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 겨우 입을 뗐다.
"많이 와도 한국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아 다시 돌아갈 겁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겁니다."
나의 대답에 그는 화제를 돌렸지만, 많이 좁혀졌던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순간을 그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고향 선배를 찾고 싶다는 뜻을 최신호 씨에게 전했지만, 한참이 지나도 이렇다 할 답변을 주지 않아 외삼촌임을 알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 서류 봉투를 받게 되었다.
'김용 씨, 먼저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신문 기사 내용 프린트해서 보내드립니다. 꽤 오래전에 한국 땅을 밟으신 분이셨더군요. 유감스럽게도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출소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김용 씨의 도움이 필요하신 분 같아 연락처도 남깁니다.
주소: 충청남도 서산시 태안군 태안읍 평천리 740 태안 LH 203동 705호
이중화 010-9235-1916
부디 찾는 분이 맞기를 바랍니다. 최신호 드림'
신문 기사 상단에 새하얀 셔츠와 짙은 남색 넥타이를 맨 사내의 사진이 보인다. 사진 아래로 ‘노크 귀순자 북한군 장교 이중화’라고 단정하게 적혀 있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분명 중화 삼촌의 얼굴이었고 13년 전 삼촌이 어떻게 이 땅을 밟았는지 상세히 적혀있었다. 과연 13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 맞는지 믿을 수 없어 삼촌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어내려갔다. 기사의 마지막 한 줄을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그게 삼촌이라고 인정하기까지 며칠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는 국민의 판단을 받아보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몇 년 전 기사 내용으로 삼촌을 마주하며 남한 사회의 부적응자, 사기로 전 재산 탕진, 전 부인 살해 미수자가 우리 중화 삼촌이 아닐 것이라고 당장이라도 최신호 씨에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짙은 쌍꺼풀이 진 눈, 작지만 오똑한 코와 두툼한 입술 그리고 유독 큰 귀를 자주 만지게 해주었던 분명 삼촌의 얼굴이 맞았다. 세월이 오래 흘러 나는 장성한 어른이 되었다지만, 우리의 시간은 13년 전에 멈춰버린 듯 그간 다 헤아릴 수 없는 인생 유전에 가슴을 치며 울면서 갈라진 이 땅에 태어난 운명을 저주했다.
"김용 씨, 못 나온다면 연락은 줘야지. 아무 연락 없이 3일을 쉬다가 이렇게 불쑥 나오면 내가 뭐가 되느냐구."
"죄송합니다."
"사정이 딱하다고 해서 겨우 자리 마련한 건데 김용 씨가 3일이나 연락 없이 안 나오는 바람에 우리 조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해? 청소 일이라고 만만하게 봤나 본데 요즘 이것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용 씨 자리 비운 사이에 사람 충원해서 다시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어찌 됐건 오늘 온 것 보니 무슨 큰일 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일자리 찾아봐야겠어."
"......"
"그동안 일한 일당은 내가 잘 계산해서 입금해줄 테니 어서 가봐."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또 어디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한 마음에 애꿎은 외투 끝자락을 만지며 한 번 더 부탁해 보려고 김 반장에게 다가섰다.
"내 아들이 김용 씨 나이라 아들 같아서 하는 얘기인데. 김용 씨 같은 사람들 때문에 탈북자들이 싸잡아 욕을 먹는 거야. 일을 얼마나 했다고 무단결근이야. 무 단 결 근, 단어 뜻이 뭔지는 알지? 내가 그동안 참고 말은 안 했는데 말야 김용씨 의지가 좀 부족한 것 같아. 젊은 사람이 말이야, 다 죽은 얼굴 해가지고…… 북한에서 한국 오는 게 어디 맨정신으로 되겠어, 사생결단하고 왔으면 그 마음과 자세 잃어버려서는 안 되지. 나도 내보내는 사람 붙잡고 별 얘기를 다 하네 그려. 아무튼 열심히 좀 살아봐, 죽기 살기로 말이야."
김 반장은 혀를 차며 차비라도 하라며 내 손에 지폐 몇 장을 쥐여주었다. 순간 목덜미가 저릿저릿하며 칼날이 내 손아귀를 스쳐 지나간 듯 아팠다.
"사생결단, 사생결단, 사생결단……"
조용히 웅얼거리는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내 넘쳐버린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어지자 돈을 내동댕이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여기가 바로 인간 생지옥이다. 니네가 뭘 안다고 그래!"
눈에 보이는 빗자루며 물걸레며 모두 내동댕이치고, 청소용 물통이며 세제도 다 쏟아버리며 누구를 향한 지 모를 분노를 표출했다. 사람들이 몰려와 뜯어말렸지만 나도 삼촌도 죽음을 무릅쓰고 넘어온 이 땅에서 노력이 부족해서 삶에 균열이 생긴 것이 아님을 그 분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안양 동안구 경찰서 소속 북한 이탈 주민 신변 보호 담당관 최신호 경위 입니다."
"저기 저분 김용 씨, 최 경위님 담당 맞죠?"
"네, 맞습니다."
철창 넘어 최신호 씨가 경찰서로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했지만, 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반가움보다는 수치심이 몰려와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면 싶었다.
"내가 지한테 욕을 했어 뭐 했어? 불쌍해서 차비 쥐여준게 그게 죽을죄야?"
김 반장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목소리를 좀처럼 낮추지 않는다.
"어르신 조용히 좀 하세요. 들어보니 어르신 때린 것은 아니라고 하잖아요. 어르신, CCTV 돌려봐요? 경찰 불러서 해결하면 될 것을 왜 사람을 억지로 끌고 나와서 일을 키우셨어요? 지금 여러 사람 골치 아프게 되었어요. 폭행을 당한 쪽이 어르신이 아니라 저기 계신 김용 씨라구요."
"아니, 그런데 김용 씨는 왜 유치장 안에 들어가 계신 거죠?"
최신호 씨의 강력한 항의에 담당 형사는 당황한 듯 말을 얼버무린다.
"최경위님, 아 그게 저희가 넣고 싶어서 넣은 게 아니고요. 저분이 제대로 조사도 안 받고 자꾸 자리를 뜨셔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가 계시라고 한 거예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저기에 가둬두면 안 되죠."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그 어느 때 보다도 단호하고 무섭게 내 이름을 부른다.
"김용 씨! 김용 씨! 어서 일어나 나오세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피하다 막다른 골목에서 더는 외줄타기는 자신 없다는 마음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불길 속으로 발을 내딛어보려고 하는 순간 “용아!”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아 불길 속으로 뛰어들고자 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지만, 치욕스러운 이곳에서의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려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절망 속에서 맞이한 가을은 더욱 쓸쓸했지만, 삼촌을 만나면 설득해 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자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이 나라에 어머니를 모셔 올 이유가 나에게도 삼촌에게도 더는 존재하지 않다고 되뇌어 보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리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깜빡 잠이 든 사이 귓전에서 울리는 낯익은 노랫소리에서 느끼는 포근함에 습관처럼 감싸 안은 두 팔에 힘을 풀어본다. 흐드러지게 핀 봄꽃 잔치에 어머니는 활짝 핀 분홍 진달래 빛 치마와 백색 저고리를 입고 사뿐사뿐 앞서가신다. 그 뒤를 부지런히 쫓아가지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어머니는 저만치 멀어져 있다. 내가 여기 있다고, 같이 가자고 소리쳐 보지만 소리는 어머니에게 닿지 않는 듯 그저 한 번씩 뒤돌아 환하게 웃어 보이신다. 따뜻한 봄바람과 햇살을 품에 안은 듯 다시 놓아주는 듯 하는 어머니의 동작이 어린아이 장난 같아 소리 내어 웃자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춤을 추듯 돌기 시작하신다.
“꽃 동리 새 동리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내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리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노래가 끝나기 전 어머니 손을 잡아야겠다고 힘써보지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나와 어머니 사이는 더욱 멀어질 뿐이다. 멀어져만 가는 어머니를 보고 있는데 저만치 중화 삼촌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중간중간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쫓기듯 싶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반가운 마음에
“삼촌, 삼촌 여기에요! 여기요!”
손을 힘차게 흔들어 삼촌을 부르는데 순식간에 시커먼 구덩이가 나타나 삼촌을 집어삼킨다.
“안돼! 삼촌, 삼촌! 중화 삼촌!”
있는 힘껏 소리치는데 누군가 심하게 나를 흔들어 깨운다.
“저기요, 저기요. 일어나세요. 종점이에요.”
“여기가……”
“서산 터미널이요. 어서 내리세요.”
미끄러지듯 내달리는 고속버스 안, 창밖에 펼쳐지는 낯선 풍경에 취했던 것일까 잠은 아주 깊고 달게 느껴졌지만, 꿈속에서 삼촌은 분명 울부짖고 있었는데 그 말을 미처 듣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충청남도 서산시 태안군 태안읍 평천리 740 태안 LH 203동 705호’
빛바랜 종이와 내려야 할 정류장을 거듭 확인하며 삼촌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수도 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눈물부터 나올까 조마조마했다.
“남자가 이래 눈물이 많아서 쓰겠냐. 용아, 니 이름 ‘용’자가 한자로 날래다, 용감하다는 뜻이다. 이름처럼 용감하게 살아야 한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삼촌은 늘 살뜰히 나를 챙겼다.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고 친구들이 놀려대도 총명하고 멋진 중화 삼촌이 있으니 그 누구 아버지도 부럽지 않다 여겼던 어린 시절의 마음도 기억난다. 없는 살림에 배가 고프고, 혹독한 훈련에 괴롭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크고 튼튼한 기둥이 되어 우리 모자의 삶에 버팀목이 되어준 삼촌이 있어 행복했다. 이 땅을 밟고 삼촌을 만나기 위해 또 한 번의 사계절을 보내야 했지만, 꼭 이 나라 이 땅이 아니어도 우리만 함께할 수 있다면 더이상 방황하며 살지 않아도 될 것을 기대해 보았다.
“저기…… 여기가 태안 LH 아파트입니까?”
내가 살았던 안양시와 사뭇 다른 느낌의 도시에서 비슷비슷한 골목길 안을 한참을 헤매다 용기 내 지나가는 할머니를 붙잡고 물었다.
“가만 보자, 몇 동 가는 거?”
“203동이요.”
“우리 딸네 집 동이구먼. 총각 나 따라와, 나도 우리 딸네 가는 길이었은께.”
“감사합니다.”
“여기 사람 아니지?”
“네……”
내렸던 버스 정류장 쪽을 다시 지나며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갔다. 할머니의 끊임없는 질문과 내 대답과 상관없는 혼잣말에 힘든 줄 모르며 걸어갔다.
“근데 누구 만나러 가는겨?”
“외삼촌 만나러 왔습니다.”
“기특하구먼, 멀리서 삼촌 보러도 다 오고. 우리 자식들은 내가 안가면 코빼기도 안보여.”
할머니의 굽은 등 뒤로 걷다 보니 이 땅을 밟고 줄곧 누군가의 뒤에 서서 걸어온 내가 보인다. 아직 해가 바뀌지 않았음에도 이곳에서 열한 달의 시간은 나에게 열한 해 보다 길게만 느껴진다. 왜 내가 그토록 이곳에 오고 싶어 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모호해지고, 무뎌지면서 길을 잃고 헤맸던 것은 아닌지, 고장 난 무릎을 핑계로 빠르게 돌아가는 이 사회에 제대로 두 발을 담그지 못하고 주춤거리다 넘어지기를 반복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탓해보기도 한다. 못나도 너무 못난 나의 모습이 삼촌 집과 가까워질수록 내 발끝에 걸려 발걸음을 늦춘다.
“총각, 다 왔어.”
숨이 차서 아파트 입구 계단에 털썩 주저앉은 할머니는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하신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거푸 두 번을 허리 숙여 인사하며 문득 정작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하는 최신호 씨에게는 제때 말하지 못한 것이 가슴을 긁는다. 삼촌을 만나고 다시 안양으로 올라가면 연락을 하겠노라 다짐을 해보지만, 내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면 그가 여전히 내 편에 서 있어 줄지 자신은 없었다. 최신호 씨 생각에 마음이 산란했지만, 705호 문패 앞에 서니 초인종을 누르면 금방이라도 삼촌이 뛰쳐나올 것 같아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문 정중앙 초인종 주위에 덕지덕지 붙은 전단지를 떼어내고, 문틈에 꽂힌 우편물들 빼내어 슬쩍 보니 이중화 이름 세글자가 먼저 나를 반긴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초인종을 누르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는듯싶다. 평일 오후 시간이라 아직 일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삼촌이 너는 어디서 일하느냐 물으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삼촌이 언제쯤 집에 돌아올지 몰랐지만, 기다리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 것 같아 내심 기쁘기도 했다. 마냥 힘들고 비참했던 시간들이 결국엔 이렇게 삼촌을 마주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았나 싶어 그간의 무기력함과 분노, 좌절감으로 한발자국도 제대로 내딛지 못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자존심 강한 삼촌은 본인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 줄지 걱정되기도 했다. 공부도 싸움도 한결같이 앞섰던 총명하고 당찬 삼촌이 이 땅에서 감당해야 했을 문화적, 경제적 충격과 '우리'로 절대 하나 될 수 없는 차별에서 비롯된 서러움의 고통을 나의 것과 포개어보니 삼촌의 13년 그 길고 긴 세월에 숨이 막히고 가슴에 구멍이 난 듯 시리고 아팠다. 내가 느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처절함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코끝이 찡해온다.
이틀 밤을 꼬박 새워 기다렸지만,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늦가을 밤 뼛속까지 스미는 바람에 어디 묵을 곳이라고 찾아야 하나 싶었지만 혹 새벽 일을 마치고라도 돌아오는 삼촌을 반기고 싶어 집 앞을 떠날 수 없었다.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전화를 걸어볼까도 싶었지만, 목소리보다 삼촌 얼굴을 먼저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잠시 잠깐 자리를 비우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기다림에 지쳐 계단 난간에 기대 정신을 잃듯 잠이 들기도 했다.
"저기요. 저기요 일어나보세요! 여기 일났어요."
번쩍이는 불빛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쥐죽은 듯이 조용했던 삼촌 집 앞으로 사람들이 둘러서 있다. 경찰관들과 몇몇 사람들이 입구 쪽을 막아서고 있다. 삼촌 집이 맞는가 싶어 다가서니 경찰관이 막아선다.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물러서세요."
"여기 사는 사람은 어디 있나요?"
"누구시죠? 여기 사시는 분을 아시나요?"
"......"
"비켜주세요. 지나갑니다."
순백색 천이 씌워진 들것을 두 남성이 힘겹게 들고나오고 있다.
"물러나 주세요. 여기 이렇게 막고 서계시면 안됩니다. 물러나세요."
분명 삼촌 집이 맞는데 왜 경찰관들이 막아서고 있고, 방금 들려 나간 것은 무엇일까?
"왠일이야. 사람이 죽었대……"
"705호 남자? 그 탈북자?"
"어, 그 남자 맞아. 나도 몇 번 봤는데……"
"왜 죽었대?"
"나야 모르지……꽤 오래 됐나 봐."
705호, 탈북자라는 단어에 출발하려는 구급차 쪽으로 달려갔다.
"비키세요. 뭐 하시는 거예요?"
"저기 저기 방금 태운 분이 이중화 맞습니까?"
"아 비키세요, 빨리 병원으로 이송 해야 합니다."
"이중화가 맞냐 말입니다."
"뭐야 이 사람. 저도 몰라요. 빨리 비키시라니까요."
"중화 삼촌! 삼촌! 저예요. 용이 왔어요. 삼촌! 삼촌!"
재차 비켜서라는 말에 이대로 삼촌을 보낼 수 없어 있는 힘껏 삼촌을 불러보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중화 씨 생전에 이북에 가족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삼촌 맞습니다. 저희 어머니 이춘옥 동생 이중화 맞습니다."
"여튼 전부인이신 분도 더이상 연락받는 것을 꺼리시고 해서 드리는 겁니다. 여기 성함하고 주민번호, 연락처, 주소 적어주세요."
삼촌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물건이라며 상자 하나를 건네받았다. 끝까지 내가 삼촌의 하나뿐인 조카임이 맞는지 의심받았지만, 더이상 말 할 힘조차 없어 주저앉고 싶을 즈음 그는 상자를 내버리듯 내 품에 안겨주었다. 금방이라도 삼촌이 나를 부를 것 같은 마음에 서둘러 돌아서 떠나려고 할 때 경찰관은 말을 흘리듯 내뱉고 자리를 떴다.
"여기까지 와서 왜 죽고 난리야. 참 이해가 안 간다 이해가……"
"김용 씨, 도대체 어디에 계셨던 거에요?"
"죄송합니다."
"전화기도 계속 꺼져 있고, 정말 걱정 많이 했습니다."
"별일 없으시죠?"
"......"
"잘 계신 것 확인했으니 되었습니다. 괜찮은 자리가 하나 나서 김용 씨 추천을 했습니다. 안양시 체육관에 초등학교 아이들 방과 후 기계체조 보조 선생님 자리인데 그동안 하셨던 일보다는 김용 씨에게 잘 맞지 않을까 싶어서요. 내일모레 정도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부담 갖지 마시고 가서 면접 한번 보시죠."
"제가……"
"네?"
"제가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신세라뇨, 김용 씨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어 제가 기쁩니다. 제가 항상 응원하고 있는 것 아시죠?"
그의 해맑은 얼굴이 보이는 듯 싶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를 그와의 통화에서 여전히 고맙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는데 최신호 씨는 내 마음을 아는 듯 나를 위로한다.
"김용 씨, 전 김용 씨가 최선을 다해서 한국에 적응하려고 하시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된 한국 사회와 사람들의 미숙함으로 되려 김용 씨에게 어려움을 안겨 드리고 있죠. 그래서 제가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그에게서 죄송하다는 말을 들은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이대로 그에게 삼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땅에 있을 이유가 더는 없기에 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겠노라 말해버릴 것 같아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렸다. 옷가지며 침구류 식기들을 정리하며 다시금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한국 사회와 사람들의 미숙함이 삼촌을 죽음으로 내몰고 그렇게 나도 내몰려 떠나려 하는 것일까. 찾아오는 이도 찾아갈 곳도 없이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죽음을 찾아 떠난 삼촌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 또다시 나의 마음을 후벼팠다. 조금 더 일찍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더라면, 문자라도 보냈더라면 삼촌은 삶의 끈을 다시 붙잡았을까, 삼촌에게 나와 어머니는 이미 잊혀진 존재였을까 질문에 질문을 거듭해 보지만 이곳에서의 비참한 삶에 고개도 못들 바에야 죽음으로 매듭을 짓겠다는 결정이 삼촌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땅에서 십수년간 하나가 되어 보고자 고군분투하며 치열하게 살았을 삼촌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이사가시나보우.”
“......”
“다 새것 같은데 내가 쓰면 안 되나?”
동이 트기 전 인적이 드물 때 사용하던 이불이며 식기류들을 한데 모아 버리려고 1층 엘리베이터를 나서는데 할머니 한 분이 엘리베이터를 타시며 말을 걸어오셨다.
“네 갖다 쓰세요.”
“고마워 총각. 근데 이 멀쩡한 것을 왜 다 버리나 가져가면 되지.”
“아주 멀리 갑니다. 다 가져갈 수 없어서요.”
1년 전 해를 넘기기 전 넘어온 철책에 가까워질수록 또 한 번의 사계절을 지나 겨울바람을 맞는 지금, 나는 남쪽에 서 있는 것인지 북쪽에 서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의 삶 속에서 이제는 그 어느 쪽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두렵고 떨렸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되는 듯 싶었다. 이제는 죽어도 남조선 땅을 밟아야겠다는 마음이 부끄러웠고, 그 죽음이 삼촌이어야만 했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애타게 동생과 아들을 기다리실 어머니에게 우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다시 넘어서야 할 철책 앞에 서본다. 철책보다 더 높고 단단하고 견고했던 남조선 사람들 얼굴 하나하나가 스쳐 지나갔지만, 최신호 씨의 해맑은 미소가 이내 굳어버린 마음을 녹였다. 금방이라도 내 손을 잡아끌 최신호 씨를 생각하며 전하지 못한 한마디를 힘겹게 내뱉어 보았다.
“고마웠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몇 번을 힘주어 말하며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에게 닿을 수 없는 그 말이 애처롭게 나를 붙잡았지만 시린 마음을 부여잡고 북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본다.
-끝-
연합뉴스 2022년 1월 4일 <’철책 월북’ 탈북민, 임대료 등 체납…교류없이 혼자 생활>
연합뉴스 2022년 1월 8일 <”군의 무능보다 놀라운 그의 월북 이유…탈북자의 냉혹한 현실”>
문화일보 2022년 1월 12일 <책임구역 4배에 GP까지 없애 ‘구멍’... 과학화 경계 돈 쏟고도 잇단 오판>
작가 주승현, 조난자들 (생각의 힘, 2018)
작가 조천현, 탈북자 (보리, 2021)
작가 강동완, 박정란, 사람과 사람 (너나드리,2015)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탈북민의 적응과 치유 이야기 (경진, 2016)
작가 KBS 류종훈 PD, 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 (성안북스, 2014)
감독 박정범, 무산일기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