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 타임

part 3

by 이열

젊은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들어와요!”

기태와 희원이 건물 안에 들어서자 그녀가 다급히 문을 걸어 잠갔다.

“뭐예요?… 헉… 뭡니까? 헉… 헉… 저 짐승… 때문이에요?” 희원이 말했다. 기태는 벽에 손을 짚고 거칠게 숨을 골랐다.

직원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냥 짐승이 아니에요.” 그녀는 기태와 희원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구미호입니다.”

정적이 흘렀다.

“아, 진짜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이게 무슨 쇼냐구요? 규정 안 따랐다고 저희 엿 멕이는 거예요 지금?” 희원이 말했다. 기태는 혀를 찼다.

“어차피 잠시 후 목격하실 테니 더 이상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기태의 눈에 그제야 실내 여러 곳에 붙여진 부적들이 눈에 띄었다. “뭐, 뭡니까? 이것들은?”

“결계를 만들었어요. 잠시 시간을 벌어줄 거예요.”

기태가 표정을 구기자 직원이 말을 이었다. “저는 퇴마사예요. 캠핑장 조성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고용주 ― 김 사장님 꿈에 구미호가 여러 번 나타났다고 해요. 이곳은 자신이 참선하는 곳과 가까우니 공사를 중단하라고.”

“X발. 뭔 소리야, 진짜.” 희원이 말했다.

퇴마사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김 사장님은, 굽히지 않았습니다. 밤 9시 이후에는 조용히 관리할 것을 약속하고 그녀의 허락을 받았어요. 단, 참선을 방해할 정도로 인간의 기척이 느껴질 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겠다는 조건으로요.”

“무슨 대가 말입니까?” 기태가 말했다.

“사람의 생명, 영혼.” 그녀가 잠시 입술을 적셨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장님은 그냥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확인해 보고 싶었겠지요. 저를 고용해 이 주변을 조사했어요. 저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영의 기운이 강한 곳이더군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사장님은 저를 상주 인력으로 채용했습니다.”

“그래서 그 구미호란 게 나타난 적 있어요?” 희원이 물었다.

“아니요. 혹시 사고 날까 봐 합석 금지, 매너 타임 관리를 엄격히 한 겁니다. 여지껏 다른 손님들은 잘 지켜 주셨고요.” 직원이 말했다.

“구미호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당신, 구미호 나타나면 감당할 수 있어요?” 기태가 물었다.

“글쎄요.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없겠죠?” 안경 아래 직원의 입은, 웃고 있었다.

“헙!” 기태의 뒤편에서 희원이 신음했다. “야, 기… 기태야. 이… 이것 좀…”

“왜?”

희원이 데스크 뒤편을 가리키며 입을 막고 있었다. 기태가 천천히 다가가 그 너머를 바라보니 그곳에도 퇴마사 ― 동그란 안경을 쓴 여성이 누워있었다. 아니, 엎드려 있었다. 목이 반대로 꺾인 채.

“어어…” 기태가 고개를 돌려 방금 전까지 말을 섞던 퇴마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녀의 뒤춤에서 꼬리들이, 너울대고 있었다.

“내가 너무 우습게 보였던 게지. 사장에게도 그 여자에게도. 이깟 종이들.” 부적들이 일제히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한 달만 더 참선하면 신이 될 수 있었어. 단 한 달. 인간을 감내하지 못하면 신에 닿을 수 없는 건가?”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기태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말을 토해내는 것처럼 음절이 뒤섞였고, 비명과 읊조림이 사방으로 내달렸고, 여성과 남성, 아이와 노인의 목소리가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기태의 몸에 헤아릴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휘몰아치고, 처연함이 남았다. 기태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곳은 나의 영역이니 물러나 달라고 청했었다. 말을 듣지 않더군. 참선 중에 너그러워졌는지, 얼마 남지 않아 방심했는지 그와 약조하고 말았지.” 여성, 아니 구미호의 얼굴에 금이 가고 있었다.

기태와 희원이 뒷걸음질을 쳤다.

“자, 나는 다시 원점이야. 다음 천 년이 진심으로 기대되는구나. 아니면 그냥 악귀로 살아갈 수도 있겠지. 어쨌든 나에게 겸손함을 일깨워 준 너희들에겐 선택권을 주마.” 구미호의 눈동자가 점점 붉어졌다.

“무… 무슨?” 기태가 말했다.

“한 명은 지금 죽어. 다른 한 명에겐 기회를 줄게. 누가 어떻게 할지는 너희들이 결정해.”

희원이 덜덜 떨며 이마의 땀을 훔치더니 기태를 가리켰다. “저… 저 새끼가 죽어야 해요. 예, 옛날에 사람 죽이고 도망가자고… 저 새끼가 그랬어요.”

구미호가 천천히 기태를 쳐다보더니 귀기 어린 웃음을 귀에 걸었다.

기태는 바지에 지릴 것 같았지만 간신히 입을 열었다. “무, 무슨 개소리야. 니가 죽어 이 새끼야. 넌 처자식도 없잖아.” 그가 두 손을 모았다. “구미호님 저를 살려 주십쇼. 뭐든 하겠습니다.”

“시끄럽구나, 하찮은 것들. 정도 없고, 멋도 없고. 내가 뱉은 말을 후회하게 만드는구나. 내가 구슬을 던질 테니 못 받은 사람이, 죽어.”

이제 구미호의 얼굴은 여우의 형상에 가까웠다. 눈은 뒤로 찢어지고 코와 입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머리 위엔 귀가 솟았다. 그것이 입을 크게 벌리더니 구슬 두 개를 꺼냈다. 그중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기태에게 날아갔다. 기태는 어렵지 않게 구슬을 받았고 환호성을 질렀다. 희원은 탄식했다. 구미호가 희원을 바라봤다. 희원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자세를 잡았다. 구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구슬을 바닥에 흘렸다.

“어…? 뭐예요? 뭡니까!?” 희원이 시뻘게진 얼굴로 손가락질을 했다.

“네가 못 받았네?” 구미호가 말했다.

그것이 순식간에 희원의 뒤편에 서서 그의 머리채를 잡았다. 구미호는 이제 희원보다 훨씬 거대해 보였다. 희원은 신음 소리조차 흘리지 못했다. 구미호는 기태를 바라보며 희원의 배를 손으로 뚫었다. 잠시 그 안을 휘젓던 손이 다시 밖으로 나왔고 그 손엔 시뻘건 내장 하나가 들려있었다. 기태는 입을 틀어막았다. 희원이 눈을 하얗게 까뒤집더니 입에서 피거품을 흘렸다. 몸이 힘없이 늘어졌다. 구미호는 희원을 옆으로 툭 던지고 그의 몸에서 나온 장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시선은 여전히 기태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그녀가 친구의 몸을 우물거리는 모습에 기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닥에 토사물을 쏟았다. 기태는 지금 상황이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새소리가 들리면 잠에서 깰 거야. 아니야, 소리를 질러 볼까? 버티자, 버티면 돼. 버티면 지나가. 이내 그것이 혀로 새빨간 입술을 핥았고, 기태의 희망은 깨졌다. 그의 두개골 안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기회를 줄게. 내가 지금부터 100을 셀 거야. 최대한 멀리 도망쳐 봐. 그동안 내 영역을 벗어나면 널 놓아 주마. 잡히면 이 꼴 나는 거고.” 구미호는 붉은 손가락으로 쓰러진 희원을 가리켰다.

“어… 어어…”

“우물쭈물 댈 여유가 없을 텐데. 시작한다. 하나…”

기태가 주춤주춤하다가 눈가를 훔치며 밖으로 내달렸다. 그는 주차장으로 뛰어가며 주머니를 더듬었다. 마침 차 키가 그곳에 있었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문을 열고 뛰어들어 시동 버튼을 눌렀다. 엔진은 끅끅 소리만 낼 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주먹으로 운전대를 내리쳤지만 여전히 차는 반응이 없었다. 안 되는데. 안 되는데. 기태는 밖으로 나와 다시 도로 쪽으로 달렸다.

하느님, 부처님, 조상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제발.

순간 캠핑장을 밝히던 불이 모두 꺼졌다. 기태는 순식간에 등골을 타고 올라와 머리를 얼리는 한기에 몸서리쳤다. 깊은 어둠에 잠겨 잠시 주위를 헤맸지만, 이내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 길이 시야에 들어왔다. 기태는 달리고 또 달렸다. 턱 밑까지 치달은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을 누르며.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달리면 멀리 달아날 수 없을 터였다. 기태는 숲을 가로지르기로 했다. 나무와 바위들이 진로를 방해했지만, 기태는 몸 어디선가 초인적인 힘이 솟는 것을 느끼며 장애물을 뛰어넘고 타넘었다. 그러다 돌부리에 채여 비탈길을 굴렀다. 여기저기 차인 몸이 통증으로 욱신거렸지만 그는 지체하지 않았다. 살아서 가족에게 돌아가야 했다. 그에게 다른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 희원이도, 차로 쳤던 누군가도. 지금 살아 있음을 알려 주는 헐떡이는 숨소리가 언제까지고 이어지길 간절히 기도했다. 먼 곳에서 그 짐승이 울부짖었다. 서서히 숲에 짙은 안개가 내렸다. 부연 공기 속을 헤맬수록 기태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짐승의 소리는 가까워지는 듯하다가 다시 멀어짐을 반복했다. 웃는 소리 같기도 비명 소리 같기도 했다. 기태는 시야가 짧아져 속도를 늦추지 않을 수 없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자수할게요. 자수하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신이시여 제발! 그때 멀리 전방에서 가로등 불빛이 반짝였다. 기태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있는 힘껏 뛰고 구르고 뛰고 굴렀다. 마침내 차도가 보였고 기태는 그곳으로 뛰어들었고 흰색 자동차가 그를 밀어버렸다.

쿵. 빙그르르. 끼익.


끊겼던 의식이 돌아왔다. 기태는 아프지 않았다. 다만 앞을 볼 수 없고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차 문이 열리고 사람이 다가오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야, 뭐야. 저거? 서… 설마.”

“으악, 썅. 오, 하느님.”

“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X발.”

“우리… 사람 친 거야?”

내가, 차에 치였구나. 기태는 헛웃음을 삼켰다.

“조용히 좀 해 봐. 여, 여보세요? 괜찮으세요?”

“아, 진짜! 죽은 거 아니야?!”

“숨은 쉬는 것 같은데…”

“어떡하지? 그… 그래, 일단 경찰? 아니 119에 신고해야겠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인데.

“가만히 있어라, 너. 조용히 해. 생각 좀 하게.”

“아, 제발. 여보세요. 정신 좀 차려 봐요. 빨리 구급차 불러야지, 야. 거기 서서 뭐 하냐?”

“너, 내 말 잘 들어.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라.”

“어어, 왜? 뭐? 어떻게 하게?”

“근처에 묻자.”

이거, 나잖아?

“뭐라고?”

“산에 묻자고. 저 꼴을 봐라. 이 사람 어차피 조금 있으면 죽어. 너랑 나랑 앞길이 창창한데 여기서 인생 끝낼 순 없어.”

“기태야, 아무리 그래도…”

“닥쳐. 이 새끼야. 내가 음주 운전하지 말자고 했지? 네가 X발 괜찮다고 꼬드기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이 개새끼야!”

이게 뭐야, X발, 그날이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어린 희원이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기태는 까무룩 의식을 잃었다.

다시 정신이 돌아왔을 땐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이 새끼들아 나 살아있어. 살아 있다고.

또다시 의식이 끊겼다가, 돌아왔다. 기태는 이내 숨을 쉴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허파가 비명을 질러대며 무엇이든 들이마시려 했지만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그것이 웃고 있었고 아내가 울고 있었고 희원이 부르고 있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기태는 모두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얼굴없는 자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끝인가?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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