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최 일병의 관찰일지
편지를 발견한 날
신 병장이 사라진 지 이틀째 되던 날, 나는 그의 침상 매트리스 틈에서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끝내 발송되지 않은, ‘주희에게’라고 쓰인 편지 여러 장.
봉투를 발견한 순간의 감각이 아직도 선명하다. 서늘한 이질감. 마치 그것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읽지 않고 태워 버렸다.
그가 편지에 쓴 말이 무엇이든 나는 그의 마지막 행보를 목격했고, 지금 이 기록은 그것의 증거다. 군 정보부도, 의무대의 의사들도 함구령을 내렸지만, 언젠가는 알려져야 할 진실.
변화의 시작
신 병장은 태국에서 돌아온 지 7일쯤 지나면서부터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바뀐 건 눈빛이었다. 처음엔 피로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단순한 충혈이 아니었다. ― 종국에 그의 눈은 흰자위를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검붉게 물들었다.
태국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평소처럼 모두와 농담도 나누고, 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점점 부자연스러워졌다.
그가 자주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반복해서 “왜 저를, 왜 저를.”이라며 중얼거렸다.
신 병장 복귀 후 8일째 날, 훈련 중에 그가 물을 거부하는 것을 보았다. 갈증으로 목이 탈 법한 상황에서도 물병을 입에 대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병장님, 물 안 드십니까?” 그는 “난 괜찮아”라고만 말했다. 그날 저녁 식사 때 그는 고기를 전혀 먹지 않았다. 오직 밥과 채소만 먹었다. 평소에 고기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날 이후, 나는 그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움직임, 말투, 습관의 변화를 주시했다.
그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한 번은 내가 다가가 물었다. “신 병장님,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승호야, 나 제대할 수 있겠지?”
“아니, 무슨 당연한 말씀을 하고 그러십니까.” 가볍게 대꾸했지만, 그 질문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저녁 점호 직후에 그가 옷을 벗는 것을 보았다. 몸에는 미세한 핏줄이 옅게 드러나 있었다. 거울 앞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13일째 날, 창고 정리를 하던 중 나는 그의 손을 우연히 보았다. 손등 가운데 큰 상처가, 유난히 붉었다.
나도 모르게 “병장님, 괜찮으십니까?”라고 물었고, 그는 손을 뒤로 숨기며 날카롭게 받아쳤다.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꺼.”
그가 뿜어내는 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박 상병의 경고
그날 저녁, 박 상병이 나를 따로 불렀다.
“승호야, 신 병장님한테... 뭔가 이상한 거, 못 느꼈어?” 그는 불안해 보였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 상병은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나도 느껴. 모두가 느끼고 있어.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거지.”
그는 며칠 전, 생활관 한구석에서 신 병장이 자신의 손바닥을 찢어 피를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확인하듯. 그리고 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걸... 맛봤어. 진짜야.”
처음엔 믿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신 병장을 모함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박 상병과 신 병장은 종종 의견 충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파랗게 질린 입술로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야.” 그가 말을 이었다. “어젯밤, 신 병장 침상에서 이상한 노트를 발견했어. 노트 가득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전부 흉터 모양이었어. 그리고 그 사이에 이상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지. ‘그가 나를 부른다’,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주희에겐 알릴 수 없다.’... 이런 말들.”
그날 밤, 나는 또 다른 걸 보았다. 신 병장이 거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내게는 그 모습이 익숙했다. 어머니가 가끔 교회에 나를 데려갔을 때 보았던 기도하던, 사람들. 그가 입을 달싹이며 중얼거리는 말들 속에 한 문장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세요.”
평소에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하게 걸었던 그가 이제는 구부정하게 걸었다. 조용하고 차분했던 그의 말투는 더 분명하고 날카롭게 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누군가를 오래 바라볼 때면, 그 대상은 마치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순종 선언
새벽 두 시, 신 병장 침상이 비어있었다.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곳에 그가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복도를 걷는 내내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주변 산새 소리도, 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화장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칸막이 안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누군가 숨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부러 헛기침을 하고 소변기 앞에 섰다. 금세 실내가 조용해졌다.
물 내리는 소리가 나더니 신 병장이 천천히 칸막이 안에서 나왔다.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표정은 평온했다.
“승호야.”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자야지… 때가 가까이 온 것 같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까닭 모를 공포와 경외감이 뒤섞인 감정에 숨이 막혔다.
그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나는 변하고 있어.” 그가 속삭였다. “처음엔 두려웠지만, 이제는 알겠어.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그의 말에 담긴 확신이 내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뭐가... 시작인데요?”
“새로운 존재로의 여정.” 그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따뜻했지만, 동시에 낯설었다.
“잘 지내라, 승호야. 서로 아끼면서 지내. 내가 너희들한테 잘해준 것처럼 너희도 서로 그렇게.”
그날 밤, 나는 그를 신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미 결정이 내려져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신 병장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군의관, 그리고 격리
그날 아침 결국 나는 중대장에게 보고했고 군의관과 헌병이 그를 데려갔다.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초연해 보였다.
헌병들이 그의 양팔을 잡고 나갈 때, 박 상병이 내게 속삭였다. “잘했어.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야.”
그날 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점호 때 중대장은 말했다. “신 병장은 잠시 격리되어 관찰 중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느끼고 있었다. 기약 없는 헤어짐이 될 거라는 걸.
다음 날, 의무대에서 일하는 김 병장이 몰래 소식을 전해주었다. “신 병장 상태가 심각해. 손바닥과 발등의 상처가 더 깊어졌고, 온몸에 핏줄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어. 체온은 34도로 낮아졌고…” 그는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감염된 게 맞는 것 같아. 혈액 샘플에서 병원체가 발견됐대. 의사들도 거의 확신하고 있어.”
“전염될 수 있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타액이나 혈액으로 전염 가능한 것 같아. 이를테면 물린다든가 할 때. 안전을 위해 완전 격리 조치가 내려졌어. 아무도 신 병장이랑 접촉하지 못해.”
그날 저녁, 정전이 일어났다. 갑자기 부대 전체의 전기가 나갔고, 백업 전력도 작동하지 않았다.
완전한 암흑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의지한 채 앉아 있었다. 손전등 빛이 창밖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전기가 다시 들어왔을 때, 중대장은 우리에게 즉시 취침하라고 명령했다.
사라진 신 병장
1시간 후, 헌병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생활관에 긴급 경보가 울렸다. 신 병장이 격리실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무장 경계가 즉시 발령되었고, 나머지 병력은 대피소로 이동했다. 대피소에서 우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정보를 교환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신 병장이 의무병 세 명을 제압하고 탈출했대.” 다른 이가 덧붙였다. “아무런 무기도 없었는데, 그저 눈빛만으로 사람들을 마비시켰대.” 김 병장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의무대 이 상병이 격리실 CCTV를 봤다는데, 신 병장은... 3층 창문을 부수고 뛰어내린 것 같아. 무슨 일인지 외벽 감시 카메라 영상에 공백이 생겼고…”
24시간 동안 대대적인 수색이 이어졌다. 헬기까지 동원되었지만, 그를 찾지 못했다. 계곡 바닥에 핏물 자국이 있었고, 부러진 족쇄가 진흙 위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둘째 날 아침, 부대 뒷산 나무에 목을 맨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누구보다도 다정했고, 친근했던 고참이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우리는 시신을 볼 수 없었다. 시체는 즉시 특수 바디 백에 넣어져 소각장으로 이송되었다.
하지만 이튿날,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각을 앞두고 있던 그의 시신이 부검실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 부대가 비상경계태세에 돌입했다. 병사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다니라는 명령을 받았고, 밤에는 추가 보초가 세워졌다.
진실의 파편들
그날 이후, 몇 가지 정보를 추가로 수집할 수 있었다.
정 상병은 내게 고백했다. “신 병장,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마다 피가 흘렀어. 하지만 별다른 고통을 느끼는 것 같진 않더라고. 늘... 중얼중얼거렸고.” 그는 계속했다. “한 번은 신 병장이 혼자 있을 때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처럼 보였어. 그때 들린 말이, ‘왜 저를 버리십니까.’ 여자친구랑 헤어진 건가?”
박 상병은 다른 노트를 찾았다. 거기엔 한 문장이 반복적으로 적혀 있었다. “뜻대로 하세요. 저희를 용서해 주세요.” 그 아래에는 이상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양팔을 벌린 사람 형상, 그리고 그 주위를 휘감는 붉은 선들. 마치 혈관이 피부를 뚫고 나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신 병장의 여자친구 이름이 반복해서 쓰여 있었다.
마지막 목격
나는 그것을 보았다. 어슴푸레한 새벽, 생활관 창문을 통해. 산등성이에 선 그 사람.
신 병장이 양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의 실루엣이 낯설었다. 무엇인가 달랐다. 그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를 지켜보는 동안, 주변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숨쉬기가 어려워질 정도로.
그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한 줄기 번개가 허공을 갈랐다. 순간적인 빛 속에서,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본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신 병장이 아니었다.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그의 형체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마치 그 자리에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그 후로 나는 그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본 게 정말 현실이었을까?” 처음엔 두려움이었다. 다음은 혼란. 그리고 지금은... 묘한 동경이다. 그가 느꼈을 해방감, 초월감 같은 것. 나는 매일 거울을 본다.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눈동자의 색을 살핀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많아졌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멀리서, 아주 희미하게. 그리고 꿈에서, 나는 신 병장을 본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손짓한다. 나는 매일 창밖을 본다. 내 손바닥... 그가 돌아올 때, 나는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최승호 일병의 기록 끝.
군 비밀 보고서 메모 (삭제 예정)
— 사건 코드명: SUBMISSION-26. 수도권 예비군 즉시 동원 검토.
— 감염자에 대한 감정적 서술은 보고서에 포함하지 말 것.
— 최 일병의 기록은 현재 비밀기록 등급 2단계로 분류. 공개 시 군 사기 저해 우려 있음.
→ 후속 조치: 전역 후 정기 심리검사 권고. 단, 외부 노출 최소화 바람.
— 참고사항: 주희(여·22·신 병장의 연인) 4월 8일 02:10, 대학 기숙사 CCTV 마지막 포착 후 소재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