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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Mar 21. 2022

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크다.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서른이 되었을 때에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뭔가 더 많은 것을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서른은 지나버렸고 마흔도 초입을 조금 지나 조금 더 지나면 중반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복기하면서 아쉬움을 곱씹기보다는 앞으로의 시간은 어떻게 하면 더 잘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 번 읽어보고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그럼 마흔 이후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한 번 같이 보시죠. 


 Ⅰ. 혼자 걷는다는 것은 온전한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내 몸에 하찮은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백사장이 아니더라도 모래 한 톨은 아무런 주의도 관심도 끌지 못합니다. 


사실 모래는 적어도 한 움큼 정도가 최소 단위쯤 되는 양 쓰이지, 한 톨이나 한 알이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물질이지요. 


그러니 모래 알갱이 몇 개쯤은 무시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신발 속에 들어가면 그게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여간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게 아니지요.

 

처음에는 별거 아니다 싶어 무시하지만 한참 걷다 보면 신발 속에 돌아다니며 둔한 발을 아주 민감하게 만듭니다. 


결국 신발을 탈탈 털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관심이나 주의를 끌지 못하던 모래가 그렇게 커 보일 수 없지요. 


그게 굳이 사물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우리 몸속 여러 장기와 기관들이야 눈에 보이지 않으니 딱히 어디 고장이라도 나지 않는 한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지요. 


겉으로 드러난 몸도 가시 따위에 찔려 고통을 느끼기 전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니 온통 얼굴에만 신경을 쏟겠지요. 


우리 몸 가운데 발처럼 가장 고된 일을 하면서도 정작 업신여김을 받는 것도 없는 듯합니다. 


하루 종일 무거운 제 몸 떠받치고 안전하게 옮겨주는 고역을 맡지만 별다른 애정을 받지 못합니다. 


때로는 냄새난다며 구박을 당하기도 하지요. 그래도 군소리 없이 묵묵히 제 역할에 충실한 발이 얼마나 고마운지 잘 느끼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Ⅱ. 가장 후회하는 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버킷리스트라는 영화는 바로 지그메 눈을 돌리라고 도닥입니다. 


어쩌면 인생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때로는 데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반성과는 어긋나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내의 결은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정말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을지도 모르니까요.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고 싶다는 버킷 리스트가 아니라 지금의 내 삶에서의 버킷 리스트를 가지고는 있는지 되돌아봐야겠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영화 한 편을 통해서도 삶의 생동감과 의무를 함께 느끼는 걸 보면 저는 아직도 갈 갈이 먼 모양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 조금은 더 지혜로워질까요. 


그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 바람을 현실로 만드는 나머지 삶이라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기쁘고 고마운 일이겠습니다. 


 Ⅲ. 화이부동, 함께 어울리되, 자신을 잃지 마라. 


함께 어울려 산다는 건 쉽지 않지만 그만큼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저 나만 생각하고 나의 이익에만 몰두하여 다른 이들에게 상처 주고 소금까지 뿌려대는 일을 너무 많이 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나무만도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무들은 같은 땅에 함께 자라면서 서로에게 자리를 내주고 제 몫만큼만 차지하고 삽니다. 


옆 나무 쪽으로는 자신의 가지와 잎을 내지 않습니다. 나뭇잎도 마주나기가 어긋나기 등을 통해 햇살을 나누어 가집니다. 


위에 새로 나는 잎사귀가 아래에 먼저 난 잎의 햇빛을 가리지 않기 위한 자연의 오묘한 이치지요. 


햇살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광합성을 함께함으로써 서로를 배려하는 공존의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렇게 함께하는 삶을 실천하기에 숲을 이루는 겁니다. 


우리는 적어도 나무보다 못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다. 오만과 편견, 독선과 아집, 탐욕과 갈등을 내려놓고 함께 격려하고 도닥이며 사랑과 자비를 무한 무량으로 나누면서 살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그래서 먼저 손 모아 엎드려 인사합니다. 


 Ⅳ. 절망의 바닥을 친 사람이 평범한 일상에 더 감사한다. 


바닥을 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바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경쟁을 합니다. 


게다가 한번 낙오되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게 요즘의 세태인 까닭에 한 걸음이라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내달립니다. 


때로는 나의 능력보다 상대의 실수와 실패를 기다리거나 그것을 의도하여 상대를 떨어뜨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바닥을 쳐보지 않은 사람은 늘 그것이 두렵기만 합니다. 물론 일부러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이도 없습니다만. 


젊어 고생은 돈 주고도 사는 것이라고 말하면 요즘은 그걸 비틀어서 젊어 고생은 평생 고생으로 이어진다고 조롱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굴곡도 좌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삶의 깊은 통찰이나 인간에 대한 너그러운 애정이 생기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의 한 정치인은 최고의 가문에서 태어나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며 엄청난 재산을 가진 데다가 아이들마저 최고로 길러낸, 그야말로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유권자들이 큰 신뢰나 지지를 보내지 않는 건 오히려 그런 완벽함 때문이라지요. 


자신의 정책에 대해 상대방이 비판하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럼 누가 옳은지 1만 달러 내기하자고 했답니다. 


대단한 재산가인 그에게 1만 달러는 그야말로 껌값 일지 모르지만 보통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큰돈이지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어려운 사람들 처지를 이해할 것이며 어찌 자신들을 대변하고 대표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 때문에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거나 지지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고생도 좌절도 자산이라고 말하면 무능력한 사람이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하는 변명이라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겪어본 사람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것인지를 통감합니다. 


그러나 그게 제대로 값을 발휘하려면 무절제한 욕망, 집착, 과시 등을 고스란히 털어내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나이 들어가면서 혹여 실패할까, 바닥을 칠까 더 두려워지는 건 사실입니다. 젊을 때처럼 금세 회복할 힘도 없어니와 잃을 자산의 부피가 훨씬 크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세상을 두루 살았으니 대처할 지혜도 많지 않을까요. 


물론 용기도 줄었고 체력도 떨어지니 전투력이 쇠잔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욕망의 굴레 벗어버리고 작은 회복에 감사할 줄 안다면, 그것만으로도 안분할 수 있다면 굳이 못할 것도 없습니다. 


바닥을 쳤을 때 절망하기보다는 오히려 다시 올라가 소소한 것들의 가치를 일깨우고 그것들을 여러 사람과 나누는 너그러움을 품어보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나이 들어가면서 수면에서 떠 있으려고 바동대기보다는 바닥을 툭 칠 수 있는 지혜도 갖추면 뭐 그리 무섭고 두려운 것만은 아니겠다 싶습니다. 


  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청바지를 입을 때마다 청각장애인학교의 종이 생각납니다. 


청바지 - 청각장애인학교 - 종은 아무리 따져봐도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요.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청바지를 처음 고안한 리바이 슈트라우스는 노년에 청각장애인 학교에 큰돈을 기부했습니다. 


그저 생색만 내는 정도가 아니라 거액의 돈이었지요. 사실 리바이는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평생을 홀로 살았기 때문에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재산의 일부를 조카들에게 물려주었지만 거의 전 재산을 고아원과 양로원, 그리고 자선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런데 청각장애인학교에 거액을 희사하면서 따로 종을 달아주었다는 겁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조카인 제이콥이 물었습니다. 


삼촌, 얘들은 종소리를 듣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왜 하필 종을 다시려는 거예요? 


제이콥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렇게 물었을 겁니다. 그런데 리바이의 대답은 진지했습니다. 


그래도 애들 중 몇몇은 소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진동으로 말이다. 


과문한 저는 이 사람처럼 따뜻하고 섬세한 기부를 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 아이들이 혹시라도 그 울림을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아이들이 종의 존재와 그 가치를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배려는 평소에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었다면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리바이는 뉴욕 빈민가에 우유공장을 지어주었고, 미국의 36개 도시에 젖먹이 아이들을 위해 살균시설을 세워주었습니다. 


그런 그의 뜻은 그가 죽은 후에도 조카들과 회사에 의해 미국에 최초로 아동 결핵 요양소를 설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1940년대에 공장 내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후에는 흑인과 백인을 동등하게 취직시킨 것도 그런 정신의 계승이었을 것입니다. 


흔히 청바지는 젊은이들의 저항의 아이콘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리바이 슈트라우스가 골드러시 때 고안해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것쯤은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통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계 독일인인 그가 열여덞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있는 이복형의 가게에서 일하다가 캘리포니아로 가서 포목 도매상을 했고 쫄딱 망할 위기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청바지였다는 사실은 잘 모릅니다. 


그것 또한 광부들에 대한 평소의 관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 청바지는 단순한 저항의 상징이 아니라 관심과 배려의 산물이었다는 것쯤은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 글을 마치며 ]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대단한 도전을 했을까를 되돌아보면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는 듯합니다. 


어느 정도 확실한 것에 대한 도전을 했고 안정적인 상태를 위해서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것이 지난날의 나의 과거였던 듯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안정감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지금보다는 좀 더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마흔이 넘어서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이후에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것이 줄어들고 익숙한 것에만 치중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스스로 선택한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좀 더 솔직해지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해보는 것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더 중요한 일일 듯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큰 행복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고 도서 : 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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