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어디지? 아, 명월산. 귀속에서 계속 삐 소리가 난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 내 수트. 두 번밖에 못 입었는데. 새로 포장한 아스팔트처럼 주름 하나 없던 내 옷. 찢기고 구겨지고 흙먼지를 뒤집어썼겠지. 젠장. 얼굴에 차가운 감촉이 하나, 둘, 더해간다. 간지럽다. 갑작스레 기침이 터져 나온다. 따듯한 액체가 코와 입가를 타고 흐른다. 달큼하네. 기침이 멎자 실없이 웃음이 흐른다. “하아, 한 대만 피웠으면 좋겠는데.” 심호흡을 하려다 갈비뼈 부근이 찡하게 아려온다. 오만상을 찌푸리다 눈가가 습해진다. 무력하게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이름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 삐 소리가 점차 잦아든다. 소원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펜던트가 가슴께에서 달그락거리기 시작한다.
◇◇◇
“너도 이제 한 마리 데리고 다녀야 할 것 같은데.” 문수가 깁스를 한 내 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올드 패션드 잔에 남은 호박색 액체를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빈 잔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혼자가 편해.”
다섯 평 남짓한 어스름한 공간, 침침한 주광색 조명 서넛 아래 세월에 풍화된 바 테이블이 실내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바텐더 측 진열장에는 수십 종류 위스키와 리큐어가 군기 잡힌 병사들처럼 열을 맞췄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벽은 세련되었다기보단 빈한 인상을 준다. 테이블 구석에서 잔을 닦고 있는 바텐더, 반대편 끝자락 나와 문수 세 사람만으로도 공간이 헐떡였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둔탁한 비트는 시간을 거꾸로 감는 소리 같다. 문수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준기야, 요즘 마물들 상대하기 버겁지 않냐? 까딱하면 골로 가는데, 반사 신경은 점점 둔해진단 말이지.”
“글쎄. 노련함으로 어떻게 안 될까?” 피식 웃으며 빈 잔을 손으로 감쌌다.
“이걸 경고라고 생각해.” 문수가 내 팔을 잡고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음엔 목이나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다고.”
헌터 생활 10년 차, 언제나 혼자 행동했다. 업계에선 웨어울프를 달고 다니는 사냥꾼들이 흔하지만.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걔네 강하잖아. 재생력에, 개들 조상이라 그런지 충성심도 있고. 사냥에 큰 도움이 된다 이 말씀이야.” 문수는 침을 튀기며 말했다. “한 번 표식만 찍어 놓으면 내 소유라니깐. 헌터끼리 거래도 잘 되고.”
“문수야. 웨어울프면 늑대냐 인간이냐?”
“괴물이지.”
“그런가.” 헛웃음을 뱉었다.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어. 걔네도 피를 좋아한다고. 엄한 살생 저지르다 나락 가게 두지 말고 같이 청소하러 다니면 얼마나 좋냐? 어차피 우리가 거두지 않으면 결국 죽은 목숨이잖아. 윈윈이야 윈윈.”
“생각해 볼게.”
“생각이고 자시고 무조건 하나 장만해. 나중에 구천 떠돌면서 후회하지 말고. 중고 거래 앱에 종종 매물 올라오니 거기서 찾아봐. 별로 안 비싸.”
“앱?”
“헌터 마켓.”
“아, 웨어울프도 사고팔아?”
“자본주의. 할 수만 있다면 거기서 영혼도 거래하지 않겠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녀석 말이 맞아. 나까지 위험하게 만들지 말고 네 몸을 보호해라.” 머릿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목걸이에 달린 큐브를 꽉 움켜쥐었다. 그가 잠잠해졌다.
‘김소원’이라고 했다. 장터에서 눈에 띈 매물의 이름. 매도 글에는 아래 설명이 붙었다.
성별: 암컷
나이: 미상 (죽어도 말 안 함)
전투력: 중상 (1회 사용)
직업: 작가?, 밴드 보컬?
특징: 식탐 많음
가격: 200만 원
가격은 시세 대비 적당해 보였다. 한동안 망설였지만, 전투 중에 일격 한 방만 대신 맞아줘도 가치 있는 소비일 거라고 결론 내렸다.
“180만 원에 안 될까요?”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았다.
“아니, 업자끼리 왜 그래요? 딱 보면 쿨매인 거 몰라요?”
“그런데, 혹시 왜 파시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상대방이 잠시 머뭇거렸다. “헌터 생활 접으려고요. 쉽지 않네요.”
“아, 네… 185에…”
“하아, 190에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마음 바뀌기 전에 재빨리 핸드폰을 두드렸다. “입금했어요.”
뒤 편 보도블록에 앉은 소원이 한심하다는 듯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야, 이리 와 이제.” 전 주인이 말했다.
소원이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 다가왔다. 생각보다 키가 컸는데 다리가 길어서 더 그래 보였다. 소원이 성큼성큼 다가오자 절로 몸이 뒤로 젖혔다.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왔고, 몸은 호리호리했다. 장난기 넘치는 얼굴은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지만, 이 종족들 나이는 외모만 보아선 가늠할 수 없는 법이다. 나는 부러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가 이내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너…?” 큐브 속 남자가 말했다.
“조용히 해.” 내가 일렀다.
소원은 기지개를 켰다. “끝났어?”
“응, 이제 표식 바꾸자.” 전 주인 말했다.
그가 잠시 양 손바닥을 마주했다가, 손등을 번갈아 아래 위로 향했다가, 소원의 이마로 팔을 뻗었다. 소원이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잘 부탁한다.”
말이 짧다. 내민 손을 무시했다. 전 주인과 같은 패턴으로 손 모양을 만들었다가 소원에게 뻗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거두고 하품을 하며 입을 가렸다.
거래가 끝나고 둘만 남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해야 할 말을 골랐다. 소원이 눈치를 살피더니 말했다. “배고픈데 밥이나 사 줘.”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예! 설렁탕 먹으러 가자.” 소원이 눈을 반짝였다.
그녀와 식당에 마주 앉았다. 묵묵히 밥술을 뜨려다가, 소원이 설렁탕에 소금을 퍼붓는 것을 보고 뜨악했다.
“아니, 왜 그렇게…?”
“아, 이거? 이래야 맛있어. 먹어 볼래?” 소원이 말했다.
“아뇨. 됐습니다.”
“간이 딱 좋아. 진짜 맛있어. 자자, 사양하지 말고.” 소원이 바닷물에 만 밥을 한술 뜨더니 숟가락을 들이댔다.
“됐다니까요.” 의자를 살짝 뒤로 뺐다.
“자, 아…”
손을 내젓다가 소원의 손을 치고 말았다.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 진짜”
소원이 정색했다. “말로 하면 되지, 왜 치고 그러냐?”
“싫다고 했는데 소원 씨가 자꾸 들이밀었잖아요?”
“소원 씨?” 소원은 입꼬리를 씰룩댔다.
“저기요, 밥 친구 하자고 당신 산… 계약한 거 아닙니다.” 냅킨으로 테이블 위에 떨어진 음식을 닦으며 말했다.
“알지 알지, 그래도 앞으로 같이 사냥하러 다닐 건데. 좀 트고 지내야 되지 않겠어?”
“소원 씨 본분에만 충실해 주세요.”
“근데 넌 몇 살이야? 30대… 중반?”
숟가락을 놓았다. “나이 알아서 뭐 합니까? 그러는 당신은 몇 살인데 자꾸 반말이에요?”
“숙녀한테 실례네. 비밀.” 소원이 검지를 입술에 댔다.
무시하는 게 답인 것 같았다. “일 얘기합시다.” 소원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끊었다. “호출하면 최대한 빨리 응답 바랍니다. 보수는 의뢰비의 20% 구요.”
“20%라, 참으로 후하시군요.” 소원이 오른팔을 가슴께에서 한 바퀴 돌리고 밖으로 뻗었다.
“고정된 직업은 없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무슨 소리, 글 쓰고, 노래하느라 바쁘다고.”
“이제 저와 하는 일이 최우선 순위입니다.”
“예예, 주인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전에… 검증을 해 봤으면 하는데요.”
“뭐? 내 실력? 나가자.”
공터로 자리를 옮겨 서로 작은 콩으로 보일 만큼 떨어졌다. 습관적으로 던힐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소원이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몸을 꿈틀꿈틀하더니 이내 잿빛 형상 동전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색깔이… 혹시 은랑銀狼? 설마, 클래스가 다른 애들인데. 변신을 마친 소원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지그재그로 달리며 내 앞까지 도달하는데… 5초. 느리다. 그래도 늑대가 몰고 온 바람은 앞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그녀, 아니 그것은 이제 2미터가량의 털북숭이 거구. 코앞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존재 앞에서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이 방금 전 같이 설렁탕을 먹던 그 여자라니. 크고 억센 손톱 두 개가 입에 문 담배를 살며시 잡아 빼더니 뒤로 던졌다. “몸에 안 좋아.” 짐승의 얼굴을 한 그것은 숨조차 고르지 않았다.
“은랑이로군.” 큐브 남자가 말했다. “군침이 도는구나.”
“시끄럽다.” 품에서 은빛 대형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그걸로 뭐 하려고? 어… 야, 너 그거 은銀 탄환은 아니지?” 소원이 물러서며 말했다.
“맞는데요.”
“뭐? 미친…”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늑대를 조준하고 총을 쏘기 시작했다. 짐승은 옆으로 원을 그리며 달렸다. 첫 두 발을 피하고 나에게 몸을 날렸다. 마지막 탄환이 늑대의 귀를 스쳤다. 야수는 나를 넘어뜨리고 짓눌렀다. 살기 어린 눈이 나를 내려다보았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은랑이다. 싸게 샀다.
“죽일 셈이야?”
“그럴 셈이었으면 지금 내려다보고 있는 건 나였겠죠. 대충 하는 것 같아서, 동기부여 차원이었습니다.”
“왓 더…”
몸을 일으킨 늑대는 빠르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옷을 툭툭 털며 말했다. “이래서 평소에 오버사이즈 밖에 못 입어. 에잉”
“은 총알은 아니었습니다. 움직임이 좋네요.”
“예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재수탱이님” 소원이 합장을 했다. “근데 넌 왜 계속 존댓말이냐? 불편하게. 너도 말 놔. 네가 주인이잖아 이제?” 소원이 말했다.
“싫습니다. 다음엔 실전입니다. 의뢰 한 건 받아 놓은 게 있어요. 이틀 후 실행하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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