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인구 2,300만 명의 작은 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의 주요 역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어떻게 대만이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1949년 장제스가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건너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중국 본토 중앙은행에 있던 약 115톤의 황금과 엄청난 양의 외화를 몽땅 챙겨서 대만으로 왔다.
장제스가 가지고 왔던 황금이 대만을 건국하는데 큰 역할을 해주었고 황금을 기반으로 새로운 화폐 (뉴타이완 달러)를 발행하는 든든한 담보가 되었다.
장제스가 빈손으로 왔으면 지금의 대만은 없는 셈이다.
장제스가 대만을 건립할 때에 가져온 황금이 있었으니 당연히 대만의 리더십은 장제스의 친인척으로 이어지게 된다.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가 총통을 이어받게 되는데 대만에 행운이 내린 것처럼 경제적인 역량이 뛰어나서 대만의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장징궈 총통은 현재도 대만 경제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70년대 오일쇼크를 현명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장징궈는 오일쇼크가 발생하자 오늘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생각으로 대규모 인프라 사업인 10대 건설을 밀어붙인다.
덕분에 대만은 향후 3차 산업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인 고속도로, 국제공항, 철도 전철화, 대형 조선도, 제철소 건설 등이 진행되게 된다.
대만은 70년대부터 만들어진 인프라를 기반으로 단순 농업 국가에서 중화학 공업 국가로 변신할 수 있었고 훗날 3차 산업혁명의 주요 역할을 할 수 있는 공장을 돌릴 수 있는 안정적인 전력과 물류망을 확보하게 된다.
대만은 3차 산업혁명 (정보통신 혁명)의 물결이 커질 것이라 생각했고 홍하이 정밀 공업의 창업주였던 궈타이밍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했고 개인용 PC 보급의 확산을 예측한 궈타이밍은 PC 내부의 커넥터 (연결 부품) 시장에 올인했다.
홍하이 정밀 공업은 처음엔 TV 손잡이나 플라스틱 부품을 만들던 작은 공장이었지만 부가가치가 좀 더 높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PC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델과 HP 같은 미국 PC 거물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이후 홍하이 정밀 공업은 폭스콘으로 사명이 변경되고 단순히 조립만 잘하는 회사가 아니라 전자제품 통합 수직 계열화라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탄생시키게 된다.
부품을 싸고 빠르게 대량으로 공급한다는 원칙으로 설계부터 부품 조달, 조립, 물류까지 한 번에 해결해 주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애플 같은 브랜드 회사가 이런 디자인으로 만들어줘라고 던지면 폭스콘은 며칠 만에 수만 명의 인력을 투입해 완제품을 찍어냈다.
폭스콘은 자체 브랜드를 만들지 않고 단순 위탁 생산에 집중하면서 기술력을 발전시켜 전 세계 IT 브랜드의 보이지 않는 손이 된다.
폭스콘이 명실상부한 세계 1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애플과의 만남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구상했을 때 그 까다로운 요구조건과 엄청난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곳은 지구상에 폭스콘뿐이었다.
폭스콘은 대만에서만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중국 선전에 거대 공장 단지를 건설한다.
우리가 쓰는 아이폰 뒤에는 Assembled in China (사실상 폭스콘 조립)이라는 문구가 새겨지게 되었고, 폭스콘은 연 매출 200조 원이 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2026년 폭스콘은 아이폰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전기차와 AI서버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MIH 플랫폼을 활용해 전기차 오픈 플랫폼을 운영 중에 있다.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엔비디아와 손잡고 AI 데이터 센터 전용 서버를 생산하며 인공지능 시대의 하드웨어를 책임지고 있다.
폭스콘이 예전에는 아이폰만 조립했다면 현재는 테슬라의 대항마와 AI서버를 조립하는 중이다.
요약 : 대만은 장제스가 중국 본토에서 가지고 온 황금을 기반으로 국가의 기틀을 설립했고 화폐를 발행해 경제 기반을 만들었다.
장징궈 총통은 대만의 경제 인프라를 구축했고 폭스콘과 같은 기업이 탄생하면서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