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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Apr 13. 2022

투기의 세계사

42가지 사건으로 보는 투기의 세계사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원유, 금, 은, 구리, 밀, 옥수수, 설탕을 투자 종목이자 새로운 투자처로 소개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때부터 원자재 상품 시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S&P 골드만 삭스 상품지수, 다우존스 상품지수와 같이 투자 가능한 최초의 상품지수가 생겨났지만 2000년대 들어 모든 주요 투자 은행은 자체 상품지수와 지수 기준을 개발했다. 


이런 상품지수 개발로 인해 기관 투자자와 부유한 개인에게 매력적이고 새로운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암호화폐 시장이라는 대중에게 투자 기회가 열린 이색적인 자산의 등장까지 나왔다. 


투자의 세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발전해왔는데 그 안에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속성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당시 투자자들의 선택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순간만큼은 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럼 어떤 일들이 투기의 역사로 존재했는지 알아보자. 


 Ⅰ.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1848년 이전만 하더라도 미국 캘리포니아는 황량하고 외진 곳이었다. 주로 에스파냐인의 후손인 멕시코 사람들과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살았다. 


소수의 유럽인 정착민 중에는 스위스 출신의 독일 망명자 존 오거스터스 서터가 있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스위스에 남겨둔 채 미국 서부로 이주했다. 


그는 새크라멘토 밸리에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곳 정착지를 누에바 헬베티카라고 불렀다. 


1848년 1월 24일 아침, 그곳에서 일하던 목수 제임스 윌슨 마셜은 강바닥에서 금 덩어리를 발견했다. 셔터와 마셜은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차츰차츰 더 많은 땅을 사드렸다. 하지만 서터의 직원들이 금으로 물건 값을 치르면서 그 소식은 오랫동안 숨길 수 없었다. 


사태는 곧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채굴 장비를 팔던 새뮤얼 브래넌은 금 덩어리를 캐내 병에 가득 채운 채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그곳 거리에서 금이 담긴 병을 흔들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금이다! 금, 아메리칸 강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849년 경제 호황기에는 거의 10만 명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캘리포니아를 찾았다. 많은 중국인이 모여들었으며 그들은 캘리포니아를 금산이라고 불렀다. 


채굴 장비의 가격도 열 배로 뛰었다. 광부들은 여전히 일확천금의 꿈에 부풀어 강바닥에서 사금을 채취했다.


사금 채취에 성공만 하면 대서양 연안의 노동자 일당의 20배를 벌 수 있었다. 


대부분 채금지에서 여섯 달 동안 열심히 일하면 일반 직장에서 6년 동안 일한 대가와 맞먹었다. 


하지만 많은 광부가 사금 채취로 벌어들인 돈을 지키지 못했다. 사금을 채취하는 지역이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상인들은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물건을 팔았고, 술집 주인들은 술과 도박판을 벌여 큰 수익을 올렸다. 


사실상 골드러시의 실질적인 승자는 사업가와 상인이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사업가 리바이 스트라우스일 것이다. 


독일 출신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상점을 차린 그는 광부들에게 튼튼한 바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탄탄한 텐트 천으로 쉽게 찢어지지 않는 바지를 만들어 큰 수익을 거뒀다. 


지금 흔히 입는 청바지는 이렇게 탄생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와 같은 사태는 25년 동안 다른 여러 곳에서 반복되었다. 1851년 오스트레일리아 골드러시 이후 10년 사이에 인구가 열 배로 증가했다. 


셔터가 처음 정착해 요새를 지은 지역은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새크라멘토로 발전했다. 19세기에 금을 찾아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든 사람들을 뜻하는 포티나이너스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축구팀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Ⅱ. 1870년 아메리칸드림을 대표하는 부호, 록펠러의 석유 제국


현대의 석유 산업은 램프를 밝히던 고래기름 대신 석탄이나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 


1859년 8월 27일 에드윈 드레이크 대령은 펜실베이니아 타이터스빌 근처에서 값비싼 원유가 매장된 유정을 발견했다. 


2년 후 남북전쟁을 계기로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오일 붐이 일어났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오른 것이다. 곧이어 펜실베이니아 북서쪽 농장 곳곳에 시추 장치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유정 근처는 물론이고 펜실베이니아의 피츠버그, 오하이오의 클리블랜드 등 주요 철도가 교차하는 도시들을 따라 수백 개의 소규모 정유 공장이 세워졌다. 


1863년의 스물네 살의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동생 윌리엄과 함께 클리블랜드에 작은 정유소를 설립했다. 지독히도 가난한 독일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존은 접시닦이 일을 하며 공부해 회계사가 되었다. 


록펠러의 회사는 시장 변동 속에서도 번창했다. 오일 붐으로 원유 생산이 급증했고 1861년 원유 가격은 배럴당 20달러에서 10센트로 하락했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끝나고 1년 후인 1866년에는 다시 1.50달러를 넘어섰다. 


1870년에는 회사를 재편해 스탠더드 오일 컴퍼니라고 명명했다. 1년 후에는 몇몇 정유소 소유자들과 연합해 철도 운영자들에게 운임을 할인받았다. 


대신 철도 운영자들은 이들은 제외한 다른 경쟁사들에게 운임을 올려 받았고 이로 인해 결국 1872년에 오일 전쟁이 일어났다. 


그해 말 록펠러는 미국 정유업체의 80퍼센트를 대표하는 미국 정유 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이후 스탠더드 오일은 계속 공격적으로 확장해 1873년에는 펜실베이니아주의 모든 정유업체를 인수하거나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스탠더드 오일은 이미 1882년에 미국 정유업의 90퍼센트 이상을 장악했다. 


록펠러는 사업을 다각화하여 제국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그의 공격적인 사업 전략 때문에 미국에서 반독점법이 생겨났고 1911년 미국 대법원은 스탠더드 오일의 해체를 명령했다. 


스탠더드 오일은 34개의 회사로 해체되었고 거기서 오늘날의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탄생했다. 오일의 다른 부문들은 청산되거나 다른 석유 회사에 흡수되었다. 


Ⅲ. 2006년 오렌지주스 가격을 흔들어놓은 폭풍의 시기


에디 머피와 댄 에이크로이드 주연의 1983년 작 블록버스터 영화 대역전은 농축 오렌지주스 거래를 둘러싸고 혼란에 쉽싸인 뉴욕 상업거래소의 모습을 재현하며 끝난다. 


뉴욕 상업거래소의 농축 오렌지주스는 기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미국 플로리다와 브라질 상파울루 주변 지역이 허리케인과 서리 또는 가뭄의 피해를 입으면 가격 변동이 심해지고 다른 농산품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거센 폭풍이 몰아치면 농장 전체가 파괴 될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몇 년간 수확량이 줄어들기도 한다. 


새로 심은 작물은 3, 4년 후부터 수확이 가능한데, 수확량이 최고 수준에 이르려면 8년 정도가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폭풍은 해충과 질병을 확산시키므로 결과적으로 단일 재배 농장의 수확량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04년과 2005년에 발생한 허리케인 찰리, 프랜시스, 진, 윌마는 플로리다의 오렌지 공급에 영향을 미쳤다. 

플로리다 시트러스 협회에 따르면 허리케인 윌마는 수확기의 과일 약 17퍼센트 또는 약 3,500만 상장에 달하는 손실을 초래했다. 


이 때문에 2004년 5월 0.55달러 미만이었던 뉴욕의 농축 오렌지주스 가격은 계속 올라 2년 6개월 만에 네 배로 뛰었다. 


이후 미국과 브라질에서 오렌지 수확량이 전년도보다 조금 회복되기 시작했고 가격은 정상화되었다. 


[ 글을 마치며 ]


투기의 한 복판에 있으면 그것이 투기인지 정상적인 투자활동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나아가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그런데 투기의 세계사를 보면서 몇 가지 인상적인 현상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생산성 향상과 관련된 투자 활동이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를 복기해보자. 튤립은 그 자체만으로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단지 튤립을 비싸게 사줄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튤립의 가치가 높게 형성될 수 있었다. 


물론 시장 형성 초기에는 튤립의 가치는 높게 형성될 수 있었다. 높은 경제적 소비력을 가진 자산가들이 튤립을 높은 가격에 구입해준다는 기대감 때문에 튤립은 비싼 값에 팔릴 수 있었다. 


그리고 튤립이 어떤 형태로 꽃을 피우는가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 투자 활동이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튤립을 구매해 주는 최종 자산가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튤립은 그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이 때문에 튤립 거품은 한순간에 꺼져버리게 되었고 많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튤립이 당시 사람들의 삶에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튤립이 없어도 사람들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튤립은 관상용 식물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런 생산성도 가지지 못한다. 


이 때문에 생산성 향상과 관련이 없는 재화에 과한 기대감을 가지고 투자를 하게 되는 것은 최종 소비자가 사라지게 될 경우, 시장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과 관련된 투자 활동,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면 투자 활동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아닌지 판단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는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계산해 봐야 한다. 


투자금 대비 10배의 수익, 100배의 수익은 현실적으로 일생일대의 한 번뿐일 기회일 수도 있고 평생 동안 오지 않을 기회일 수도 있다. 


나아가 이런 수익률이 단기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투자금 대비해서 10배의 수익이 일 년 혹은 몇 년 안에 단기간에 발생된다는 것을 잘못된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다양한 경제적인 요건이 부합되고 만나서 폭발적인 생산성의 증가로 인해서 가치가 상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기간의 폭발적인 상승 뒤에는 엄청난 굴곡도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투자의 세계가 위험하다고 생각이 든다. 자신이 생각한 만큼의 성과나 난 다음에 목표한 기대치를 달성했다고 해서 정리를 하고 투자금을 회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생각에 더 높은 기대치를 갖게 되고 그 기대치를 달성하는 순간에 더 높은 수익을 위해서 더 많은 투자를 집행하는 경우도 발생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안정적인 투자 행위가 불안정하거나 위험한 단계로 발전될 수 있다. 


초기에 설정한 투자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은 매우 축하할 만한 일이고 기뻐할 만한 일이다. 


목표를 달성한 뒤에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자축보다는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에 대한 심사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을 한 단계 더 나아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시대에 금을 캐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었지만 실제적으로 돈을 번 사람들은 그들에게 채굴 장비와 식사, 주류를 공급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또 그들이 작업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청바지라는 제품을 발명해 판매한 리바이스가 사업의 토대를 마련한 기간이었다고 한다. 


물론 금을 채굴해서 많은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금을 채취하기 위한 제반 산업을 제공한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안정적으로 획득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쏠리고 이미 상승이 시작한 뒤에는 후에 진입하는 사람들은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경쟁이 치열해졌고 그 안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이전보다 적은 수준의 성과나 보상만이 돌아올 뿐이다. 


만약 누군가에게서 매우 좋은 투자 기회라는 소문을 들었을 때에는 어찌 보면 가장 늦은 순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별히 관심도 없었던 분야에 기회가 왔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단서가 존재한다면 지금 같은 세상에서 그 소식은 나만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하지만 그 기회가 앞으로도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그로 인해서 발생될 수 있는 추가적인 기회는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투자를 결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경제의 순환 주기에 대해서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투자가 성공적인 경우는 상승 후에 정체기 혹은 후퇴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투자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해도 다음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지속해서 공부해야 한다. 


금융 자본주의 시대에 투자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참고 도서 : 투기의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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