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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Sep 28. 2023

이건희 반도체 전쟁

반도체가 세계를 지배한다.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지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성찰을 얻기 위해서다. 


삼성은 2022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방문한 뒤 사흘 만에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 준비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4년간 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IT에 45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선제적 투자와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반도체 초강대국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가슴 뛰게 하는 원대한 사업 구상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매체들이 장밋빛 계획에 박수를 치며 그 내용을 해설하는 데 보도의 초점을 맞췄지만 삼성이 발표한 원문을 보면 미래에 대한 우려와 긴장감이 곳곳에 짙게 배어 있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미중 견제와 추격이 거세지고 있음.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는 경쟁사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 상황, 삼성의 행보는 간단치 않을 전망,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구조 변화, 경제 안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등등의 표현으로 고뇌와 위기의식이 강조되어 있다. 


앞으로 5년은 새로운 미래 질서가 재편되면서 한국 경제의 발전과 쇠락을 가르는 변곡점이 될 것이 예상된다고도 했다. 


그럼 어떤 점들을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Ⅰ. 문화인류학적 통찰, 반도체 신화를 만들다. 


코로나 감염증 확산으로 비대면이 일상화한 요즘, 정보기술과 제약 바이오 기술의 획기적 발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감염병과의 전쟁을 더 힘겹게 치르고 있을지 모른다. 


각종 정보기술 덕분에 먹을 것을 포함해 감염병이 초래한 일상의 어려움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빠른 백신의 개발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도 승기를 잡고 있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닥친 대재앙임에도 틀림없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그래왔듯 우리는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있다. 


여기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기술혁명이 도움이 됐다는 데 많은 사람이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기술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을 공유하고 싶다. 


그 정점에 반도체가 있다. 반도체가 없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없었다. 단지 산업의 쌀 정도가 아니라 머지않은 과거에 일어났던, 현재 일어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기술혁명의 원친이다.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의 모든 산업, 다시 말해 자율주행차, AI, AR, VR, 바이오 커머셜, 휴대전화, TV 등 쓰이지 않는 데가 없다.


내연기관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300여 개지만 전기 자동차에는 2,000여 개가 들어간다. 


스티브 블랭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21세기 반도체는 지난 세기의 석유와 같다. 생산을 통제할 수 있는 나라가 다른 나라의 경제 군사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가 외교이고 국방이고 안보인 시대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세계시장 점유율은 2021년 기준 70%를 넘어섰다. 


단군 이래 대한민국에서 세계시장을 이렇게 압도적으로 선도한 수출 품목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일까. 


막연하게 알고 있던 반도체 신화를 차근차근 풀어가려 한다. 


Ⅱ. 퍼스트 무버의 길을 가다. 


두 번째는 흔히 과학과 기술 이야기라고 하면 컴퓨터나 돈, 비즈니스 관점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기술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이 기술을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파고들다 보면 결국 사람으로 귀결된다. 


사람과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기술 발전을 이끈 동력과 결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무모하고 과감한 도전을 하며 경계를 부쉈던 혁신가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없다. 


대부분의 기술 관련 서적은 기술에 대한 복잡한 설명이나 설비투자 혹은 생산성 향상 및 비용 절감 등 제조업의 앵글을 활용한다. 


정보통신혁명은 제조업의 논리와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바가 더 크다. 


삼성은 한국 사회가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가야 한다고 앞서서 주창했으며 이를 실천으로 옮기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단지 돈 때문이 아니었다. 개발 기간이 얼마나 걸리고 예산은 얼마나 투입되며 손익분기점은 어느 수준인지 등의 문제보다 반도체가 만들 세상에 대한 비전, 가치 철학에 집중했다. 


Ⅲ. D램 대폭락 사태에도 공장 지었던 호암


삼성이 야침 차게 64K D램 양산을 시작한 1984년은 불행히도 D램 시장이 대폭락기로 접어든 초입이었다. 


그해 말부터 세계 반도체 업계에는 최악의 D램 대폭락 사태라는 쓰나미가 덮친다. 


연초만 해도 개당 3달러였던 64K가 75센트까지 추락했고 31달러씩 하던 256K도 3달러까지 폭락했다. 반토막도 아닌 10분의 1토막이 나자 업계 사람들은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는 급속한 성장이 낳은 공급과잉의 후과였다. 여기에는 일본의 초고속 성장이 한몫을 했다. 


메모리 반도체 인텔이 1971년 1K D램을 처음 개발해 시판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이 종주국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발 빠르게 국가 프로젝트로 키워 역량을 총동원하면서 맹추격했다. 


미국이 4K, 16K, 64K를 차례차례 내놓으면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일본은 256K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양산에 들어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과 일본은 본격적으로 총성 없는 반도체 전쟁에 돌입했다. 설비투자 경쟁이 이뤄지면서 64K, 256K 공급과잉이 시작되자 일본은 덤핑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이른바 미일 치킨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덤핑 경쟁의 피해자들은 미국 업체들이었다. 일본 업체들은 이미 개발비를 회수한 뒤라 손해 볼 게 없었다. 하지만 미국 업체들은 폭락 장세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페어차일드를 필두로 RCA, 시스네틱스가 무너졌고 GE, 인텔, 웨스팅하우스도 D램 사업에서 발을 뺐다. 


그 바람에 1986년 반도체 전체 생산량과 매출액에서 일본은 처음으로 미국을 추월한다. 


Ⅳ. 반전을 이룬 또 하나의 선택 - 웨이퍼를 키워라. 


웨이퍼는 반도체 하면 떠오르는 반짝반짝한 동그란 얇은 판이다. 반도체 회로를 그려 넣는 도화지라고 할 수 있다. 


모래에서 추출한 실리콘 입자는 용과로처럼 뜨거운 둥근 용해로에 담겨 결정체로 만들어지는데, 회전 봉을 중심으로 회전시키면서 녹여야 성질이 균일해진다. 


이렇게 해서 추출한 원뿔 모양의 실리콘 결정체를 잉곳이라고 한다. 잉곳을 동그란 형태의 소시지라고 생각할 때 이걸 얇게 썰어 만든 것이 웨이퍼다. 


웨이퍼 크기는 지름에 따라 6인치(150mm), 8인치 (200mm), 12인치 (300mm)로 나뉜다. 


웨이퍼의 어원은 Wafer는 얇은 조각을 뜻한다. 유럽에서는 얇고 바삭한 과자를 일컬었다. 우리가 웨하스라고 부르는 과자의 어원도 여기서 왔다. 


반도체 산업이 처음 시작됐을 때는 3인치였다. 앞서 소개한 대한민국 회사인 반도체가 바로 3인치 웨이퍼 제조 공장을 갖고 있었다. 이후 1980년대를 들어서며 6인치가 주류가 됐다. 


그러다 1990년대에 8인치, 지금은 12인치 시대를 만들고 있다.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가장 먼저 결정할 일이 웨이퍼의 크기다. 그게 결정돼야 공장 구조와 설비를 디자인할 수 있었다. 


웨이퍼는 농사로 비유하자면 논밭이라고 할 수 있다. 둥근 웨이퍼 위에 네모난 형태의 칩들을 잘라 만들기 때문에 웨이퍼가 커지면 여기서 나오는 칩 개수도 늘어난다. 


웨이퍼 크기를 늘리는 것이 생산성 면에서야 당연히 좋지만 기업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향후 시장 상황에 대한 불안과 퍼스트 무버로서 감당할 기술적 불확실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좋은 리더는 가장과 똑같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가장이 생각하는 제일 중요한 건 뭡니까? 우선 가족의 건강이고 그다음으로 제일 많은 투자를 하는 게 자식, 즉 미래다. 


가장이 자기 입고 먹고 노는 것에 투자하기보다 가족과 자식의 미래에 투자하듯 해야 한다. 


반도체가 계속 집적도가 높아지면 어디까지 가겠느냐고 생각해야 하고 그 결과물이 미래 재단이다. 


계속 기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 글을 마치며 ]


반도체는 정말 중요할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자. 


미중 갈등의 핵심은 반도체의 제조 경쟁력을 누가 가지게 될 것인가에 있다. 


반도체 가치 사슬에서 가장 큰 부가가치는 설계에 있었는데 최근에는 공정 경쟁력이 발달이 되면서 제조 경쟁력 또한 부가가치가 매우 큰 산업이 되었다. 


특히 설계는 적은 인력으로도 가능하지만 제조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 때문에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게 되고 주변에도 경제적인 여파가 미치게 된다.


최근 평택 반도체 공장이 생기게 되면서 주변에 많은 일자리가 늘어나게 되었다는 기사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외에도 화성과 용인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유입하고 있다. 


나아가 국가적으로도 양질의 일자리가 공학계열에 생긴다는 영향 때문에 공학 계열의 인재가 늘어나게 되었고 이는 다른 산업의 발전으로도 이어지게 되었다. 


대만의 경우는 이를 뛰어넘어 국가적인 안보차원에서도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TSMC를 둘러싸고 미국에 투자를 하게끔 유도하는 정책과 중국에 첨단반도체를 수출하지 못하거나 생산 공장을 추가로 짓지 못하게 하는 등의 갈등의 대립이 TSMC를 두고 벌어지고 있다. 


현재 반도체는 산업의 쌀을 넘어 무기화되는 과정에 이르게 되었다. 


첨단 반도체를 가지게 되면 기술적인 우위를 점할 수도 있게 되고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되고 새로운 부의 시작을 차지할 수도 있게 된다. 


앞으로 반도체는 점점 더 중요성이 단순히 산업을 넘어 국가적인 경제, 안보, 외교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은 미래의 반도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반도체는 집적도가 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는데 실제로는 기술의 발전이 법칙을 계속 이어지게끔 해준 경향이 크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선폭의 축소만을 통해서는 반도체의 발전이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게 되는 국면까지 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이제부터는 반도체의 공정이 다른 형태로 발전이 되게 될 것이다. 


실리콘 웨이퍼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2 나노 공정이 현실화가 되고 PCB 기판은 플라스틱에서 유리로 대체될 수도 있다. 


나아가 후면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기술이 생겨나 기존에 비해 전력을 더 적게 소모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지금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적은 공간에 데이터 센터가 생산이 되게 될 수도 있고 자율주행자동차는 더 적은 반도체 몇 개로 이동하게 될 수도 있다. 


꿈의 통신 기술의 발달이나 새로운 기기의 형태, 기존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디바이스의 출현이 나타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반도체는 설계적인 능력은 특허로서 보호받게 되지만 결국 제조 경쟁력이 앞으로는 더 크게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제조 경쟁력을 갖춘 다음에 스스로 설계를 하는 능력까지 배양하게 되는 종합반도체 기업이 있는가와 없는가가 산업의 주도권을 갖게 될 수도 있게 된다고 본다. 


참고 도서 : 이건희 반도체 전쟁 (허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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