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 타임

part 2

by 이열

침낭 안에 몸을 누인 기태는 몸을 뒤척이다 젊은 직원의 말을 떠올렸다. 어떻게 오긴? 은근 기분 나쁘네. 그런데 여기 이름은 왜 여우골일까? 분위기랑 매칭이 안 되는데… 희원이 이 새끼는 무슨 말을 하려고… 그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에서 기태는 정체 모를 것에 쫓겨 산속을 달리고 있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앞만 보고 뛰던 중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고, 이내 거대한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괴성을 지르다 꿈에서 깨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또다시 숲속을 달리고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커진 새벽, 기태가 눈을 떴다. 그는 까치 머리를 하고 휘청거리며 텐트 밖으로 나섰다. 그의 앞에 운무 사이로 산등성이가 거뭇거뭇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장관이네.” 기태는 한동안 물끄러미 경치를 감상하다가 기지개를 켰다.

텐트 안으로 돌아온 기태의 눈에 어젯밤 그대로 쌓아둔 설거짓거리가 들어왔다. 그는 혀를 끌끌 차며 그릇들을 바구니에 담아 개수대로 향했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개수대 오픈 시간 오전 8시 ~ 오후 10시. 주인백.

“아, 진짜...”


기태는 커피와 함께, 햄과 치즈를 사이에 끼운 식빵으로 아침을 때웠다. 시시각각 명료해지는 산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태의 표정이 다시 편안해졌다. 순간 거센 바람이 불었고, 꼬깃 해진 노란색 종이 하나가 그의 발밑으로 날아왔다. 기태는 무심코 용지를 집어 들었다. 피를 흘려 쓴 듯한 빨간색 한자 여럿. “뭐야, 3종 세트야?” 기태는 미간을 좁히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더러운 것을 만지는 마냥 두 손가락으로 종이 끝을 집어 데크 아래 비탈로 던졌다. 바지에 손을 문질렀다가 핸드폰을 꺼내 주변 풍경을 찍었다. 사진과 함께 아내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여기 경치 끝내주지?

어머, 정말 그렇네. 간만에 나 없이 자유 좀 누리다 와. 그간 스트레스 많이 쌓였을 텐데.

다미야, 사랑한다.

으, 뭐야 징그러... 나도!


전동 카트 한 대가 기태의 텐트 앞에 멈췄다. 동그란 안경을 쓴 젊은 여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왔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기태가 마른침을 삼키다 입을 열었다. “네, 안녕하세요.”

“어제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했어요.”

“아아, 네.”

“저희 운영 방침이 좀 엄격합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캠퍼 분들께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고픈 마음에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그러시군요.”

“오늘은 모쪼록 편안한 마음으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네.”

“그리고…”

기태는 짝다리를 짚었던 발을 바꾸며 잠자코 기다렸다.

“당연히 그럴 일 없으시겠지만, 오늘도 합석하시면 퇴실 조치하겠습니다. 이것도 미리 안내드린 부분이에요.”

기태가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 많이 팍팍하네요. 지금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규정이 그렇습니다.” 안경 너머 여성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기태는 양 손바닥을 머리 께에 올렸다. “규칙, 규정, 방침. 암요, 암요. 잘 알겠습니다.”

직원은 목례 후 카트를 타고 멀어져 갔다. 기태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에이, 썅.”


그림자가 짧아질 무렵, 기태는 출출한 배를 채우려 근처 식당으로 차를 몰았다. 미리 찍어둔 평점 높은 두부 요리집. 자극적인 음식만 찾던 예전과 달리 요즘 그는 담백한 식단에서 묘미를 찾았다. 약해진 소화 기관에 맞춰 음식 기호도 변했다.

가게는 허름했다. 손본지 오래된 한옥. 모서리에 살뜰하게 쳐진 거미줄이 기태의 표정을 구겼다.

“사장님, 여기 두부구이 정식 하나요.”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대꾸 없이 물을 가져왔다. 기태는 반백의 머리에 구부정한 자세 때문에 그녀가 더 늙어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상을 차리던 그녀가 불쑥 물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기태가 미소 지었다.

“여기 뭐 볼 게 있다고?”

“근처에 캠핑하러 왔어요.”

“여우골?”

“맞아요.”

주인아주머니가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혀를 찼다.

“왜 그러세요?” 물을 마시던 기태가 물었다.

등을 돌리던 주인이 기름한 눈으로 기태를 돌아보더니 입을 뗐다. “그냥, 오늘 돌아가요. 하룻밤 보낼 거면 쥐 죽은 듯이 있다가 가고.”

“네? 무슨 말씀… 아니 왜…?”

주인은 말없이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말이 목에 걸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친 기태는 계산을 하며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 무슨 일 있었어요? 아까 왜 돌아가라고 하신 건지…”

주인은 손사래를 쳤다. “아녜요, 아녜요. 신경 쓰지 말아요. 요즘 산짐승 나온다는 얘기가 있던데, 캠핑장에서 알아서 잘 관리하겠지, 뭐.”

“아, 네.”

기태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피식 웃고는 이쑤시개를 입에 물었다. 가게 문 위에 세모꼴로 붙은 부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음식점을 나섰다.

캠핑장에 돌아온 기태는 의자와 책, 맥주 한 캔을 들고 계곡가에 자리 잡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빛의 장막이 서너 곳에 펼쳐졌고, 짙은 풀 내음과 박하 향이 콧속을 뚫었다. 30도에 가까운 더운 날씨였지만 계곡 근처 그늘 아래는 서늘했다. 책을 펴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신 기태의 어깨가 점차 내려앉았다.

한동안 책에 집중하던 기태가 문득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무숲 사이 멀리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기태는 자세를 고정하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지만 이따금 새들만 나무에서 나무로 자리를 옮기며 지저귈 뿐이었다.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산등성이에 해가 걸릴 때 즈음, 라면이 끓고 있던 기태의 텐트에 희원이 들어왔다. “야, 라면 먹냐? 내 것도 좀 끓여도.”

“왔냐. 라면만 먹고 가라. 오늘도 걸리면 퇴실이라더라.”

“아, 너한테도 그랬냐? 어린애가 당돌하더만. 아침에 나랑 싸울 뻔했잖아. 어른인 내가 참았기에 망정이지.”

“잘했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욱하면 안 되지.”

희원이 재킷 주머니에서 소주 두 병을 꺼냈다. “오늘은 소주로 가자. 이 지역 증류주란다.”

“라면만 먹고 가라니까.”

“쫄았냐? 그거 그냥 말로만 그러는 거야. 아니 오늘도 우리 말고 개미 한 마리 없더만. 조용히 얘기하면, 몰라. 설마 텐트 열어 보고 검사하겠냐?”

“그렇긴 한데.”

“자자, 한 잔 받아. 마지막 밤을 불태우자고.”

술이 한두 잔 돌자 기태의 표정이 풀렸다.

“나 점심때 근처 식당에서 밥 먹었거든. 근데 여기 묵는다니까 주인아줌마가 뭐라고 했는지 아냐?”

“뭐라고 했는데? 좋겠다고?”

“얼른 집에 가라는 거야. 하룻밤 묵지 말고. 왠 줄 아냐?”

“그냥 말해. 답답하게 자꾸 퀴즈 내지 말고.”

“산짐승 나온댄다.”

“엥? 호랑이라도 사나? 곰?”

“우리나라에 그런 게 어딨냐?”

“멧돼지! 멧돼지인가 부다.”

“그건 말이 되는 얘기네. 근데 뭐, 멧돼지 있다고 해도 여기서 어련히 알아서 잘 관리하겠지.”

“그치. 사람도 이렇게 빡세게 관리하는데, 내 생각에는 주변 멧돼지 다 씨를 말렸을 듯.”

둘은 피식거리며 잔을 맞댔다. 대학 친구들 동향 얘기를 주고받던 중, 희원이 두 번째 병을 따며 말했다. “그런데 넌, 그날 밤 생각 안 나냐?”

기태는, 순간 소름이 끼쳤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뭐? 언제?”

“우리 둘이 술 먹고… 운전한 날.”

“이 새끼가 진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 밤의 장면들이 기태의 머릿속에 뚝뚝 끊긴 필름 컷처럼 쏟아져 나왔다. 운전면허를 딴 기념으로 희원과 렌터카를 몰고 갔던 펜션. 인근 음식점 테이블 위에 쌓인 소주 병들. 산등성이 비탈길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자동차. 숲속에서 갑자기 뛰쳐나온 남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몸뚱이. 울먹이던 희원의 얼굴. 흙투성이 옷을 털며 희원에게 다그치던 자신의 모습. 애써 외면하고 묻었던 기억.

희원은 입맛만 다시며 말이 없었다.

“그 얘긴 다신 꺼내지 않기로 했잖아. 왜 개소리야?” 기태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나 그때 일이 요즘 자꾸 꿈에 나와.” 희원이 천천히 입을 뗐다.

“조용히 해, 양희원. 정신 차려.”

희원이 씁쓸한 표정으로 기태를 쳐다보았다. “기태야 그러지 말고 우리, 얘기 좀 해 보자. 나 혼자 담아 두고만 있으려니 너무 힘들다. 너도 괴로울 거 아녀? 어?”

기태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라, 이제. 너 많이 취했나 보다.”

“나 정신 말짱하다.” 희원이 정색했다. “그때 정신이 없었지. 경황없을 때 네가 밀어붙이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이렇게 뭐? 잘 살고 있잖아? 이제 와서 뭐 어쩌자고?”

“X발 좀 내 얘기 좀 들어 달라고! 이 얘길 내가 누구랑 하냐? 응? 너 밖에 더 있어?”

“하아, 거울 붙잡고 니 양심이랑 얘기하세요. 생명의 은인한테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지 말고.”

희원이 눈을 치켜뜨며 일어서려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오바 하지 마, 희원아.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우리, 잘 한 거야. 앞으로도 잘 살면 돼.” 기태가 말했다.

“사이코패스 같은 새끼.” 희원이 중얼거렸다.

“뭐라고 했냐?” 기태가 눈을 번뜩였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가. 가라고. 너랑 할 얘기 없으니까 이제 나가라고.” 그가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희원 앞으로 다가가는 순간, 텐트 스킨에 손전등 불빛이 어렸다.

“고객님, 안에 계신가요?”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얼어붙었다.

기태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네, 그런데요.”

“지금 혹시 다른 고객님이랑 같이 계신 걸까요?”

기태와 희원이 잠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닙니다.” 기태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럼 잠깐 텐트 문 좀 열어 주시겠어요?”

“아뇨. 안 됩니다… 왜죠?”

“잠시 확인만 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아니, 사람 없다는데 왜 그러는 거예요. 정말? 손님을 이렇게 불편하게 해도 되는 겁니까? 예?”

“안전 관리 차원에서, 필요시 텐트 내부 확인 가능하다고 공지드렸었어요.”

“공지, 공지, 그놈의 공지만 하면 다 되는 겁니까? 이거 사생활 침해하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갑자기 기태가 언성을 높이던 쪽과 반대편에서 텐트 지퍼가 열렸다. 젊은 직원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텐트 조명에 동그란 안경이 반짝였다. 기태와 희원이 뒤로 몸을 젖혔다. “에이씨, 깜짝이야!”

“고객님, 저는 이미 안내드렸습니다. 두 분 모두 퇴실 부탁드리겠습니다.”

“못 나가겠는데요. 저희 둘 다 취했어요. 이 밤에 음주 운전하라는 겁니까?” 희원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다시 생각해 보시죠. 이거 소비자 권리 침해예요. 저희가 무슨 피해를 끼쳤다고 이러십니까? 네? 왜 이렇게 갑질이에요? 남의 텐트는 왜 열고 들어와요?” 기태가 거들었다.

“캠핑장 좀 잘 지어놨다고 캠퍼들 이렇게 숨통 조이면서 장사해도 되는 겁니까?” 희원이 말했다.

“할 수 없네요. 일단 당장 본인 텐트로 돌아가 주세요. 빨리 움직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직원이 말했다.

“여기 사장 불러 주세요. 당신이랑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네요.” 기태가 말했다.

“사장님이 지시하신 사항입니다. 안전을 위해 두 분 모두 빨리 자리 정리해 주세요. 되도록 조용히요.”

“그렇겐 못하겠습니다.” 희원이 의자에서 일어나 팔짱을 끼었다.

기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직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텐트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좋습니다. 제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벌써 9시에요. 매너 타임 지났습니다. 간곡히 말씀드리는데, 고객님은 지금 바로 본인 텐트로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또 어기신다면 그때부터 일어나는 사태에 대해 캠핑장은 일절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것도 이미 공지드린 부분입니다.”

희원은 손바닥을 위로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기태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있었다. 직원은 몸을 홱 돌려 텐트를 벗어났다.

“와, 불쑥 열고 들어와서 진짜 깜짝 놀랐네. 내가 다신 여기 오나 봐라. 매너 타임 8시 30분은 또 뭐야. 우리가 뭐, 새 나라의 어린이야?” 희원이 말했다.

“하아,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기태가 말했다. “근데 희원아, 이제 진짜 가라. 난 이제 잘란다.”

“뭐? 벌써? 얘기 좀 해야지.”

“난 할 얘기 없다고 몇 번을 말하냐? 계속 너랑 있다간 돌아 버릴 것 같다.”

“야, 정기태. 넌 그때 생각 안 나냐? 괴롭지 않냐고?” 희원이 얼굴을 붉혔다.

“우리 그 얘기 다신 안 꺼내기로 했잖아? 너랑 나랑만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 문제 없어. 난 생각도 안 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만 입 다물어.”

“… 하루도 편안히 잠들었던 날이 없었어. 나… 자수하는 생각도 종종 해.”

“무슨 개소리야, X발. 공소시효 다 돼가는데. 그럼 나는? 어? 나도 같이 했다고 하게?”

희원이 기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때 어디선가 짐승이 우는 것 같은, 고막을 찢을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기태와 희원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뭐… 뭐야, 무슨 소리야 이거.” 기태가 말했다.

“메… 멧돼지가 이렇게 우나?”

다시 한번 무언가가 울부짖었고 둘은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자기 텐트 밖이 환하게 밝아졌다. 스피커로 안내 방송이 나왔다.

“A18, B1 손님은 지금 즉시 웰컴센터로 오시기 바랍니다. 지금 즉시, 뛰어요!”

기태와 희원은 서로 창백해진 얼굴을 마주 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캠핑장 중앙 흰색 건물로 내달렸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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