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일에 감정을 섞을 순 없다. 골로 갈 확률만 높아질 뿐이다. 이 짓거리는 정말 몇 번만 더할 거다. 손 털면 어디 하와이 같은 곳에 작은 집을 얻어 여생을 보내야지. 인적 드문 곳, 새파란 파도 소리만 들려오는 곳, 좀비와 구미호와 뱀파이어와 웨어울프가 없는 곳, 한없이 평화롭기만 한 세상 ― 고독한 곳 ― 웨어울프와 무슨 미래를 그리겠는가? 삶이라는 감옥에 길고 긴 시간 동안 수감될 저주받은 존재와.
“난 어쩔 건데?” 펜던트 악마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내 머릿속 좀 읽지 말라고 했을 텐데. 넌, 나랑 지옥 끝까지 같이 가야지. 그전에 널 영원히 없애 버릴 방법을 찾으면 더 좋고.”
“풀어 줘. 해코지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마.”
“악마 얘기를 믿는 멍청이는 없어.”
“모든 악마의 영혼을 걸고 맹세한다. 해치지 않겠다.”
“그래 놓고 실컷 괴롭힌 다음 ‘죽이진 않았잖아’라고 하겠지.”
“네 앞에 다신 나타나지 않겠다.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을 거야.”
“부족해. 아예 인간 세상에서 사라져. 네 고향 지옥으로 떨어져서 다신 기어올라오지 말라고. 그럼 생각해 볼게.”
악마는 침묵했다.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자칭 메피스토라는 녀석을 만난 것은 1년 전. 전처의 불륜 상대였다. 아내가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상대가 인간에게 빙의한 대악마였다니. 다행히 불운은 거기서 그쳤다. 어쩌다 내기에서 따서 가지고 있던 봉인물 ― 큐브 펜던트 ― 덕에 겨우 죽을 고비를 넘겼던 것이다. 전처는 그 사실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도 그녀가 악마에게 먹힐 뻔했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그저 정부情夫에게 급작스레 실연 당한 줄로만 알고 있겠지. 전처와는 아무 미련 없이 끝냈다.
하와이 바닷속에 묻어버리면 안전할까? 그러다 누가 건져올리면? 지각 변동으로 봉인물이 으스러지면? 만에 하나 가능성 때문에 계속 지니고 있지만 완전히 없애버릴 방법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아무도 박멸할 수 없다면 일단 내가 짊어지고 가는 수밖에.
명월산 자락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마물이 나타나 사람을 찢었다. 시공사는 급히 헌터 네트워크에 의뢰했고, 착수한 A급 헌터 두 팀이 모두 나가떨어졌다. ― 한 팀은 의식 불명, 한 팀은 문자 그대로 갈기갈기 찢겼다. 공사가 한 달 이상 지연됐고, 성공 보수가 크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의뢰가 나에게 넘어왔다.
“사람을 종잇장처럼 다루는 걸 보니 웨어베어일 확률이 높아. 잘나가는 두 팀이 실패했다고 하니 여간내기는 아니고. 아직 실체가 명확한 건 아니니까 일단 조사부터 하자. 최대한 충돌은 피하고. 오케이?”
“응.”
“질문 없어?”
“없어.” 어설프게 끝난 고백 이후, 소원은 무뚝뚝해졌다.
“그럼 내일 저녁 9시에 보자.”
전화가 뚝 끊겼다.
마음이 쓰여 입술을 깨물었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이번이 마지막. 은퇴 시점을 앞당기기로 했다. 이번 건 보수가 상당해서 원래 계획과 금전적 차이가 크지 않다. 소원과 계속 이렇게 지낼 순 없다. 이제 와서 다른 웨어울프와 새롭게 시작하는 건 고려할 가치도 없는 일이고. 나는 은퇴, 파트너십은 종료. 소원아, 좋은 주인 만나.
노란색 폴리스 라인을 들어 올려 현장으로 들어갔다. 공사는 초반에 중단됐다. 시커먼 아가리 같은 거대한 구덩이 위로 철골 기둥 몇 개만 휑뎅그렁히 박혀 있었다. 의뢰인 측에서 알린 바와 같이 시체가 발견된 곳은 명월산 중턱이었지만 피해자들은 처음에 이곳에 있었다.
“짐승 발자국은 안 보이는데, 냄새는 어때? 단서가 될만한 게 있어?” 내가 말했다.
“없어. 곰이나 뭐 다른 동물 체취는 느껴지지 않아. 전부 인간.” 소원이 말했다.
“오케이. 시체가 발견된 장소로 가자. 가다가 미심쩍은 거 발견하면 알려 줘.”
“그래.”
컴컴한 산비탈을 훑으면서 가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고라니 같은 작은 동물들의 발자국과 분변 외에는 이렇다 할 생명의 흔적이 없었다.
“새가 안 우네.” 소원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자겠지.”
“너무 조용해서 이상한데.”
“나 이번 건 끝나면 이 일 그만두려고.” 엉뚱한 말이 툭 튀어나왔다.
“뭐? 왜? 나 때문은 아니지?” 앞서 걷던 소원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럴 리가. 예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야.”
“그럼… 우리는?”
“어, 너는 계속 신원 보증이랑 일자리가 필요할 테니까…” 무의식중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산불 낼 생각이야? 그런데, 나를 도로 파시겠다?”
“그 수밖에 없지 않나?” 담배를 케이스에 도로 집어넣으려는데 잘 들어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넌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
“고, 고맙다는 생각을 하지.” 담배가 부러졌다. 바닥에 떨궜다.
“그게 다야?” 소원은 다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어, 단데… 뭐가? 왜?”
“너도 나 좋아하잖아.”
“뭔 소리야.”
“난 너 좋아해. 너도 좀 솔직해져 봐.”
“그거… 오래가는 감정 아니야. 위험한 일 같이 하다 보니까 착각하는 거야. 심장이 왜 빨리 뛰는지 헷갈리는 거라고.”
“뭘 그렇게 의심하고 주저하고 억누르면서 사는 거야? 준기야, 살다 보니까 감정에 솔직해져야 행복하더라. 착각인지 아닌지는 확인해 보면 될 거 아니야? 누가 결혼하재?”
소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할 말을 찾아 헤매던 중 산 위에서 느닷없이 굵직한 포효가 울렸다. 차원 너머에서 생경한 존재가 우는소리가 어쩌다 경계의 틈을 비집고 나와 이세계의 지축을 흔드는 것 같았다. 반사적으로 얼어붙었다. 가만, 어디선가 들어본 소린데? 재빨리 모습을 바꾼 소원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뛰었다.
“어? 야! 뭔 줄 알고?”
“그러니까 확인해 봐야지. 우리 얘기는 이따 계속하자.” 소원은 한 손을 까딱 흔들더니 뒤도 안 보고 달렸다.
무데뽀 녀석. A급이 당했다는데 무슨 자신감인가. 별수 없이 이미 멀어진 소원을 좇아 내달렸다.
봉인물이 진동했다. “악마다.”
“뭐?!”
메피스토와 대적했을 때가 떠올랐다. 내 앞에서 급작스레 부풀어 오르던 인간. 피부는 검붉게 변하고 머리에서 뿔이 솟아났었지. 마치 내 안의 모든 공포를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바로 아까같이 울부짖었다. 마물 중 마물, 신에 가까운 존재. A급 헌터 한 부대는 있어야 잡을까 말 깐데. “썅!”
눈앞이 하얘지고 허파에 쇳물이 넘실댈 때쯤 당도한 산 중턱. 소원과 남자가 있었다. 늑대로 변한 소원이 소형견처럼 보일 만큼 남자는 거인에, 벌거숭이였다. 남자의 손에 목을 붙들린 소원이 힘없이 버둥대고 있었다.
즉각 리볼버를 꺼내 놈의 다리에 성수聖水탄을 날렸다. 거인은 무릎을 꿇었고 소원은 바닥에 내려졌다. 진짜 악마라면 성수탄 정도로는 약간의 시간만 벌 수 있을 뿐이다.
“이 변태 자식아!” 거인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탕. 머리에 한 발. 탕. 가슴에 한 발. 소원을 향해 달렸다.
“소원아, 괜찮아?! 가자. 빨리 가야 해!”
“주, 준기야...” 소원의 눈에서 처음 보는 감정을 읽었다. 그것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걸린 시간은 찰나였겠지만, 악마에게 패대기쳐질 시간으론 충분했다.
◇◇◇
“정신이 들었나? 저 녀석 네 여친을 먹을 거다. 아주 꼭꼭 씹어서 말이야. 은랑은 보양식이거든. 그 꼴 보기 싫으면 빨리 날 해방해. 날 받아들여라. 저거 하급이야. 나한텐 껌도 아니지.” 메피스토가 말한다.
“내 몸, 잠깐만 쓰고… 돌려주진 않겠지?”
“허 참, 넌 이제 위대한 여정을 나와 함께 하는 영광을 누리는 거다.”
계속 거부했던 진실이 물밀듯 나를 덮친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설렁탕집에서 숟가락을 들이대던 그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잘 부탁한다”고 짧게 인사하던 그 순간부터.
“온갖 추악한 짓거리를 저지르겠다는 말이로군.”
“우주적 질서. 인간의 조그마한 머리론 불가해한 일이다.”
우주적 질서. 웃음이 난다. 내가 지켜온 질서는 무엇인가. 혼자가 좋다는 거짓말, 감정은 위험하다는 자기 세뇌.
소원을 살리려면 악마가 돼야 한다. 악마가 되면 나는 사라지고 세상은 더 비참해진다.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간단한 계산이다.
쪽빛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온다. 푸른 잔디 언덕 위 파란색 지붕을 올린 하얀 집이 자그맣다. 누런 금속 문고리를 내려 문을 열고 들어선다. 통창으로 보이는 광활한 수평선에 마음이 멎는다. 소파에 앉아 있던 여인이 배시시 웃으면서 달려온다. 소원의 웃는 얼굴이 머리에 뿔 달린 내 모습을 지운다. 속내를 인정하는 순간이 내가 사라지는 순간이라니. 시간이 없다.
“내가 되는 건 두렵지 않겠지. 사실은 너 자신이 두려울 거야. 무시하던 감정에 굴복해 나약해지는 것. 지금 날 받아들이는 건, 너의 진짜 모습에 정직해지는 일이다.” 악마가 속삭인다.
“말이 많네.” 나는 말없이 봉인물을 잡아 뜯는다. 해제 주문을 외우고 위 아랫니로 입방체를 문다. 큐브에서 붉은빛이 조각조각 뿜어져 나온다. 마침내 물체는 소멸하고 수천 년 동안 셀 수 없는 몸과 마음을 피로 물들인 악이 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몸 구석구석을 탐닉하느라 정신없는 존재에게 재촉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빨리 가. 소원인… 꼭 살려 줘.”
“후아, 여부가 있나? 그릇이여. 그런데… 허기지니까 늑대 다리 하나만 먹지. 편히 잠들라고.”
“X발, 악마 새끼.” 나는 까무룩 어둠에 덮인다.
사진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