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시작하기 전에 ]
10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성화되지 않았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는 다운로드를 해야 했고 빨라도 30분 이상의 시간이 걸려서 다운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운로드한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를 주말에 몇 편씩이나 몰아서 시청하기도 했다.
특히 추석 때가 되면 드라마를 한 시즌을 모두 몰아서 보는데 추석 3일 연휴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는 마법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런 몰아보기를 했던 이유는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 편을 안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편만 더 봐야지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섯 편 여섯 편을 몰아서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몇 편의 드라마를 몰아서 시청하다 보면 열 시간이 후딱 가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밤을 새우면서까지 시청하면서 드라마에 중독된 것처럼 보는 일도 있었다.
이런 몰아서 시청하는 현상을 최근에는 빈지왓칭이라는 단어로 이름 짓고 세계적인 트렌드 중에 하나로 인정했다고 하는데 이미 십 년 전부터 몰아보기를 했던 사람으로서 나도 한 가지 정보는 인싸의 세계에서 살아가구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는 항상 1시간이 끝날 즈음에 다음 편이 너무너무 궁금해지게 만들기 때문에 안 볼 수가 없게끔 한다. 한 주를 기다려야 다음 편이 나오는 TV 방송과 달리 이미 모든 시리즈가 내 손안에 있는 상태에서 보지 않는 선택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몰아보기 빈지왓칭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인 흐름이 나만의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왜 이런 현상이 세계적인 트렌드가 될 수 있었는지 정리해보고 싶었다. 그러면 빈지왓칭 몰아보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Ⅰ. 몰아보기, 빈지왓칭이란?
먼저 빈지왓칭이란 단어의 뜻을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빈지왓칭 (빈지 워칭 Binge watcing)은 주말이나 방학, 휴가를 이용해 단기간에 TV 프로그램 등 콘텐츠를 몰아서 보는 새로운 시청형태를 뜻하는 신조어이다.
빈지 와칭의 빈지는 폭음 또는 폭식을 뜻하는 영어단어이고 와칭은 본다는 뜻의 영어 단어이다. 이 두 개의 단어가 결합해서 과하게 본다는 뜻으로의 새로운 단어가 형성된 것이다. 한국말로 하면 몰아보기가 된다. 참고로 몰아보기라는 단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빈지 워칭을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선정한 표준어라는 것을 알아두면 좋겠다.
빈지 와칭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개념으로서 확장되게 된 것은 넷플릭스의 영향이 컸다. 2013년 넷플릭스가 처음 자체 제작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첫 시즌 13편이 일시에 선보이면서 빈지 워칭의 개념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비즈니스 모델인 구독 경제가 이런 빈지워칭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넷플릭스는 한 달에 정액 사용료만 내면 무제한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한 편의 시리즈가 올라왔을 때에 몰아서 보게 되더라도 특별한 별도의 과금이 발생되지 않기 때문에 넷플릭스 가입자들은 이런 몰아보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Ⅱ. 구독 경제가 가져다준 빈지 와칭
빈지와칭은 몰아보기라는 영어 단어이다. 그런 빈지 와칭 현상은 구독 경제의 등장으로 확산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구독 경제가 가진 특징 때문이다.
넷플릭스처럼 일정액의 월 구독료를 내고 일정 기간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받아 사용하는 구독 경제 형태의 소비가 증가하게 되면서 소비자들의 콘텐츠 소비 방식에도 변화가 찾아온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소비 방식이 변화게 되는 것은 기업들이 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한 회에 따라서 과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월정액을 내고 구독하면 소비자들이 더 저렴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앞세워서 구독으로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소비자가 이제는 소유와 공유가 아닌 구독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요금 면에서도 단일 콘텐츠를 그때마다 결제해 시청할 때보다 더 경제적이기 때문에 주말이나 휴가에 여러 편의 에피소드를 한 번에 몰아보는 것이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빈지 와칭이라는 단어는 비디오 콘텐츠에서만 사용이 되고 있는데 비슷한 것으로 따지면 전자책 업계에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밀리의 서재나 윌라의 오디오북도 이 개념이 접목될 수 있다.
한 달 혹은 일 년 동안 정액으로 결재를 하고 나면 몇 권의 책을 읽던 상관없이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경제적인 장점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더 많은 책을 쉽게 읽을 수도 있고 이 책을 선택하거나 저 책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부담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구독 경제가 가능해지는 것은 결국 한 번 구매로 인해서 소유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그때그때 사용한다는 개념의 경제가 우리 삶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공유 경제에서 나아가 구독 경제로 발전이 되면서 사람들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받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Ⅲ. 빈지 와칭의 문제점
지금까지 빈지 와칭의 개념과 이런 형태의 콘텐츠 소비가 가능해질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정리를 했다. 그런데 빈지 와칭이 우리의 궁금증을 일시적으로 모두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넷플릭스로 인해서 탄생된 단어이니 만큼 넷플릭스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를 해보자. 빈지 왓칭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사람들에게 엄청난 열풍을 불러일으킨 하우스 오브 카드라는 드라마는 매 시즌을 공개할 때마다 전 세계적인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그리고 시즌이 공개되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몰아보기를 시행하고 주말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넷플릭스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드라마 시즌을 보는 동안은 흥분과 즐거움 몰입감으로 인해서 기분이 매우 좋다.
그렇지만 시리즈가 끝난 뒤에 몰려오는 허탈감도 있다. 실제로 이를 연구한 사람이 있는데 한 번에 모든 시리즈를 다 몰아서 본 사람들은 마지막 편이 끝난 뒤 슬픔 혹은 괴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미국의 작가인 매튜 슈나이어는 뉴욕타임스에 실은 에세이에서 아지즈 안사리의 인기 코미디 시리즈 마스터 오브 넌(Master of None)이 끝나갈 때에 불안감과 조바심, 상실감을 느꼈다고 썼다. 이 뿐 만이 아니다. 미네아폴리스 스타 트리뷴지에도 미국인의 대다수가 빈지 워칭 후 우울증과 공허함을 느꼈다고 한다는 인터뷰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빈지 와칭이 단지 TV를 너무 오래 보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혹은 넷플릭스를 많이 봐서 생기는 문제일 것일까? 아니면 집안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일까? 그 문제를 단순하지가 않았다.
안타깝게도 빈지 와칭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충분한 실험적 결과가 있지 않다. 새로운 사회적인 현상이기도 하고 역사도 오래되지 않았고 측정할 만한 데이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유의미한 연구 결과가 하나 있다고 한다.
톨레도 대학의 한 연구진이 이 문제를 공중 보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첫 연구를 수행했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미국인은 하루에 2시간 49분 동안 TV를 본다. 이는 하루에 사용하는 여가시간의 절반이 넘는 양이다. 그런데 빈지 워칭으로 인해서 이 평균 시청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결국 24시간은 한정적이고 시청에 시간을 쏟는 만큼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부족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과도한 TV 시청 및 장기적인 TV 시청으로 인해서 비만의 위험과 함께 당뇨와 같은 질병도 가져올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문제도 발생할 수 있는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굳이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 과학적인 측정 결과나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TV를 하루에 10시간 이상 몰아본다면 분명 10시간 정도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생각 없이 TV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해가 떠오르는 것과 떨어지는 것을 소파에서 바라봐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뭔가 비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 수 있다. 외부의 세계는 차분하고 고요한데 나는 10시간 동안 전쟁터, 이루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의 세계에서 살다가 온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에 감정이 지배당하고 나면 일상에서의 삶이 재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여기에 주말 동안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시 회사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결국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적당한 즐거움에서 끊어낼 수 있어야 삶에 윤활유가 되어주고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있지 말자.
[ 글을 마치며 ]
넷플릭스의 영향일지 인터넷 방송의 영향일지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정해진 시간에 꼭 봐야 하는 것들이 없어졌다. TV 본방 사수도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있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TV 방송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하는 것이 좋지 어떤 특정한 시간에 얽매이는 것이 즐겁지 않은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만큼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에 예전과는 다른 24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일을 하느라고 다른 한 가지를 포기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이것이 우리 삶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만을 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기다림의 미학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한 주 동안의 기다림이 있은 다음에 무엇인가를 보거나 다음 편을 기다리는 동안 지난 편의 여운도 즐기는 것이 없어져버린 듯하다. 무엇이든지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빈지 와칭이라는 단어의 빈지가 폭음이나 폭식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폭음을 하거나 폭식을 하게 되면 후회를 하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때가 있다. 무엇인가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너무 오랜 시간을 TV 시청에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다림의 미학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