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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건 Apr 10. 2024

번외편 – 오역은 왜 발생하는가 2

인문사회과학에도 업계 용어가 있다.

번외편 – 오역은 왜 발생하는가 2

인문사회과학에도 업계 용어가 있다.


친절한 해설서가 아님에도 철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책 중 일부가 대중 독자에게 널리 소개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책의 내용이 우리의 일상이나 현실과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막상 독자가 책을 사서 읽다 보면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한국어로 되어 있지만, 한국어 같지 않은 글. 주변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들어왔다. 


많은 독자가 자연과학 서적과 다르게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일상의 언어로 쓰여 있으리라 생각한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책이 말하려는 주제에 집중해 천천히 고민하며 읽어 나가면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인문사회과학 분야에도 업계의 용어가 있다. 이런 용어는 때로는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고, 이미 알고 있는 단어이지만 그 뜻이 일상의 용법과는 맞지 않는 경우일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자연과학 단어의 뜻을 찾듯이 인터넷에 검색해 알아보는 것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 


번역도 마찬가지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번역할 때는 개념어에 해당하는 외국 단어를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어떤 단어로 번역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를 사용해야 오해가 없을뿐더러, 일반 독자가 단어의 뜻을 검색해서 알아볼 때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철학이나 사회과학 번역서의 경우 종종 번역자가 이를 간과해 통용되지 않는 번역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주디스 버틀러의 책 <지상에서 함께 한다는 것> 서문에서 발견한 잘 이해가 되지 않던 번역문도 그런 경우였다. 주디스 버틀러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 중 한 명이다. <지상에서 함께 한다는 것>은 유대인 철학자인 버틀러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하지만 주제가 가지고 있는 대중성과 다르게 버틀러가 다양한 철학과 정신분석학의 개념어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어 책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타성이나 ‘방해’를 윤리적 관계의 중심에 세운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우선 그런 용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유대인 정체성의 변별적인 특징은 이타성의 방해를 받는다는 것이라고, 이방인과의 관계가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적인 상황뿐 아니라 유대인은 가장 근본적인 윤리적 관계 중 하나를 정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이타성을 윤리적 관계의 중심에 세운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맥락상 “이타성”이라는 개념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타성이 윤리적 관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역설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우리는 보통 이타적인 것이 윤리적이라고 배워왔다. 유대인의 정체성의 특징이 ‘이타성의 방해’라는 말 또한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어 번역과 영어 원문을 찾아보았다. 역자가 이타성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alterity, alterität”였다. 철학에서는 ‘타자성’으로 자주 번역되는 단어다. “타자성(alterity)”은 문화적 다양성이나 서로 다름 속에서 나의 정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타자의 고유성을 설명할 때도 사용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타자성이란 단어는 내 자신의 표면적 정체성이나 고유성을 제한하고 제약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파악되기도 한다. 


이타성을 타자성으로 머리에서 다시 수정하고 살펴보고 나니 앞 문단에서 역자가 이타성이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할 때 영어 “alterity”를 병기하고 있었으며, 이타성에 해당하는 한자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利他가 아니라, 異他를 함께 표기하고 있다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다를 이(異)와 다를 (他)를 썼다. 


그래서 네이버를 통해 이타(異他)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문서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이타(異他)라는 단어를 사용한 여러 문서에서 그 의미를 利他 다르지 않게 사용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누군가 타자성을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 조합으로 이타라고 번역한 것이 이상하게 이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았다. 


방해라고 번역한 “interruption”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interruption은 한 대상이나 주체의 행위나 활동, 또는 특성이 어떤 요인에 의해 더 이상 잘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설명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방해’는 오히려 그것을 잘 작동하지 않게 만드는 외부적 원인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번역문을 수정해 보았다.


“타자성이나, ’중단‘을 윤리적 관계의 중심에 둔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보일 것이다. 우선 이런 개념들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야겠다. 유대 정체성의 변별적 특징은 타자성에 의한 자기 정체성의 중단이며, 비유대인과의 관계는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적 상황을 정의할 뿐만 아니라 근들의 그본적 윤리 관계를 정의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버틀러는 유대인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늘 비유대인과의 관계를 전제한다고 생각했다. 유대인은 특정 지역에 정착해 있는 한 민족이 아니라, 여러 곳에 흩어지고 떠돌아다니며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 속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받으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해당 책의 역자는 번역어는 “이타성(alterity)”이라는 단어에 원어를 병기했기 때문에 꼼꼼하게 책을 검토하는 독자라면 문장의 뜻을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타성’이라는 단어의 경우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단어가 있기 때문에 무심결에 읽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책의 내용을 오독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역자가 어떤 연유로 alterity를 이타성이라고 번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철학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타자 또는 타자성으로 번역어를 선택하는 편이 관련 분야의 독서 경험이 있는 독자에게나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나 책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좋은 번역서에도 사소한 오역은 있을 수 있다. 완벽한 독서가 없는 것처럼 완벽한 번역도 가능하지 않은 영역처럼 보인다. 투자하는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 또한 오역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인 듯하다. 하지만 오역이 발생하는 유형을 고민하다 보면 평소 독해를 하거나 번역을 할 때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번외편 – 오역은 왜 발생하는가‘는 오역의 발생 원인을 분류하기 위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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