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소원

part 2

by 이열

쇠잔한 건물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폐건물에 달린 수십 개의 검은 눈에는 귀기가 담겼고, 쩍 벌린 검은 입에는 심연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곳 자체가 마물처럼 느껴졌다. 지방 소도시 중심가에서 살짝 빗겨난 외곽. 그 건물을 기점으로 공터, 그리고 농지가 시작되고 있었다. 의뢰인 말에 따르면 그곳 터에 새 건물을 올려야 하는데, 작업을 시작한 인부들이 한 명 두 명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종국엔 모두가 달아났다고 했다. 사람 피를 먹는 존재를 목격했다는 인부가 있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이미 꽁초 대여섯 개가 발 주변에 널렸다.

멀리 어둠 속 고양이 눈이 드러났다.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자동차 전조등이었다. 어느새 택시가 내 앞에 섰다. 문이 열리며 소원이 큰 소리를 냈다. “아, 진짜 차 너무 막히네.”

“많이 늦었네요.” 달그림자를 향해 연기를 뱉었다.

“미안, 미안. 워낙 차가 막혀서 말이지.” 소원이 살짝 혀를 내밀었다.

“시간 약속은 꼭 지켰으면 합니다.” 정색을 하다 숨을 크게 들이켰다. “혹시 술 마셨어요?”

소원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맥주 한 캔만 한다는 게 그만.”

“내가 오늘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어, 그치. 근데 난 약간 취해야 몸이 가볍더라고.”

입술을 깨물다 말을 이었다.

“문자로 설명드렸던 것처럼, 흡혈귀로 보입니다. 몇 마리인지는 불분명. 간단히 작전을 말하면 이래요. 먼저 소원 씨가 들어가서 주의를 끌고, 그것들이 흥분해서 모습을 드러낸 사이, 내가 성수를 넣은 탄환을 박아 넣는 거죠.”

“알았어. 총알 받이 하라는 거잖아.”

“다수만 아니라면 위험하진 않을 겁니다. 잠시 시간만 벌어주면 내가 마무리해요. 금방 끝날 겁니다.”

“끝나고 맛있는 거 사라.”

소원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잿빛 늑대로 변했다. 나에게 한 쪽 눈을 깜빡이더니 순식간에 폐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 아니, 말 안 끝났는데!” 나는 리볼버를 들고 입구 쪽으로 뛰었다. 벽에 기대 잠시 숨을 고르고 야간 투시경을 썼다. 소원이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들었지만, 상대가 소수라면 ― 그럴 확률이 높았고 ― 늑대에게 관심이 몰린 사이 일거에 타진할 수 있을 터였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늑대는 건들거리며 거침없이 안으로 걸어갔다. “이리 오너라! 손님 오셨다.”

로비 중앙에 놓인 테이블에서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슨 냄새야 이거? …아무도 없냐아? 쫄?”

늑대가 갑자기 다리를 휘청였다. “어, 이거…?”

소원이 앞발을 휘젓다가 옆으로 고꾸라졌다. 그녀가 몸을 떨었다.

“벨라돈나?” 반사적으로 뛰어들려다가 멈칫했다. 소원의 머리 위에서 어둠이 찢기고 있었다. 그 틈을 두 마리가 비집고 나왔다. 민머리에 희멀건 피부, 뱀파이어다. 실루엣으로 보아 한 마리는 원피스, 다른 녀석은 스키니 차림. 마른침을 삼켰다.

“늑대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둘 중 하나가 말했다.

“이마를 봐.”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헌터 소유다. 헌터가 왔다.” 원피스가 다급하게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나는 이미 실내로 뛰어들고 있었다. 차례로 탄환 두 발을 발사했다. 스키니의 머리가 오븐 속 빵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푸슉하고 고름이 터지는 것처럼 녹아내렸다. 이어 원피스의 머리도 질척대는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나는 쉬지 않고 내달려 쓰러진 두 마리의 가슴에도 한 발씩 총알을 박았다.

소원은 이제 인간의 형상으로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품에서 키트를 꺼내 원통형 금속 주사기를 뽑아 들었다. 해독제를 놓으려던 찰나 무언가가 내 목덜미를 잡아채 뒤로 던졌다. 공중에 떠오르며 주사기를 소원의 머리로 던졌다. 주사기는 표적을 정확히 가격했다. 소원이 신음을 흘렸다. 바닥에 떨어진 나는 지체 없이 뒤로 한 바퀴를 굴렀다. 참고 있던 숨을 짧게 들이켰다. 한 마리가 더 있었다. 그것이 나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내 자매들을 감히!”

허리에 찬 리볼버를 다시 뽑으려 하자 그것이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와 오른팔을 붙잡고 하악질을 해댔다. 눈은 휜 자위까지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커다란 송곳니 사이로 시뻘건 혀가 뱀처럼 꿈틀거렸다. 피부에 새겨진 자글자글한 주름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빨리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발끝부터 잘근잘근 씹어 주마.”

“입 냄새나. 이빨.”

왼손을 들어 스프레이를 뿌리려고 했지만, 이빨이 민머리로 내 코를 강타했다. 이어 비틀거리는 내 멱살을 잡고 양 뺨에 번갈아 따귀를 때렸다. 투시경이 날아갔다. 코에서 피가 흘렀다. 이빨의 혀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피를 핥았다.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더러운 감촉이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겼다.

“죽고 싶지 않으면 날 해방해라. 받아들여!” 머릿속에서 큐브 남자가 보챘다. 무의식중에 큐브에 손을 대려던 찰나 이빨 뒤에서 맹렬히 달려오는 은색 털 뭉치를 보았다.

“좆까. 악마 새끼.” 나는 웃었다.

“하, 넌 감정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다며? 그 착각, 꽤 달콤하지?” 큐브 악마는 비웃었다.

“닥쳐.” 나는 이내 벨라돈나에 머리 꼭대기까지 잠겼다.


“야, 주인아. 준기야! 이제 일어나.”

누가 내 멱살을? 부연 사람의 형상. 이내 자리 잡은 초점에 소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 이제 정신 좀 들어?” 소원이 말했다.

“으빨…” 머리가 어지러웠다.

“응? 이빨 빠졌다고?”

“그 마즈막 흐펼그이?” 입술이 퉁퉁 부어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 저기”

소원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린 곳에 사람 형상으로 불에 탄 자리가 보였다.

“어뜨케… 느가?”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욱신 거렸다.

“어, 한참 옥신각신하다가 네 허리춤에서 이것 좀 빌렸지.”

소원은 말뚝을 흔들어 보였다.

“드다난데?”

소원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는 얼굴을 활짝 폈다.

“이 정도야 뭘. 너 나 아니었으면 해까닥 골로 갈 뻔한 거 알지?”

“그마어.”

“별말씀을. 야 그래서 하는 얘긴데 이 건은 40% 떼주면 안 되냐?”

입속에 고인 피를 뱉었다. 아파도 이 말만은 똑바로 전하고 싶었다. “내가 널 살려따는 승가근 안 드냐? 아쓰.”

소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웃었다. “아, 드디어 말 깠네? 좋아 좋아. 일리 있는 얘기야. 그럼 삼십.”

“이습오.”

“콜!” 소원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고마워. 나 신경 쓰느라 서두른 거 알아. 위험한데 왜 그랬어?”

“돈 아끄어서. 그자.” 일어나 담배를 물었다.


소원과 함께 해결한 의뢰가 쌓여갔다. 그녀 덕에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고, 내 덕에 그녀도 그랬고. 차츰 팀워크가 안정됐다. 환상의 콤비까진 아니지만 죽이 잘 맞는 파트너였다. 업계에서 내 명성이 높아졌고, 페이 좋은 일거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섯 번만 더 하고 은퇴하는 계획을 세웠다. 순조로웠다. 단 하나 성가신 일이 있었는데, 소원이 내게 플러팅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디라고?” 내가 물었다.

“‘위 아 락스타’, 검색해 봐. 홍대 삼거리에 있어.” 소원이 말했다.

“다시 한번 얘기하는데, 난 시끄러운 거 싫은데.”

“이 봐, 파트너. 아니 주인님. 저번 일 끝나면 꼭 회식하기로 하셨잖아요. 장소는 제 맘대로 고르라고 하셨잖아요?”

“알았어.”

“오케이. 토요일 7시! 늦지 마!” 소원이 눈을 빛냈다.


가게로 내려가는 계단, 잿빛 콘크리트였다. 벽도 천장도. 정면엔 롤링스톤즈 텅 로고. 전형적이구나. 쿵쿵거리는 소리가 차츰 커졌다. 노인의 몸에 밴 담배 냄새처럼 공간 자체가 퀴퀴했다. 짧게 숨을 들이켜고 가게 문을 열었더니 둔탁한 소음과 군중의 열기가 훅하고 덮쳐왔다. ‘위 아 락스타’,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보며 술을 마시는 곳. 어렸을 땐 락 밴드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글쎄, 시끄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파트너가 사정해서 오기는 했지만 역시 탐탁지 않다. 왜, 어떻게 이렇게 끈덕질 수 있는 거지? 소원은 눈치 따윈 보지 않는다. 당당히 요구한다, 관철될 때까지. 자신은 그래도 된다고,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냥 거리낌 없이. 가만, 저기 저 기타 든 싱어가 소원인가?

싱어/소원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만 주억거렸다. 마침 곡 하나가 끝난 듯했다. 흥분한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소원은 멤버들을 돌아보며 눈짓을 주고받았다. 암전. 소원이 기타를 보며 리프를 시작했다. 드럼과 베이스가 따라 달렸다. 붉은 조명이 소원의 밴드를 훑었다.


혼자가 편하다던 그 남자

차가운 눈빛 뒤에 숨겨진

외로운 뒷모습을 봤어


"괜찮다"며 웃어넘기지만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네 어깨는 점점 무거워져


오랜 시간 혼자 걸어온

네 발걸음이 흔들려도

Happy birthday, my stubborn hunter

오늘만큼은 총 내려놔 Happy birthday,


곡은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좋았다. 다만 목덜미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오글거림에 노랫소리가 점점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참자, 참아. 그래, 길어야 3분. 아니 5분 정도일 거야. 이건 그냥 가사일뿐이야. 가사 속 남자는 나지만 그냥 소원과 나만 아는 이야기일 뿐이잖아. 가수니까, 떠오르는 영감을 곡으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녀석 자유지 뭐. 그런데, 설마 노래하다 나를 지목하진 않겠지? 제발 그런 짓만 하지 말아 줘, 제발.


내 까칠한 파트너 좀 더 편하게 있어봐

우린 서로를 지켜내고 있어

아직 갈 길이 멀어도 Happy birthday,

J야 이런 날도 나쁘지 않잖아


소원은 끝내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관객들은 각양각색의 감탄사를 터뜨리며 지목 당한 행운아가 누구인지 두리번거렸다. 타이폰에게 화염을 때려 맞은 것 마냥 얼굴이 화르륵 타올랐다. 전혀 내가 아니라는 듯이 천천히 입구 쪽으로 몸을 돌리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는 척하면서 자리를 빠져나왔다. 담배가 절실했다.


공연이 끝났다. 가게 구석 테이블에서 소원을 마주했다.

“야, 너 부끄러워서 도망친 거지?” 소원은 씩씩댔다.

“좋겠다. 얼굴 두꺼워서.” 툭 뱉었다.

소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끝까지 들어줬어야지! …어쨌든, 생일 축하해.” 그녀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배시시 웃었다.

“생일인 건 어떻게 알았어?” 이어서 술기운에 그간 참고 있던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혹시 너 나 좋아하냐?” 목덜미가 다시 간지러웠다.

소원은 펄쩍 뛰었다. “아니. 미쳤어? 우린 그냥 동업자지. 아, 주종 관계. 주인님 생신을 제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겠습니까? 소인이 재롱잔치 한 번 준비해 보았사옵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왜?”

“그럼 안 돼?”

“뭘?”

“아, 아니야. 그런데, 내가 얘기했나? 나 너랑 다니니까 신나.”

“그러냐.”

“전 주인은 겁쟁이였고, 전전 주인은 헌터가 아니었거든.”

“헌터가 아니면?”

“컬렉터? 수집가? 3년 동안 내가 고작 한 일이라곤 호출 오면 그 녀석 전시관에 가서 포즈 취하고 변신하고 변태들한테 박수받고, 뭐, 마치 스트리퍼가 된 기분이었달까.”

“3년이라… 길었네. 고생했다.”

“최악이었지. 그런데 요샌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주인님도 되게 능력 있으시고 말이지.”

“예전 같진 않은데. 다행히…”

“뭐?”

“네가 굉장히 도움이 된다.”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괜한 말을 했나 보다. 이상한 분위기로 흐르지 않도록 화제를 돌렸다.

“은랑은…”

“그런데 진짜 안 돼?” 그녀가 말을 끊었다. 실패다.

“뭐가?”

“아냐.” …휴.

“잘 생각했어.”

“뭘?”

“말 안 하기로 한 거. 널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가 내 스타일이 아니야.” 참지 못하고 소원의 얼굴을 향해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한 번만 더 이상한 소리 하면 팔아 버릴 거야.”

소원은 얼굴을 콱 일그러뜨리더니 느닷없이 내 머리를 붙잡고 입술에 입술을 들이밀었다. 엄청난 완력에 꼼짝할 수 없었다. 누군가 세상에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입술을 뗀 소원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열다섯 번째 버드와이저 한 병을 원 샷 했다. 그러고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어이, 자는 척하지 마.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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