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상으로는 금리가 낮으면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는 법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초저금리임에도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성장이 둔화되고 저물가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뉴 노멀이라고 부르고 새로운 경제적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이 단어는 저성장 저소득 저 수익률 고위험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투자기준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투자를 선뜻 결정하지도 못하고 사내 유보금만 쌓여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이제는 거의 그 끝에 도달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금리를 가장 먼저 탈출하기 시작했으며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는 정부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금리와 투자의 활성화가 일어나기 전에 인플레이션이 먼저 시작되고 있고 이는 고물가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예측을 좀 더 견고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상황을 좀 더 면밀히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화폐 경제에서 돈의 흐름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Ⅰ. 세계 금리는 왜 계속 내려갈까?
1980년 이후 계속 낮아지는 금리
장기채권 수익률이 단기채권보다 낮아질 때, 즉 장단기 금리 차가 역전되었을 때 뒤이어 경기가 침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시중금리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면서 변동성을 보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1980년을 최고점으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달러를 금에 고정시킨 브레턴우즈 체제
1914년 1차 대전을 전후해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세계 최강이 되면서 세계의 패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왔다.
곧 세계의 기축통화가 파운드에서 달러로 옮겨 온 것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중인 1944년 브레턴 우즈 회의에서 영국 대표인 케인즈의 세계화폐 사용 제안을 힘으로 일축시키고 자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실시키로 했다.
달러의 구조적 한계, 트리핀 딜레마
무릇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재정 적자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미국은 재정 적자가 일어나야만 달러가 발행되는 구조를 가졌다. 곧 미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연준에 줘야 정부는 연준으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달러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가 되어야 달러가 해외로 공급된다.
1950년대 수년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자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또 미국이 경상수지 흑자로 돌아서면 누가 국제 유동성을 공급할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됐다.
1960년에 이미 방만하게 공급된 달러는 외환시장에서 평가절하 압력에 시달렸다. 그러자 미국 경제학자이자 예일대 교수 로버트 트리핀은 미국의 방만한 재정운용정책이 지속될 경우 금 태환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심각해진 1960년 트리핀은 미 의회에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구조적 모순을 설명했다.
미국이 경상적자를 허용하지 않아 국제 유동성 공급이 중단되면 세계 경제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적자상태가 지속돼 달러화가 과잉 공급되면 달러 가치가 떨어져 준비자산으로서의 신뢰도를 잃고 고정 환율 제도도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루 달러화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태생적 모순을 가리켜 트리핀 딜레마라고 한다.
세계 총생산 증가 대비 서너 배 빠른 금융 자산 팽창 속도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를 파기한 닉슨 쇼크 이후 금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달러는 근원 인플레이션 한도 내에서 무제한 발행되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달러의 발행량이 늘어나자 경쟁국 통화들에 비해 그 가치가 절하되어 미국 상품 수출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자 경쟁국들도 달러의 평가절하를 견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화폐 발행량을 늘려나갔다. 그 결과 금본위제 아래에서는 상품과 서비스의 유통에 비해 화폐의 유통량이 적은 것이 문제였는데 이제는 너무 많은 게 문제가 되었다.
세계 총생산 증가율이 연 3~4% 임에도 금융자산 증가속도는 그 3~5배에 달하는 15% 내외로 늘어났다. 1970년에는 세계 총생산 대비 세계 금융자산의 비중이 50%에 불과했는데 1980년에는 109%로 늘어났다.
불과 10년 사이에 통화량을 토대로 하는 세계의 금융자산이 두배나 증가한 것이다.
자본 집적도 증가로 시중 금리는 계속 내려가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었다. 경제를 시장에 맡기자는 신자유주의 이후 소득불평등이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인들은 그것을 개인의 능력 탓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돈이 돈을 불리는 금융자본주의의 속성이었다.
곧 땀 흘려 일해야 버는 근로소득(세계 총생산) 대비 돈이 돈을 불려주는 불로소득(금융자산소득)이 서너 배 더 빨리 성장한 것이다.
세계 총생산액 대비 세계 금융자산의 비중 곧 자본 집적도가 1980년에 109%였던 것이 1990년에 263%로 늘어났다.
실물 경제에 비해 금융 자산의 증가속도가 날이 갈수록 더 가팔라진 것이다.
40년 장기금리 하락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금융자산이 이렇게 많이 늘어난 것은 화폐의 분원적 기능인 거래적 동기에 의한 화폐 수요 증가보다는 투기적 수요가 많이 증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일 평균 외환 거래액이 2004년 3조 달러가 넘어섰다.
이 가운데 상품과 서비스의 무역거래와 장기투자에 필요한 외환은 하루 300억 달러로 1%에 불과했다.
저금리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각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하여 제로 금리까지 내렸다.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게 되자 선진국들은 시중 국채를 사들여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을 대폭 늘려 2013년 일일 평균 외환 거래액은 5조 3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시중에 유동성이 늘어나면 금리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제 시중금리는 제로금리로 낮아졌다.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도 출현했다.
이러한 유동성 살포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지만 버블을 일으켜 다음 위기를 예고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부의 선의에 의한 통화정책, 곧 경기를 살리기 위한 통화팽창정책 또는 과열을 식히기 위한 긴축정책들이 때로는 시차를 두고 통화교란으로 작용해 과도한 호황이나 공황을 불러온다.
또 한편으로는 금융 세력들이 이를 인위적으로 조장하고 악용해 기업들을 헐값에 인수하고 서민들의 현금자산을 거덜내기도 한다.
Ⅱ.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
공급과잉과 소비부진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하는데 비해 소비는 산술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일부 선진국에서는 고령화와 인구 둔화로 소비가 정체 내지 감소되고 있다.
게다가 소득불평등과 부의 편중으로 인한 사회 전체의 소비부진 현상은 세계 경제를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과잉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자본도 엄청난 공급과잉 상태다. 미국을 비롯한 EU 일본 중국 등은 수요 부족에 허덕이는 경제회복을 위해 엄청난 유동성을 방출하면서 정부부채는 물론이고 기업부채와 개인부채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제로 금리로 향하는 저금리 수준에서는 이자지급이 크게 부담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돌발변수로 인해 금리가 오르게 되면 이자 지급이 부담될 수밖에 없고 급기야는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
소득불평등보다 더 심각한 부의 편중
부의 편중 문제는 소득불평등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미국이 가진 부의 대략 40%를 상위 1%가 갖고 있다. 미국 내 금융자산의 절반가량 역시 그들 소유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들의 부의 증가속도가 가파르게 우상향 하면서 부의 독점화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차상위 9%도 현재는 그 정도의 부를 소유하고 있다. 곧 상위 10%가 미국 부의 80% 가까이를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 미국 국민 90%의 자산은 점점 비중이 줄어들면서 현재 20% 초반대에 간신히 턱걸이하고 있는데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
양적완화 정책의 문제점
양적완화 정책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양적완화로 인해 사회적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경기가 급속도로 살아날 경우, 유동성 쓰나미 현상을 초래해 대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금리인상으로 제어하는 과정에서 기업부채의 부도 가능성과 개발도상국들의 외환시장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양적완화로 인한 유동성 장세는 결과적으로 투기자본을 키워준다. 그들은 거의 제로 금리로 돈을 융통하여 헤지펀드를 활용하거나 부동산 투자 등으로 재산을 증식시킨다.
통화승수 감소는 곧 통화 유통속도의 저하
초저금리와 양적 완화로 인한 유동성 증대는 담보 여력이 있는 상위 10% 소유의 자산 가격은 대폭 올렸지만, 가계 부채에 시달리는 나머지 90% 국민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어 사회 전체의 소비 증가로 연결되지 않아 소비자 물가는 오르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소득과 부가 점점 줄어드는 중산층과 서민들의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현재의 소비를 억제함으로써 돈이 도는 속도 곧 통화승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소비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본원통화 대비 광의의 통화량(M2)이 통화승수인데, 미국이 2008년 9에서 2018년 4로 줄어들었고 일본은 12에서 3으로 낮아졌으며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27에서 16으로 감소했다.
Ⅲ. 현대 통화 이론은 경제 위기의 대안이 될까?
현대 통화 이론의 출현 (MMT)
정부가 재정 적자 규모에 얽매이지 말고 필요한 만큼 통화를 발행해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게 현대 통화 이론의 핵심이다.
현대 통화 이론은 정부 재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기축통화 국가는 과도한 인플레이션만 없다면 경기부양을 위해 화폐를 마음껏 발행해도 된다는 이론이다.
기존 주류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정부지출이 세수를 뛰어넘어선 안 된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Ⅳ. 인플레이션이 몰려오고 있다.
동시에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세 가지 물가지수
드디어 올게 오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물결이다. 미국의 2020년 7월 생산자물가 지수가 전월대비 0.6%가 올랐다. 18개월 만의 최대 상승이다.
연율로 치면 7.2%다. 수입물가 지수 역시 전월대비 0.7% 증가했다. 이것도 연율로 치면 8.4%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다.
중국 수입물품에 대한 고관세가 원인이다. 여기에 7월 소비자물가지수도 2개월 연속 전월 대비 0.6% 올랐다. 전문가들의 예측치 0.3%를 훌쩍 뛰어넘었다.
1991년 이후 최대 상승이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던 처지에서 인플레이션을 뛰어넘어 단숨에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치달을 모양새다.
연준의 간접 통화정책
연준도 이를 감지한 듯 그간 고수했던 목표 2% 인플레이션 방어의 용인 가능성을 내비쳤다. 물가인상 방어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 용인은 달러 가치 하락을 용인하다는 말과 같다.
연준은 간접적으로 유동성을 줄이고 있다. 연준이 긴축으로 돌아섰다면, 인플레이션 진행과 달러 하락세가 멈춰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다. 연준은 지금 간접적인 방법으로 유동성을 늘리고 있다.
대형 은행들로 하여금 시중에 돈을 풀게 하는 방법이다. 연준에는 은행들의 지불준비금이 보관되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법정 지불 준비금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연준이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이를 초과지급준비 금리라고 한다. 이를 기준금리 범위 내에서 운용하고 있다. 지금 연준은 현재 초과지급준비 금리를 0.1% 낮에 운용하고 있다.
은행들이 그 이상의 수익을 원한다면 돈을 연준에 쌓아두지 말고 밖으로 들고나가 수익을 거두라는 이야기다.
더구나 연준은 대형은행들의 위험 감수를 억제하는 보충적 레버리지 비율 (SLR) 곧 자본요건을 2021년 3월 31일까지 1년간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연준은 이를 완화해주면서 한마디 보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돈으로 자사주 매입 등 엉뚱한 곳에 쓰지 말라는 경고였다. 즉 초과비 줄 준비금으로 국채를 사라는 이야기다.
세계 중앙은행들이 미 국채 대신 금을 외환 보유고에 담아
연준이 이렇게 국채시장에 신경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의 양이 너무 많다.
미국 정부가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재정부양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간 미국 국채의 단골손님이었던 외국 중앙은행들은 2020년 들어 미국 국채를 사지 않고 있다.
레이 달리오의 추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이런 상황을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레이 달리오는 지금 단계에서 현금은 쓰레기라고 단언하며 물가연동채와 금 그리고 원자재에 나누어 분산 투자할 것을 권한다.
[ 글을 마치며 ]
현금은 정말 쓰레기일까? 일견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맞는 말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현금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은행에 넣어두게 되면 너무 낮은 예금 금리로 인해서 실질적으로는 자산의 감소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는 누구나 다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때문에 현금이 쓰레기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금을 쌓아두지 않고 소비에 나서고자 해도 예전보다 더 많은 소비를 불필요하게 할 이유는 또 없다.
미래에 벌어질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현금을 사용하지 못하고 가지고 있게 되면서 현금의 자산 감소를 경험하게 된다.
이 경우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 때문에 현금이 쓰레기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기도 하다.
무엇인가에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현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종잣돈을 기반으로 투자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 경우에 현금은 다양한 선택지를 가능하게 해 준다.
어떤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현금이 필요한 만큼 현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과정이 수반된다면 현금이 꼭 쓰레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요약하면 경기 부양을 위한 무제한 양적완화는 금융자산의 상승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이미 금융 자산의 가치가 상승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 일이 아니라 40년이나 먼저 발생되어 온 일이라는 것이다.
세계 총생산 즉, 근로소득의 증가분보다는 화폐의 유동성 증가로 인해서 발생된 금융 자산의 증식이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앞으로도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금융 자산의 증식은 근로 소득의 증식을 압도 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에 우리는 근로소득을 유지함과 동시에 적절한 금융자산의 운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융 자산 중에서는 인위적인 증식이 불가능한 대상 중에서 미래에 가치가 상승될 것을 선별하는 능력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