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대만 정부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폭스콘의 성장을 통해서 이미 IT 산업이 미래에 점점 더 중요해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반도체를 직접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도체를 직접 만들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쥘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폭스콘이 3차 산업혁명의 파도를 타고 조립의 왕이 되었지만 중요한 경제적 교훈을 얻었다.
남의 설계도를 가져다 조립만 해서는 부가가치가 낮고, 핵심 부품을 쥐어야 진짜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폭스콘은 엄청난 고용과 매출을 일으켰지만, 사실 박리다매 구조였다.
애플이 100만 원짜리 아이폰을 팔 때, 조립을 담당하는 폭스콘이 가져가는 순이익은 고작 몇 달러 수준이었다.
반면 핵심 칩을 설계하고 공급하는 회사는 앉아서 수십 배의 이익을 챙긴 것이다.
대만이 조립은 세계 1등이지만 돈은 미국 칩 회사들이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에서 핵심 칩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또한 폭스콘은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경쟁력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조립 위주의 산업은 브랜드 업체가 공장 옮길게라고 하면 순식간에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반도체는 다르다. 대체 불가능한 공정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브랜드 업체들이 오히려 공장 앞에 줄을 서게 된다.
대만은 폭스콘을 통해 IT 기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전 세계의 거대한 공급망 지도를 이미 머릿속에 넣고 있었다.
폭스콘이 PC와 스마트폰의 몸통을 만드니까, 그 안에 들어가는 뇌(반도체)까지 우리가 대만 안에서 다 해결하자는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하지만 반도체를 만들고 싶어도 인력이 준비되지 않았고 인프라도 구축되지 않은 상태였다.
대만 정부는 고민에 빠졌고 반도체를 해야겠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때에 레이더망에 걸린 인물이 바로 모리스 창 (장중머우)이다.
모리스 창은 1931년 중국에서 출생한 뒤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고 스탠퍼드 대학교 전기공학 박사가 된 후에 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 25년간 근무하며 부사장까지 오르게 된다.
당시 그는 인텔의 창업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반도체 업계에서 거물이 되었다.
대만 정부는 대만 산업 기술연구원의 원장으로 모리스 창을 모셔오기 위해서 엄청난 공을 들였고 모리스 창은 이에 화답하며 대만으로 돌아오게 된다.
1987년 모리스창은 56세의 나이에 대만 정부의 부름을 받고 고국에 돌아와 도박에 가까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엔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가 직접 공장까지 갖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공장 건설 비용이 너무 비싸 똑똑한 설계자들이 창업을 포기하곤 했다.
모리스 창은 설계는 로열티 문제와 기술력의 한계를 쉽게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단순 생산에 집중하는 것으로 반도체를 시작하기로 한다.
TSMC는 설계는 안 할 테니 설계도만 주면 완벽하게 만들어주겠다는 파운드리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해 낸다.
이 과정에서 모리스 창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기조아래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모리스 창의 생각은 앞으로 반도체 설계만 하고 싶은 천재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공장 짓는 것은 너무 비싸고 다양한 생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반도체 공장을 모든 회사가 갖는 것은 무리였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철학 덕분에 애플, 엔비디아 같은 설계 전문 기업(팹리스)들이 안심하고 TSMC에 일감을 맡기게 되었다.
사업 초반에는 남의 것만 대신 만들어주는 하청업체가 무슨 비전이 있어라며 투자를 거절당했다.
그렇지만 인텔의 CEO 앤디 그로브가 대만을 방문했을 때 모리스 창은 그를 끈질기게 설득해 TSMC 공장을 견학하게 했고, 인텔로부터 기술이 꽤 괜찮다는 인증을 받고 인텔의 인증 덕분에 전 세계의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요약 : 대만은 폭스콘을 통해 IT 산업의 발전에 동참할 수 있었지만 미래 성장 동력을 위해서 반도체 산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모리스 창이라는 인물이 고국의 부름을 받고 돌아와 파운드리라는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면서 TSMC가 시작될 수 있었다.
지금 TSMC는 고객과 경쟁 안 해라는 약속 하나로 전 세계의 설계도를 독점한 슈퍼 을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