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대만에 우호적인 정치인이다.
대만과 일본이 우호적인 관계인 것은 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관계로 지금도 대만의 유사시에 일본이 도와야 한다는 입장을 일본 정치인은 가지고 있다.
그럼 대만의 역사를 기반으로 어떻게 일본과의 관계가 형성되었는지 알아보자.
대만의 건국의 아버지는 두 사람이 있는데 정성공과 장제스이다.
정성공은 17세기의 개척자로 대만 역사의 시조라고 불린다.
정성공은 대만을 외국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처음으로 한족 정권을 세운 인물이다.
정성공의 아버지는 중국인으로 당시 바다를 주름잡던 해적 겸 무역상이었던 정지룡이다.
어머니는 일본인으로 히라도 출신의 일본 여인으로 다구와 마쓰라는 분이다.
정성공은 7살 때까지 일본에서 나고 자란 히라도 꼬마였고 지금도 히라도에 가면 정성공이 태어난 곳임을 알리는 기념비와 그가 매달려 놀았다는 바위가 보존되어 있다.
정성공은 아버지를 따라 중국 본토로 건너가 명나라의 충신이 된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 군대가 들이닥쳤을 때, 정성공은 대만으로 건너가 청나라에 복수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렇지만 대만에서 청나라를 전복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었고 정성공은 대만에 정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후 청나라는 대만의 세력이 불안할 것으로 생각해 청나라의 세력 하래로 두게 된다.
일본인들도 정성공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어 일본인들의 영웅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에도 시대 일본의 작가 지카마쓰 몬자에몬은 정성공의 일대기를 각색한 고쿠센야 캇센이라는 인형극을 썼다.
정성공의 일대기를 토대로 한 연극이 초대박을 치면서 일본인들에게 정성공은 일본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 대륙을 호령한 자랑스러운 영웅으로 각색되게 된다.
대만에서는 나라를 세운 신으로 일본에서는 전설적인 연극 주인공으로 동시에 사랑받는 사람이 정성공이다.
이후 대만은 세계 역사에 이렇다 할 비중이 없었지만 중화민국이 탄생되면서 세계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중화민국이라는 나라 자체는 1912년 중국 본토에서 쑨원에 의해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으로 세워진다.
그리고 쑨원의 후계자로서 장제스가 거론이 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국 본토에서는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집주인 자리를 놓고 격렬하게 싸웠다.
하지만 민심을 잃고 군사적으로 밀린 장제스는 본토를 공산당에게 내주게 된다.
본진을 잃어버리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하지만 너무 가깝지도 않은 섬인 대만으로 이동하게 된다.
약 200만 명의 군인과 피란민이 함께 이동을 하면서 현재의 대만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 당시 단순히 몸만 간 것이 아니고 자금성에 있던 핵심 보물과 은행의 황금을 몽땅 싣고 가면서 대만 건립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장제스와 그를 따랐던 중국 국민당 세력은 초반에는 본토 수복을 하려고 했지만 현실을 깨닫고 대만에서 독자적인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에 집중하고 오늘날의 대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요약 : 대만은 중국에서 넘어온 장제스가 건립한 것이지만 최초의 조상신인 정성공의 어머니가 일본인이었다는 점과 일본에서 정성공의 인기가 결합되면서 대만과 일본은 태생부터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조건이 있었다.
문화적 역사적 뿌리로서는 대만과 일본은 결합되어 있고 현재의 정치 체제와 민주주의 국가로서는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어 일본과 중국의 문화가 복합적으로 있다고 보인다.
그래도 중국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